최근 잇따른 산불 현장 헬기 추락 사고로 항공기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헬기의 연식을 사고의 주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고 이후 일각에서는 '30년 넘은 노후 헬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기체 노후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해석이 일방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헬기는 항공안전법에 따라 기체 제작 연도와 무관하게 일정 비행시간 및 기간마다 핵심 부품의 결함 유무 관계없이 국토교통부의 감항검사를 통해 비행 적합성을 매년 검증받아야 비행이 가능하다.
"30년 지나면 무조건 폐기?…비합리적"
지방자치단체는 산림청과 달리 민간업체에서 임차한 헬기로 산불을 진화하고 있으며 전북특별자치도는 현재 남원(1991년 제작), 고창(1988년), 진안(2003년) 등 세 곳에서 임차 헬기를 운용 중이다.
이 중 남원과 고창 헬기는 30년 이상 된 기체지만 각각 2024년 10월과 2025년 3월 감항검사를 통과한 상태다.
전북지역 임차헬기의 경우 엔진은 4000시간, 메인 기어박스(MGB)는 3250시간, 테일 기어박스(TGB)는 4000시간, 메인 로터는 2만8000시간 수명을 갖고 있다.

해당 시간에 도달하면 반드시 부품을 교체해야 하며 이러한 기준은 기체 및 부품 제작사에서 안전 보장을 위해 정한 것으로 부품 이상 유무와 상관없이 무조건 교체하는 체계다.
정비 또한 철저하게 계획된 주기에 따라 이뤄지며 위와 같은 기종의 경우 항공기 '스케줄(Schedule)' 정비는 비행시간 기준 25시간, 50시간, 100시간, 150시간 등으로 세분화돼 있고 '캘린더(Calendar)' 정비는 비행시간과 관계없이 3개월, 6개월, 1년 등 일정 주기마다 수행된다.
해당 항공사 관계자는 "헬기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반영구적 수명을 가진다. 부품 공급만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 연식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폐기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며 "실제로 헬기의 엔진만 보더라도 1년에 평균 150시간 정도 비행할 경우 수명 소진까지 약 26.7년이 걸린다. 메인로터는 이론적으로 186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령 40년 넘은 항공기도 안전 운항 중인 미국 사례
실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미국 연방항공청(FAA) 등 주요 항공 당국들도 기령보다는 감항성 유지 여부를 안전성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ICAO는 항공기 부품별 정비 기준과 검사 체계를 중심으로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FAA 역시 정비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기령이 30~40년 넘은 항공기도 운항을 허용한다.
실제로 1970년대 생산된 MD-80 기종은 기령 46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미국 내 노선을 따라 승객 100여 명을 태우고 운항 중이다. 한국의 항공법 또한 이들 기관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
아울러 2016년 최진국 외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 회전익 항공기 사고는 총 23건, 사망자는 18명에 이르렀으며 전체 항공사고의 70% 이상이 조종사의 인적 오류로 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계 결함보다 사람의 판단 착오나 조종 실수가 더 큰 요인이라는 뜻이다.
또한 배정훈 외 2명의 연구팀이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철도항공사고조사위원회에서 항공사고 87건(사고 30건, 준사고 57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사고의 직접 원인으로 ‘조종 미숙’ 15건, ‘정비 불량’ 6건, ‘관제 오류’ 2건으로 나타났으며 준사고의 경우 오히려 정비 문제가 31건으로 기체 노후화와 사고 간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 사고 항공기 기령을 기준으로 보면 '10년 이상 20년 미만' 기체가 37건(48.1%)으로 가장 많았고 '20년 이상 30년 미만'은 11건(14.3%), '30년 이상'은 단 2건(2.6%)에 불과해 기체가 오래됐다고 해서 곧 사고와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연구팀이 사고 원인별 평균 기령을 분석한 결과 조종 요인이 있는 항공기는 평균 13.27년, 정비는 13.42년, 복합 원인은 13년으로 별다른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기종에 따라 회전익 항공기(헬리콥터 등)의 평균 기령은 22.86년으로 9.70년인 대형 고정익 항공기(여객기 등)나 13.31년인 소형 고정익 항공기(경비행기 등)보다 현저히 높았으며 구조적으로 헬기가 오래 사용되는 경향이 반영됐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수치상 사고와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실제 원인은 다양할 수 있어
최근 일어난 사고 당시 현장 상황을 보면 기체 연식보다는 외부 환경과 조종 여건이 더욱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북 의성 사고기의 경우 전북지역에 투입되는 헬기와 동일한 기종이었지만 사고 당시 초속 20m 이상의 강풍이 불고 연기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사고기 조종사는 강원도에서 지원 나온 상태로 현지 지형이나 특성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고기 운영업체 측은 "해당 지역에서는 산불이 밤에도 계속 번졌고 아침에는 연기 탓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해당 지자체는 헬기를 띄우라고 했다. 당시 조종사는 그 와중에도 사명감을 갖고 임무를 수행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대구에서 발생한 사고 기종은 소형급으로 담수 용량이 550L 수준인데 물을 가득 담은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 경우 기체 조종에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고령 조종사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현행 제도상 60세 이상 조종사는 6개월마다 신체검사를 받고 자격을 갱신하는 등 안전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강화됐다.
검증된 기종 선택 불가피
한 민간 항공업체 관계자는 "노후 헬기를 무조건 교체하라고 하지만 실제 산불 진화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헬기는 대형기종이나 군용으로만 허가된 상태"라며 "군용 헬기는 민간 전환이 어렵고 민간용 신기종은 첨단 장비를 탑재하면 기체가 작아 물을 담고 제대로 비행하지 못해 실전에 투입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미국 등에서도 여전히 운용 중인 검증된 기종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전문가라 해도 현장 경험 없이 이론적으로만 판단한다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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