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재계와 만나 국회 입법이 아닌 노동부 지침 개정을 통해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김 장관의 말이 실현되면 연구개발 노동자는 "과로사 문턱"에 서게 될 것이라며 "개발 성과와 산업 경쟁력 강화는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를 희생해서 달성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 장관은 11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경기 성남 동진쎄미켐 R&D 센터에서 열린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시간 개선 간담회'에 참석해 반도체 산업 노동시간 규제 완화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이 간담회에는 삼성,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반도체특별법에 연구개발 노동자 주52시간 예외 조항을 넣는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우회방안을 만들어서라도 연구개발 노동자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나 김 장관은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현행 특별연장근로 3개월은 R&D 성과가 나오기엔 짧은 기간"이라며 "6+6개월 정도면 기업들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가 싶다. 행정조치여서 오래 걸릴 것도 없다"고 구체적 계획을 꺼냈다.
특별연장근로는 재난, 돌발상황,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사용자가 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 주52시간을 초과해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게 한 제도다.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은 노동부의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업무처리 지침'에 규정돼 있는데, 연구개발의 경우 인가가 가능한 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이는 행정지침이라 국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도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재가 등을 거쳐 정부 차원의 개정이 가능하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에서 "현행 제도 역시 과로를 조장하는데 여기서 더 노동시간을 늘리자는 노동자는 그야말로 과로사 문턱"에 서게 된다며 김 장관이 "연구개발 노동자 말살 정책을 꺼내고 말았다. 특별연장근로 확대는 과로사 쓰나미를 부를 것이다. 산업의 지속가능성도 해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삼성전자의) 경영 실패와 비전 부재의 책임부터 물어야 한다. 노동자 건강권 후퇴는 노동부가 들어줄 사안이 아니다"라며 "노동자 다 죽이는 노동부 장관 필요 없다. 내란 옹호에 급급한 정치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에서 김 장관을 겨냥 "과도하게 노동시간을 확대하면, 삼성전자의 성과주의 고과제도와 맞물려 경쟁이 심화돼 노동자의 과로가 부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개발 성과와 산업 경쟁력 강화는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를 희생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노동자의 휴식권과 노동조건 보장을 위한 정책으로 재정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삼성전자 노동자가 주요 당사자인 제도와 법안의 개악 시도에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행정지침 개정으로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일 자체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론적으로 보면, 행정지침을 개정해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3개월이 아닌 3년으로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며 "그런 식으로 정부 마음대로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걸 허용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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