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인 동지들이여, 오늘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입니다. 2025년 4월 2일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오늘은 미국 산업이 부활한 날이며, 미국의 운명을 되찾은 날이며, 우리가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기 시작한 날입니다."(Myfellow Americans, today is Liberation Day. April 2nd, 2025, will forever be remembered as the day America’s industry was reborn, the day we took back our destiny, and the day we began to make America rich again.)
'해방의 날'이 아니라 세계 지도 검색의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이른바 '상호관세'를 발표한 지난 2일은, 인사이드경제 입장에서는 '해방의 날'이 아니라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나라들을 검색하고 공부하는 날이었다. 트럼프가 피켓까지 준비해서 공개한 90여개 국가의 관세율 중 상호관세율 50%로 공동 1위를 기록한 2개의 나라 모두 익숙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레소토(Lesotho), 그리고 생피에르 미클롱(Saint Pierre and Miquelon)이 그 주인공이다. 우선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레소토'라는 국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토 안에 둘러싸여 있는 영연방 회원국 중 하나라고 한다. 면적은 경상도 전체를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 하고, 인구는 228만 명 정도다.
생피에르 미클롱의 경우 캐나다에 인접한 프랑스령의 작은 섬나라다. 북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프랑스령 섬이라 할 수 있는데, 인접국이 달러화를 사용하는 반면 이 섬들은 유로화를 사용하며, 인구가 6000명에 불과하다.
도대체 이런 나라들이 어째서 트럼프가 '해방의 날'이라고 이름 붙인 4월2일, 가장 높은 상호관세율 50%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을까? 이는 미국 정부가 이번에 상호관세 계산을 위해 도입한 초등학교 수학 논리 때문이다.

'소수의 나눗셈'-주먹구구로 때려 맞춘 관세율
"상대국 관세는 물론 각종 비관세 무역장벽까지 두루 고려해 국가별 관세율을 산정했다."
트럼프의 발표가 있기 전 백악관은 이런 설명자료를 냈으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상호관세율 계산법은 아주 간단한 나눗셈이었다. 미국이 각 나라들과의 교역에서 발생하는 무역적자액을 그 나라들이 미국에 수출한 총액으로 나눈 백분율을 계산한 뒤 이를 다시 2로 나누어 상호관세율을 구한 것이다. 구체적인 계산법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정부 홈페이지에서 지난해 기준 몇 개 국가들의 미국의 무역적자와 대미 수출액 수치를 추출한 뒤, 실제로 위 계산식을 적용하여 아래와 같이 표를 만들어봤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왜 상호관세율 최고치가 50%인지도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무역적자액은 아무리 커도 대미 수출 총액을 넘을 수가 없다. 즉, 무역적자액을 대미 수출 총액으로 나눈 수치는 아무리 높아도 100%를 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수치를 2로 나눈 상호관세율은 50%가 최대치가 되는 것이다.
중국보다 괘씸한 레소토와 생피에르 미클롱?
레소토와 생피에르 미클롱은 어째서 가장 높은 50%의 관세율이 적용되는 운명이 되었을까? 레소토의 경우 섬유 및 의류 제품과 다이아몬드를 주로 미국에 수출하는데, 대미 수출 총액은 약 1.8억 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레소토는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채 1000달러가 되지 않는 곳에서 대체 뭘 수입할 수 있을까?
생피에르 미클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구 6000명의 섬나라에서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것은 대부분 가공갑각류나 연체동물(오징어) 등 어류들이었고 총 수출액은 340만 달러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 역시 미국에서 수입해온 금액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무역적자와 대미 수출액, 즉 분모와 분자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게 되고 따라서 상호관세율 계산을 위해 나눗셈을 해보면 100%에 수렴하게 된다. 이를 나누면 50%가 돼 중국의 34%, 베트남의 46%, 캄보디아의 49%보다 높은 1위 상호관세율 국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즉, 미국으로부터 뭔가를 수입해올 만큼 소득이 풍족하진 않지만, 미국으로 소액이나마 수출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미국 상대로 무려 270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중국보다 훨씬 높은 관세폭탄을 맞게 된 것이다. 이들 작은 나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게 과연 미국 산업을 부활시키고 미국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공급망이라는 뇌관을 건드린 트럼프
트럼프의 상호관세정책이 낳을 파괴적인 현실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단순히 초등학교 수학을 빌려왔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동원해서도 아니다. 이런 방식의 관세정책은 결국 전 세계로 그물망처럼 뻗어 있는 '공급망(Supply Chain)'이란 것을 완전히 교란하기 시작했다.
공급망 교란의 효과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연일 미국 증시가 관세폭탄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는데, 가장 빠르게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곳이 어디일까? 트럼프가 관세 얘기를 할 때 매번 강조하는 자동차 업종 기업들 주가도 폭락하긴 했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애플(Apple)과 나이키(Nike)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벌어진 미-중 무역전쟁,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애플은 중국에 집중되어 있던 생산시설과 공급망 상당수를 베트남 등 동남아로 이전시켰다. 나이키는 오래전부터 베트남·인도네시아 쪽으로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집중시켜왔다. 그런데 바로 그 나라들이 '해방의 날'에 30~40%의 높은 관세를 얻어맞게 된 것이다.
세계화와 자유무역 부르짖을 땐 언제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러니까 모든 나라가 관세장벽을 없애고 자유무역을 실시하면 훨씬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달콤한 거짓말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탄생시킨 건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그 세계화를 통해 미국 자본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로 진출하며 저임금 무노조 특혜를 누렸고, 미국 자본주의는 싼값에 수입되는 물품 덕에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노조가 양보하지 않으면 생산시설을 중국으로 이전해버릴 거야." 이 논리로 노조 조직률 저하, 노동조합의 끝없는 양보라는 부수입도 짭짤하게 챙겼다. 세계로 뻗어나간 미국 자본의 영향력을 통해 미국 패권주의는 더욱 공고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미국 패권 'Globalization'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중국이라는 협력자가 무서운 경쟁자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IT 산업에 집중하다 보니 미국 자본주의는 변덕스러운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게 된다. 급기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너무 높아진 달러화 가치는, 이제 '도 아니면 모'라는 정치 선동꾼 트럼프를 다시 무대 위로 올려놓았다.

도미노처럼 퍼질 공황 바이러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것은 중국이라는 경쟁자, 잦은 금융위기, 높은 달러화 가치만이 아니었다. 작은 신발과 휴대전화 하나 만드는 데에도 전 세계 노동자와 산업이 모두 연결될 정도로 그물망처럼 엮여진 '공급망'이라는 게 생겨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무역의 이익을 누리다 제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보호무역으로 돌아가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와 운영 원리가 달라져버렸다. 무역과 경제, 산업은 이제 공급망이라는 키워드를 빼고는 돌아가지 않는다.
트럼프 관세폭탄은 첫날 나이키와 애플의 주가를 떨어뜨리며 미국 주식시장에 패닉을 불러왔지만, 이 바이러스는 공급망을 타고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 관세가 미국에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면, 조금의 시차를 두고 다른 나라에도 인플레이션이 퍼질 것이다.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공장을 이전해야 한다면, 자본 입장에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본은 그 비용을 노동자의 희생으로 전가하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겠지만 또 적지 않은 희생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자들의 계좌는 텅텅 빌 것이고 시장에 팔리지 않는 상품이 늘어나면 디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이 불어닥친다. 가장 먼저 미국 노동자들이 희생양이 될 것이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그 희생은 공급망을 따라 다른 나라로 퍼져간다. 공급망이 공황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고속도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황과 격변이라는 판도라 박스가 열렸다. 과연 '희망'과 '전망'이라는 요소도 그 박스 안에 들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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