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돌아왔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2기의 정책이 전임 바이든 정부와 다르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했지만 그 다름의 속도와 양상이 예상 이외의 것이라 전 세계가 충격 속에 지켜보면서 대책을 마련하기에 분주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관계에서 일극 체제를 포기하고 다극 체제로 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그동안 동맹국들을 위해 과도한 짐을 져왔으니 이제는 동맹국들도 방위 분담금을 대폭 올려서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트럼프가 말하듯 미국이 동맹을 위해 희생을 치러 왔을까?
미국을 로마 제국에 비견하는 경우가 많다. 팍스 로마나에 비견하여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도 많이 쓰이고 있다. 당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국력을 가진 최대 제국이라는 의미에서 쓰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인접한 지역들을 육로 또는 해로로 정복하여 연속된 영토로 흡수하고 이를 행정력으로 다스린 제국이었음에 반해,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독립국인 동맹국들을 거느리고 바다 멀리서 맹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로마 제국의 속주 지배와 다르고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지배와도 다르다. 그런 점에서 로마 제국보다는 차라리 델로스 동맹의 맹주였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와 그 동맹국들의 관계에 비추어 미국과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테네와 동맹국들의 관계를 말할 때 아테네 제국, 아테네 제국주의라는 용어도 쓰이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유비를 위해 안성맞춤이다. 물론 규모가 아니라 관계의 성격만을 고려할 때의 이야기이다.
21세기 국제관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과 관련하여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용어가 자주 거론되곤 한다, 이 말을 일반에 널리 회자시키게 된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처음에는 다소 소박하다고 할 만한 논지로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원인 해석론을 미-중 관계를 해석하기 위해 가져왔다. 즉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기존 강대국이자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인 스파르타(라케다이몬)가 신흥 강대국 아테네의 부상에 불안감을 느낀 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었다고 보았는데1) 앨리슨 교수는 이 해석틀이 신흥 강대국 중국의 부상으로 기존 강대국 미국이 위협을 느낌으로써 양측의 군사적 충돌까지도 우려되고 있는 최근의 국제관계 상황을 설명하는데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기존 강대국 스파르타에, 중국은 신흥 강대국 아테네에 각각 유비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투키디데스의 함정"론과는 맥락을 달리하여, 미국을 델로스 동맹의 맹주이던 시절 아테네의 자리에 놓고 생각해 보고자 한다.
델로스 동맹은 기원전 5세기 초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이 페르시아 원정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다음, 아테네가 기원전 478년 페르시아의 재침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에게해의 여러 섬 도시국가들을 규합하여 만든 동맹이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스파르타도 테르모퓔라이 전투에서 보듯 육지에서 그야말로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아테네 해군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한 것이었다. 아테네가 동맹을 조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공로 덕분이었다. 이는 일찍이 육군국들을 규합하여 스타르타가 조직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대비되는 기구였다.
알프렛 매한의 구분을 빌자면 아테네는 해양세력 제국이라고 할 만하다. 동맹의 기금 금고가 처음에는 델로스 섬에 있었기에 델로스 동맹이라고 부른다. 도시국가들은 독립적인 정치체였지만 델로스 동맹은 수평적 기구가 아니라 맹주 아테네를 정점에 두고 동맹국들이 아테네의 결정을 따르는 수직적 조직이었다. 동맹국들은 함대와 해군 병력을 제공하기보다 돈을 내는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테네는 동맹국들로부터 모은 기금을 처음에는 동맹 전체를 위해 사용했지만, 차츰 아테네 자체를 위해 전용하기 시작하였다. 동맹 금고를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으로 옮기고 아테네의 해군력 강화와 도시 정비, 주민 복지 증진을 위해 이 기금을 사용하였다. 델로스 동맹 기금이 아테네의 재정을 튼튼하게 해 준 것이다.
그런 한편 아테네는 민주국가의 선두주자로서 동맹국에 참주가 나타나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생기면 이를 제압하여 민주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페르시아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에도 동맹을 해체하지 않고, 동맹에서 이탈하려는 도시국가들에는 압박을 가하였다. 동맹국들은 아테네에 종속되었다. 후일의 역사학자들이 델로스 동맹을 아테네 제국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바로 아테네가 동맹을 자체의 경제력 · 군사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 시기에만 해도 대내적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대외정책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었던 아네테는 그의 사후 금도를 잃어버렸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려던 멜로스 섬에 대해 주민 학살을 자행할 정도로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버렸다.
미국이 동맹정책을 추구하게 된 것은 2차 대전 이후 냉전 시기에 들어와서이다. 2차대전 승리의 두 주역이라면 단연 소련과 미국인데 소련은 육지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나치 독일군을 격파하여 유럽을 해방하였고 곧이어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까지 격파하여 동아시아를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미국은 바다를 통해 전쟁을 하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일본에 대한 공습으로 유럽 전선과 동아시아 전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발판을 놓았다. 그뿐 아니라 소련이 승리를 거두는 데는 무기대여법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무기를 제공받은 것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이 사실은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2차대전 시기의 전우였던 양국은 종전 후 곧 냉전 상태로 들어갔고 미국은 소련에 맞서 군사동맹을 체결하기 사작했다. 나토(1949)가 미국이 맺은 군사동맹의 효시이며 미일동맹(1951/52)과 한미동맹(1953)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도 동맹들이 명멸하였다.
미국 독립혁명 이래 유럽은 미국의 경쟁자로 여겨졌지, 동맹자로 여겨지지 않았다. 미국은 유럽 열강들처럼 합종연횡과 변화무쌍한 동맹관계를 통해 세력균형을 꾀했던 국가가 아니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자기 나라가 외국과의 항구적 동맹을 피해야 한다고 제안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냉전 시작 이후 동맹관계를 추구하면서 곧바로 서유럽을 비롯한 서방진영 전체의 맹주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고, 냉전 종식 이후에는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역시 동맹관계를 통해 이 지위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였다. 소련이 나토에 대항하여 결성한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냉전 종식과 더불어 곧 해체되었으나 미국 주도의 동맹체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미국이 맹주로서 동맹국들을 마치 가신처럼 거느리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동맹정책과 자유무역으로 희생을 치러왔다고 주장하였다. 동맹정책으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면서 동맹국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트럼프가 민주주의와 자유 등 가치의 수호자로서의 맹주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나토나 한미동맹을 해체하리라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은 동맹을 통해 지출 비용의 몇 배인지 셈할 수조차 없는 이익을 거두어들여 왔고 지금도 거두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맹의 맹주라는 지위 덕분에 거둔 최대의 경제적 이익은 페트로 달러 체제의 확보와 유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맺은 긴밀한 관계가 작용하였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는 동맹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것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일변도의 외교관계에서 벗어나 러시아 · 중국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나오게 된 말이다. 미국-사우디 양국은 1951년 상호방위지원협정을 맺은 이래 간헐적으로 동요가 있기는 했지만 이를 넘어서서 꾸준히 군사적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다. 풍부한 석유매장량을 가진 산유국인 미국은 2차대전 종전 무렵부터 각국의 주요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기 위해 각종 조치를 취했는데 이 정책이 효과를 거둔 후에는 자국 석유보다 저렴한 사우디산 수입석유를 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종전 직전에 체결되어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어 주었던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나서 미국 경제 또한 난조를 겪고 있던 1970년대 전반 미국은 '석유대금 결제는 미국 달러로만 하며,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협정을 사우디아라비아와 맺었다. 미국이 절대 군주국인 사우디에 방위를 위한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얻은 최대의 경제적 이익이 바로 페트로 달러 체제였고 이것이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경제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모든 국가들이 달러로 석유를 사들이게 되었고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판 대금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였는데 이를 갚기 위해서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기만 하면 되었다.2) 또한 미국이 동맹을 유지하면서 방위비용을 지불하였다고 하나 그 대신 동맹국들은 부지런히 미국산 무기들을 구입하여 비용을 되돌려 주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미국이 동맹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용하고자 하는지 살펴보자.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허용하겠다고 선언한 2008년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담 참석국이었다. 미국이 나토 가입 허용을 내걸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와 대립하게 하고 결국 전쟁으로까지 이끌어 들인 것은 비밀이 아니다. 유럽의 나토 국가들은 이 문제에서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의 가장 큰 몫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개전 후 2년 반을 조금 넘긴 2024년 9월까지 1750억 달러(달러당 1300원 기준 227조원) 이상을 지출하였고 바이든 정권 만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2024년 12월에도 25억 달러(달러당 1400원 기준 3조 5천억원)의 군사 지원 패키지 제공을 결정하였다.3) 2025년 3월 초 영국총리가 트럼프에게 냉대당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대출금액 4조원과 거의 맞먹는 금액을 2024년 12월 말 한 번에 작별 선물로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지원이 결코 무상이 아니었고 미국이 언젠가는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라고 하는 것도 누구나 짐작하는 바였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전후 복구 사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지하자원과 토지도 마음대로 이용할 것이라고 하는 예상이 공공연히 관찰자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그 정도를 넘어서서, 현재 경제적 궁핍 속에서 패전 위기에 놓여 있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미국이 희토류를 비롯한 광물자원을 대규모로 퍼갈 수 있게 허용하라고 요구하였다. 동맹국도 아니고 동맹이 되기를 원했을 뿐인 우크라이나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를 볼 때 우크라이나는 당분간 더 많은 인명피해를 입은 후 미국에 더 많은 광물자원을 빼앗기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더 관대하고 자기희생적일까.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독일은 냉전 해체 이래 사민당 정권, 기민당 정권을 막론하고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불가능해 보였던 동서독 통일을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이끄는 소련 공산당 정부가 허용해 준 것이 독일인들에게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히틀러 나치 정권이 일으킨 2차대전으로 최대의 피해를 받은 나라가 소련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을 이룬 독일인들은 소련 해체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인들을 돕고자 의약품 · 물품들을 모아 트럭에 실어 보냈다. 독일 유학 당시 내 주변 독일사람들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독일은 친러정책 덕분에 러시아의 풍부한 천연가스와 석유를 싼 가격에 구입하여 독일 제조업 유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왔다. 유명한 노르트스트림 1 · 2호를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완공하여 가동시켰던 것은 러시아 에너지를 직접 공급받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다음 이 가스공급로는 파괴되었다. 해저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은 바다를 오염시키면서 불능화되었고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 대신 대서양을 건너와야 하기 때문에 몇 배나 더 비싼 미국 LNG를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재 독일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큰 부분은 고가의 미국 에너지를 수입하여야 하는 상황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독일은 경제의 젖줄인 에너지 정책을 자국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비싼 에너지를 울며 겨자먹기로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을 한 마디도 비판하지 못하였다. 미국 언론인 시모어 허시가 노르트스트림 파괴가 미국의 공작이라고 폭로했음에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미국은 2022년 2월부터는 독일로 하여금 반러적 태도를 취하게 하여 자국 가스를 비싸게 판매한 다음, 2025년에는 스스로 친러적 태도를 취하면서 독일의 나토 방위금 부담률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은 최근 몇 년간 총예산에서 군사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두 배 정도 인상한 바 있다. 이제 나토 방위군 분담금도 크게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일을 이룬 독일이 예상할 수 있는 시기에 러시아의 직접적인 군사적 공격을 받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독일은 이제 미국, 러시아 양국 모두와 겪는 편치 못한 관계 때문에 민족주의의 고조를 겪게 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미국이 동맹 때문에 부담을 지고 자국 경제를 희생시켜 왔다는 주장은 통계학적으로 엄밀히 따져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 서방세계 전체의 맹주라는 상징성에 힘입어 누려왔던 엄청난 국제경제적 이익은 따질 수도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현명한 사상가, 문인, 철학자들이 인간에게서 가장 경계한 것이 '휘브리스', 즉 오만이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영웅 오이디푸스도 오만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투키디데스는 국가의 경우에도 개인의 오만에 비견할 만한 패권주의라는 취약성이 작동했을 때 파국을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페리클레스 사후 선동정치가들의 무분별한 대내정치와 대외정책에 휘둘린 아테네는 지나친 자국 이기주의에 빠졌고 그것이 이 찬란하던 도시국가를 쇠망으로 이끌었다. 투키디데스는 멜로스인들을 징벌하러 온 아테네 사절단이 멜로스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한다.
"인간사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정의라는 것은 세력이 동등한 자들 사이에서나 결정될 수 있는 것이요. 강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실행하는 것이고 약자는 응당 굴복하는 법이요.", "설령 우리의 지배권이 망할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그 종말을 두려워하지는 않소(...) 우리는 우리의 지배권을 위해 이곳에 와 있음을 당신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오.", "왜냐하면 당신들의 증오를 산다 해서 그것이 우리를 해치는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오히려 당신들의 호의를 얻는 것이 우리 종속국들에게 우리의 약함을 보여주는 근거가 될 것이고 당신들의 미움을 받는 것이 우리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근거가 될 것이라는 점에 마음을 쓰기 때문이요." 4)
미국은 지금 동맹국들을 향해서, 동맹이 되고 싶어 했던 국가에 대해서, 전 세계를 상대로, 가장 무자비했던 시기의 아테네 제국과 같은 오만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투키디데스의 경고는 강대국 간의 경쟁이라는 관점에서뿐 아니라 강대국이 작은 나라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하여서도 경청해야 한다.
주석
1)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런데 진정한 원인은, 아무도 드러내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아테네인들의 힘이 강력해졌고 이로 인해 라케다이몬(스파르타를 말한다-글쓴이)인들 사이에서 두려움이 생겼던 것 때문에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돌입했다는 것이다." Thucydides, I, 24.
2) 이정하, <페트로 달러 체제와 냉전>, 서양사연구 68권 (2023), 109쪽.
3) "How Much U.S. Aid Is Going to Ukrain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https://search.app/yQKPPSmvcEWpyqNb6 (검색일 2025.01.09.)
4) 세 인용문의 출처는 각기 Thucydides, V, 89; V, 91; V. 9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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