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윤석열 탄핵 판결이 목전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그 어떤 정당한 사유도 없이 자국민에게 총구를 들이민 사상 초유의 폭정이므로, 많은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탄핵은 만장일치로 인용될 것이라 믿는다.
문제는 탄핵이 인용될지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일단락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상경 칼럼] 그들은 왜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나?), 윤석열의 '계엄 난동' 이후 나타난 충격적 현상은 탄핵반대 여론의 급상승이다.
이는 박근혜 탄핵 직전 여론조사 데이터와 비교했을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박근혜 탄핵 관련 여론조사는 지난 2017년 3월 7일 발표된 JTBC-한국리서치 조사자료, 윤석열 탄핵 여론조사는 2025년 3월 14일 발표된 한국갤럽 자료에서 인용했다. 분석 대상으로 이 두 여론조사 자료를 택했으나, 동기간 실시된 다른 여러 여론조사를 비교해 봐도 같은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을 재차 밝혀둔다. (갤럽 조사는 언론사 의뢰 없이 지난 11~13일 전국 1001명 대상. 상세내용은 관련기사 참고. ☞기사 보기)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박근혜 탄핵 반대 여론이 응답자 전체의 17% 남짓이었던 데 반해 윤석열 탄핵 반대 여론은 그 2배가 넘는 37%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이달 실시한 몇몇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탄핵 반대 여론이 응답자의 40%를 넘나드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성향별로 나눠 살펴보면, 모든 정치성향의 응답자 사이에서 탄핵 찬성 의견은 줄고 반대 의견이 증가했지만, 가장 눈에 띄는 집단은 단연 중도와 보수이다. 중도 성향 응답자의 경우,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응답자 비율이 14%였던 데 반해 윤석열 탄핵 반대 응답자 비율은 26%까지 증가했다.
보수 성향 응답자에게선 훨씬 극적인 차이가 나타났다. 박근혜 탄핵 때만 해도 보수 응답자 과반(53%)이 탄핵에 찬성하고 41% 남짓만이 탄핵에 반대했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 심판을 앞둔 현 상황에선, 보수 응답자 전체의 절반에 훨씬 못미치는 24%만이 탄핵에 찬성하고 72%가 탄핵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요컨대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모든 정치성향 응답자들에게서 탄핵 찬성이 다수의견이었으나, 이번 윤석열 탄핵의 경우엔 중도층에서 탄핵 반대 여론이 두드러지게 증가했고 보수층에선 탄핵반대가 압도적 다수의견이 돼버렸다.
윤석열의 '계엄난동'이 민주화 이후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포함한 그 어떤 스캔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헌정질서를 훼손했음을 고려하면, 이 같은 탄핵 반대 여론의 증대는 가히 충격적이다.
중도·보수층에서 '탄핵 반대' 여론이 상승한 이유는?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윤석열의 계엄난동은 모두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법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전면 부정하는 범죄로, 당연히 결코 재발해선 안 된다. 탄핵은 이 범죄행위들을 심판하는 유권자의 능동적 권리이며, 탄핵 국면과 그 이후 제1야당은 이를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도와 보수층은 왜 박근혜 탄핵 때에 비해 윤석열 탄핵에 덜 호의적이거나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유는 그간의 정세를 통해 전부 드러났고, 많은 시민들이 이미 알고 있다. 박근혜 탄핵 때와 비교했을 때, 중도와 보수층이 제1야당인 민주당에 회의나 극렬한 반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 때 모든 정치성향 유권자들이 탄핵에 찬성하고 민주당이 전폭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국정농단으로 훼손된 법치와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회복해달라는 대국민적 의지의 표출에 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 지도부는 이 요청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탄핵 국면과 조기 대선 시기에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투명하고 공정한 의사결정과 법치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유권자들에게 천명했다. 이에 진보와 중도층뿐 아니라 보수층 다수마저도 민주당 지도부에 '심판자' 역할을 부여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의 이재명 지도부는 정확히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윤석열의 폭정이 무너뜨린 법치질서를 시급히 회복해야 할 시점에서, 역으로 법치를 흔들고 심지어는 퇴행적인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윤석열의 계엄난동 이후, 모든 시민이 이재명 대표의 재판 지연 과정을 중계방송 보듯 지켜봤고, 결국 이 대표의 대법원 판결이 조기 대선 이후로 점점 밀려나는 상황, 그리고 이 대표가 '본인의 대통령 당선 가정 시 재판은 중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까지 목도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 대표가 본인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구형한 현직 검사들을 '부패 세력'으로 매도하고, 심지어는 2023년 본인의 체포동의안 가결 배경에 대해 민주당 내부 일부 인사들과 검찰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하는 모습까지 지켜봤다.
이것이 과연 대통령의 반민주적 폭정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할 제1야당이 보여야 할 모습인가?
계엄 이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중도층과 보수층의 강렬한 반감이다. 지난달 주간지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응답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조사기간 2.3~5. ☞조사 상세사항 보기)에 따르면, 계엄에 찬성하는 극우보수층뿐 아니라 계엄에 반대하는 중도보수층 사이에서도 이 대표에 대한 매우 높은 적개심이 드러났다.
결국 중도와 보수층이 윤석열 탄핵에 덜 호의적이거나 반대하는 이유는 제1야당인 민주당과 지도부에 '심판자'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계엄·내란사태가 발생했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대개 접전을 벌이고 있고,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연장' 여론을 압도하지 못하는 현상도 같은 이유로 설명된다.

민주당의 정파적 이익 추구는 극우의 성장을 촉진할 것
탄핵 인용을 가정할 시, 이재명 대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조기 대선 전에 열리지 않고 민주당과 이재명 지도부가 지금처럼 사법기관에 대한 음모론적 공격을 이어갈 경우 초래될 가장 치명적인 귀결은 극우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서유럽과 북미의 정치사에서 보듯, 극우세력은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늘 존재해왔다. 서유럽 국가들에서처럼 군소정당을 유지하기도 하고, 미국에서처럼 풀뿌리 조직으로 존재하거나 간혹 깜짝 대선후보를 내세우기도 한다.
권위주의와 허무맹랑한 음모론, 각종 배타주의로 무장한 이들의 주장을 주변화시키고 기껏해야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의 힘이며, 그 힘은 다수 유권자들과 정당들이 정치성향에 상관없이 민주주의 법치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차단하고 몰아내 버리는 데서 나온다.
여당의 수장인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적으로 돌아선 지금, 제1야당 지도부가 취하고 있는 검찰에 대한 적대적 태도와 음모론, 당대표의 이른바 '사법리스크'는 현재 횡행하고 있는 극우세력과 음모론자들을 몰아내는 데 거대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극우세력의 악의적인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국가기관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거름삼아 성장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철저히 배격당하거나 웃음거리로 전락했을 이 주장들은 윤석열의 선동과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의 기회주의적 지지로 인해 보수층으로부터 보다 넓은 지지를 얻었다.
이 상황에서 극우세력의 성장을 차단하고 제도정치에서 몰아내 버리려면,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다수의 유권자들이 이 세력을 배격해야 하고 이러한 의지를 대변할 수 있는 심판자가 있어야 한다.
박근혜 탄핵 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과 문재인 지도부가 이 역할을 수행했고, 탄핵 국면에서 중도보수층의 지지까지 획득했다. 하지만 이재명 지도부는 스스로 법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함으로써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극우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기는 커녕, 제도정치와 국기기관에 대한 전방위적 불신이 확산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와 극우 포퓰리즘을 연구한 학자로서 나는 이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만약 탄핵이 인용된다면, 조기 대선 이전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도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등 여러 수사 중인 혐의와 사법기관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끊임없는 정쟁을 유발할 것이다. 가정을 더해 만약 이재명 대표가 조기 대선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풀리지 않은 그의 혐의는 대통령 임기 내내 통치의 정당성을 집요하게 잠식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폭정을 저지른 독재자를 처단하고 민주주의 헌정 수호를 이끌어야 할 제1야당 대표가 법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한국사회에서 국정에 대한 근거 없는 음모론과 이를 전파하는 극단주의 세력의 성장에 자양분을 제공할 것이다.
결국 민주당에 달렸다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했듯, 현 시점에서 이재명 대표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와 이 대표가 여태까지 보인 행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설령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대선 과정 및 그 이후의 임기 내내 극단적 정쟁과 정치양극화를 초래하고 극우세력의 확산을 촉진할 공산이 크다.
결국 지금 민주당에 현실적으로 조금이나마 기대하거나 당부할 수 있는 점은 검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에 대한 모든 공격과 비방을 중단하고 법치에 대한 시민적 신뢰 회복을 촉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언제 선고되든, 그 판결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검찰 고위간부 몇몇의 과거 수사에 대한 비판은 비록 그 자체로서는 온당한 주장일 수 있겠지만, 이같은 비판이 현 시점에서 이 대표가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한 부인과 사법기관에 대한 음모론적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해서는 결코 안 된다.
만약 탄핵이 인용된다면, 조속히 이뤄질 당내 대선후보 선출과정 역시 모든 민주적 절차를 거쳐 치뤄져야 한다. 폭정을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주의의 수복하고자 하는 야당 후보의 제1과제는 결국,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미덕과 가치를 보여줌(showcasing)으로써 민주주의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시민적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미 권위주의적 성향과 행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온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이후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첫걸음은 당내 경선이 될 것임이 자명하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모두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조사기간·대상, 응답률, 설문지 문항 등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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