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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무너진 한국사회, 오른쪽으로 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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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왼쪽이 무너진 한국사회, 오른쪽으로 넘어지고 있다"

[대담-탄핵광장 이후 진보의 길] 上 진단 - 광장의 내전과 한국사회 우경화의 이유

보수정권의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로 자멸을 앞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정치권에서는 진보적 담론이 사라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스스로 "중도보수"를 표방하며 '우클릭'에 열을 올리고 있고,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며 '극우클릭'에 나섰다.

광장으로 눈을 돌리면, 탄핵 찬성 집회에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표출됐음에도 진보 의제인 사회대개혁에는 큰 관심이 모이지 않고 있다. 반면, 탄핵 반대 세력은 기세를 끌어올리며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내전에까지 비유되던 탄핵 찬반 시민의 광장 세 대결은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석방 이후 더욱 격화할 듯한 조짐도 보인다.

2017년 탄핵 광장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재벌도 공범이다'라는 구호가 나오고, '촛불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 '소득주도성장',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와 같은 정책을 추진한 데 비춰보면, 2025년 탄핵 국면의 한국사회는 우경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우경화의 이유가 무엇일까. 구석으로 밀려난 진보진영에 활로는 있을까. 세 명의 학자·활동가를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진보진영의 대안을 물었다. 노동법·노동인권 연구자인 권오성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보적 경제학자인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플랫폼·하청노동자 등과 함께 현장에서 활동해 온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이다.

이들의 대담을 두 편으로 나눠 싣는다. 첫째 편은 '진단'이다. 내전에 비유할 만한 광장의 갈등에 담긴 함의, 이재명 대표가 우클릭에 나선 이유, 극우화하는 국민의힘의 배경에 놓인 사회경제적 토대, 광장에서 정치적 의제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담자들의 생각을 담았다.

다음은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 인근 모임공간에서 권 교수와 나 교수, 오 연구실장과 함께한 대담 중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을 정리한 것.

▲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 인근 모임공간에서 대담 중인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프레시안(박상혁)

양쪽으로 흔들리며 넘어져가는 한국사회를 드러낸 광장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광장이 열린 뒤 무대에서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소수자가 호명된 것이 주목 받았다. 응원봉 부대와 농민이 만난 남태령 연대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 이후 정치권에는 광장의 이런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라는 초유의 사건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광장이 양분되기도 했다. 지금의 광장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오민규 : 사회가 이 정도인 줄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됐다는 느낌이다. 미국사회가 그렇다는 건 어렴풋이 구경하면서 알았는데, 한국에도 일종의 상시적 내전(civil war) 상태가 펼쳐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떤 쪽이 권력을 잡아도 대중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비유하자면, 팽이의 세차운동 같다. 팽이가 넘어질 때 한 번 빙글 하면서 왼쪽으로 흔들, 그 다음에 오른쪽으로 흔들한다. 다음에 왼쪽으로 흔들 할 때는 넘어지는 쪽으로 각도가 더 벌어지고, 오른쪽으로 흔들 할 때도 마찬가지다. 거대양당이 정권을 주고 받으면서 한국 사회가 점점 이런 식으로 넘어지는 것 같다. 다음에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지 모르겠다.

물론 이게 민주당이 좌파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강화됐다. 2016년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문재인 정부가 집권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1만 원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보다 더한 윤석열이 정권을 잡았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왼쪽에 제대로 된 세력이 없어서다. 한국 사회에 왼쪽이 너무 없으니 팽이가 넘어지는 것도 오른쪽으로 기울어 넘어진다.

나원준 : 팽이 비유에는 우리 사회의 밸런스가 굉장히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함의가 담겨있는 것 같다. 사회가 격변하는 가운데, 정치적 갈등은 소화되지 않고 있다. 진짜 무서운 건 팽이가 양쪽으로 흔들린다는 비유가 지금까지는 맞게 보이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안정적으로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

저는 이게 어제 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수십 년 간 억눌리며 살아온 한국 사람들이, 자기 삶 속에서 희생당했다고 느꼈던 부분들에 대한 억울함에 받쳐서 뭔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2016~2017년 촛불의 의미가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촛불이 우리에게 가져온 것과 가져오지 못한 것, 과제로 삼았던 것과 해결하지 못했던 것. 그런 것들이 윤석열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일으킨 역사적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큰 무게감으로 닥쳐온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국민의힘 대통령이 두 번째 날아가는 셈이다. 박근혜를 탄핵하며 시작된 스토리가 뭔가 안 끝났고, 그 스토리를 다시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탄핵 촛불 때 해내지 못한 미완의 과제, 약간의 변주는 있지만 그런 부분에 우리가 집중해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권오성 : 질문 중에 광장에서 노동자, 농민과 여성이 만났다는 데 대해 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다 좋은 일인데….

개인적인 경험인데,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 토요일에 광화문에 책을 사러 나갔다. 광화문 이쪽에서 다비드의 별을 든 할아버지들이 군복을 입고 내려오더라. 저쪽에서는 조끼를 입고 빨간 띠 두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오고 있었다. 종각 쪽에서는 까만 마스크를 쓴 여성들이 있었다. 그날 그 다이내믹한 광경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범주와 범주의 갈등 중이라고 느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제일 억울한, 위태로운 세상이구나.

여성들은 그간 젠더 차별을 겪어왔다. 노인들은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던 나라의 정체성이나 자부심이 무너져 가고 있다고 느낀다. 민주노총은 87년 대투쟁 이후 계급성에 기초해 진보 정치와 담론을 주도해 왔는데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고 이런 이들 모두가 광장에 나왔다. 그걸 보면서 이들 간에 있는 골을 봉합하기 어렵겠다, 사회통합이라는 건 힘든 나라가 됐다고 느꼈다.

나는 노동과 젠더가 화해하지 못하면 한국사회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계급성 정치의 기반이 허약한 상황에서 정체성 정치가 들어왔고, 여기에서 비롯한 갈등이 소위 진보 진영 안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젠더 진영은 노동 진영 내부의 성차별적인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노동 진영은 헤게모니를 잃어가는 데 대한 상실감이 있다. 언젠가부터 운동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자본과 척을 져야 하는 쟁점은 잘 건드리지 않는다.

지금은 공동의 적이 있으니까 광장에서 만났지만, 공동의 적이 사라진 뒤에도 그런 연대가 계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오래 가려면 그런 에너지를 받아줄 그릇이 필요한데, 아마 그게 진보정당일 거다. 민주당이 받겠나, 조국혁신당이 받겠나?

우연한 계기로 다이내믹(역동성)이 생기고 사람들이 광장에 몰려들면, 이걸 누가 추수해서 조직하려는 전략을 갖고 가야 안정적인 세력 형성과 장기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지금 기성의 정치세력은 광장을 이용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광장의 동력을 자기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사회단체 중에도 섀도우 캐비닛 비슷하게 조직을 꾸려 정권에 입각하는 데 혈안이 된 곳들이 있다.

▲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프레시안(박상혁)

이재명의 우클릭에 앞서 한국사회의 왼쪽 날개가 무너졌다

프레시안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우클릭 선언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이 대표가 계엄 전부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동의하더니, 상속세 감세에도 뜻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접은 것 같지만,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주52시간제를 흔들기도 했다. 그러더니 민주당은 중도보수라고 선언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권오성 : 계급성이 0에 수렴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클릭이 다른 게 아니다. 이재명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다. 너무너무 영리한 사람이다. 노동, 평등 이야기하면 표가 안 되는 걸 아니까 그러는 거다.

더 나아가볼까.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얼마나 쉽나. 어릴 때 하던 슈퍼마리오 있지 않나. 벽돌 때리면 버섯 나온다. 똑같다. 정치인들이 어쨌든 민주노총 때리면 표가 나온다. 공무원을 때려도 마찬가지고. 윤석열도 그걸로 득을 봤다.

민주노총도 문제다. 교섭단체는커녕 원내에 10석도 못 만드는 현재의 노동·진보진영의 상황에서 뭔가 입법을 하려면 민주당과 딜을 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이 안쓰러운 게 민주당과 딜을 할 거면 미국 노조처럼 민주당에 표를 주고, 돈도 주고, 사람도 모아줄 테니 우리 요구를 들어달라고 해야 힘이 실릴 텐데, 민주노총이 그런 딜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 않나.

상황이 이런데도, 양자 구도로 대선이 치러지면 조합원들이 민주당을 안 찍을 수도 없다. 다른 데는 찍을 수가 없으니까. 지금 민주당 입장에서 민주노총은 솔직히 만만한 거다. 너네가 우리 말고 어디 갈 데가 있긴 하냐는 생각 아니겠나. 그리고 만만하다는 건 언제든 필요할 때 때릴 수 있다는 거다.

오민규 : 이재명이 영리하다는 데 동의한다. 실제로 확 우클릭하는 것도 아니다. 우클릭하겠다고 말 몇 마디를 하는 거다. 지난번에 반도체특별법으로 주52시간제 허문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그렇게 안 했다. 상속세도 당장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고민해 보자고 하고 있다.

정치공학으로 보면, 저쪽(국민의힘)이 극우로 가 있으니까 합리적 보수가 무주공산이 됐고, 이재명 입장에서는 이쪽을 한번 공략해 보자는 욕심도 들었을 거다. 윤석열에게 쏠렸던 시선을 자기에게 끌어오는 효과도 있었을 거다. 욕을 먹어도 내가 먹어야 존재감이 올라가니까.

만약 왼쪽에 제대로 된 계급정치가 서 있었다면 이재명도 절대 오른쪽으로 못 간다. 왼쪽이 비리비리하니까 가는 거다. 게다가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민주당이 오른쪽으로 간다고 하면 '가지 말라'면서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그러면 이재명 입장에서는 '내가 잡은 게 아니고 네가 잡은 거야'가 된다. 주도권이 넘어가는 거다.

그러면 이재명은 또 '확 가지는 않을게' 한다. 뒤로는 '을지로위원회 통해 노동 현안 몇 개 해결해봐' 하면서 왼쪽이 완전히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놓는다. 왼쪽에 계급정치가 제대로 안 서 있으니까 이런 수가 먹힌다.

나원준 :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이재명이 중도보수라고 선언하니 '차라리 잘 됐다'고 하는 분도 있더라. '그러면 우리에게 왼쪽이 열리는 거 아니냐.' 그런데 이 대표가 그런 계산 안 했겠나. 자기가 그렇게 해도 대세에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에 그냥 가는 거다.

이재명이 정치공학적 사고만 하면서 말로만 우클릭을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정책적으로도 상징적인 조치 몇 개는 이뤄질 것 같다. 상속세를 완화하기에 상당히 좋은 조건이고, 반도체특별법도 주52시간제 예외는 안 한다지만 나머지는 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2016~2017년 촛불 때랑 비교해 보면, 그때는 민주당을 왼쪽으로 어떻게든 끌고 왔다. 지금은 왜 그렇게 다를까. 그때도 민주노총이 사람 모아주는 양상은 비슷했다. 또 그때는 왼쪽 진영이 강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때도 약했다.

권오성 : 상황의 변화가 있는 것 같다. 미디어 지형이 바뀐 것 같다. 박근혜 탄핵 때는 레거시 미디어가 탄핵에 세게 반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유튜브, 카카오톡으로 상징되는 개인 미디어를 통해 윤석열 지지 여론이 재생산되고 있다. 2016~2017년에는 박근혜 지지율이 0으로 수렴했는데 지금 윤석열 지지는 조사에 따라 30%까지도 나온다. 그렇다 보니 국회에 군대를 투입한 대통령을 탄핵하지 말자는 이야기까지 세게 할 수 있는 분위기, 나아가 사법기관을 물리적으로 공격해도 된다는 분위기까지 생긴 것 같다. 그러면서 대안은 미뤄두고 일단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문제가 커졌다는 느낌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류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민생경제간담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민주당 당대표와 한경협 회장의 공식적인 만남은 2015년 9월 이후 약 10년 만이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수구성과 반동, 그 밑바닥에 깔린 물질적 토대

프레시안 : 말이 나온 김에 반대편 이야기를 해보자. 민주당이 '우클릭'을 하고 있다면, 국민의힘은 아예 '극우클릭'을 하고 있다. 중국 혐오를 부추기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편승하는 세력에 선을 긋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국민의힘이 원래 보수적이라고는 생각했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응을 보고 좀 놀랐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원준 : 박근혜 때와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12.3 비상계엄 사태가 우연적 계기에 의해 촉발된 면이 있고, 역사라는 게 사실 다 우연적인 계기들로 이뤄지는데, 그 안에서 연속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굉장히 다른 정권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연속선에 있는 걸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 때도 들어선지 얼마 안 돼 일종의 신공안 통치를 했다. 국정원 선거 개입 수사를 강제로 무마시키고 그 다음에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일반해고를 담은 양대지침도 만들었다. 민주노총 건물에 경찰이 들어간 것도 그때였다. 당시에 '유신으로의 회귀'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국경제 재생산의 물질적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굉장히 파쇼적인 정책을 폈다.

윤석열 정권도 들어오자마자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깨부쉈다. 노동체제 면에서 볼 때 굉장히 파시즘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저는 이번 계엄 선포에 통합진보당을 깨고, 노조를 깨고, 그 다음 단계로 민주당을 겨냥한 면이 있다고 본다. 민주당으로 치고 들어가기 위해 기본적인 헌정까지 공격했다. 파시즘 정치의 논리가 그렇게 흐른다. 노동체제에 이어 제도정치로까지 파시즘 정치를 밀어붙여 완성하려 한 거다.

보수반동의 관점에서 노동체제를 보면, 87년 6월 항쟁 이후 7·8·9월 대투쟁으로 균형을 회복해가던 계급적 역관계를 IMF 외환위기 때 다시 엎어서 자본 주도로 만들긴 했는데,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게 있다. 민주당 같은 세력이 집권할 수 있게 돼버린 거다. 물론 민주당은 신자유주의 재벌 체제의 협력자다. 사실 보수당이 맞다.

그러나 어쨌든 보수반동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대한민국의 적자인데, 껄렁껄렁한 운동권 출신들이 와서 정권을 잡는다고 목소리 높이고 자기들을 비난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나는 그 사람들이 지금의 과정을 빼앗겼던 고토(古土)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고 본다. 유튜브를 동원해서 하는 소리도 다 그런 이야기 아닌가 싶다.

나는 이걸 이중의 반동이라고 표현한다, 이미 물질적 재생산 조건 자체는 IMF 외환위기 때 87년 이전에 노동자들이 '무권리'이던 상태로 회귀해 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적인 헌정이라고 하는 측면에서조차 87년 체제 이전으로 되돌아가게 만들려 한 거다.

프레시안 : 사회구조적인 저변의 흐름은 그렇다고 해도, 최근 보수세력의 움직임이 더 과격해 보이는 면이 있다. 그 사이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보나?

나원준 : 행동방식이 더 과격해지긴 했는데, 내용적으로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전부터 봐왔다. 아주 정상적으로 보이고, 좋은 직업을 갖고 은퇴해서 사려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그런 분들이 이념적 정체성을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다 보니까 민주당 정도로의 이념적 이완도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이게 결국에는 한국경제의 진짜 주인이 누구냐와 연결된 문제다. 나는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가 물질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방식과 조건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수구적이고 냉전적인 사람들인데, 그건 한국경제의 주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연결돼 있다.

윤석열이 최근에 열을 올리면서 주주 환원을 이야기했다. 배당도 늘려야 된다고 하고.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 부양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결국 누구에게 이익이 되겠나. 재벌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고, 알려진 바로는 그들의 독점이윤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미국계 자본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그러니 재벌과 제국주의 자본, 이 사람들이 한국경제의 주인이다.

이 진짜 주인들에 기생해서 사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있다. 저는 이게 수구적이고 냉전적인 지금 국민의힘의 정체성을 만든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자유주의적이라고 하지만, 한국경제의 토대 면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재벌 체제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보수 세력이라고 명명한 게 정확한 표현이다. 문재인 정부 때 이상하게 왼쪽으로 잠깐 움찔 한 거다.

권오성 : 사람들이 세대 차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은 시대 차이가 나는 나라다. 서구 자본주의가 250년 정도에 걸쳐 겪은 근대(近代)를 4분의 1의 스케일로 압축해서 겪은 나라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사람, 미군정 시대에 태어난 사람, 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병영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다 같이 살고 있다. 나만 해도 아버지와 이야기할 때 박정희 시대 때 인식을 그대로 갖고 있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게다가 한국이 실패한 나라가 아니다. 물론 실패한 점들이 있지만, 경제성장 자체로만 보면, 세계 제조업 경쟁력 상위권까지 올라갔다. 그러니까 고령층도 자기 세대에 대한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런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오는 바탕에는 박탈감과 자긍심 저하가 있다고 보다. '내가 만든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니들이 망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다. 그 생각은 쉽게 안 없어질 거다.

이건 일종의 정체성 정치이기도 하다. 정체성 정치가 소수자 문제를 말할 때는 너무 필요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별의별 정체성이 다 있다. 예컨데, 내가 최근에 들은 가장 비현실적인 말이 멸공(滅共)이다. 21세기가 4분의 1이 지난 2025년에 공산주의자, 빨갱이를 멸(滅)하자는 말을 막 하는 '멸공주의자'들이 있다. 정말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오민규 : 보수우익 담론을 보면 공산주의자, 빨갱이라는 단어에 자기들이 싫어하는 사람이 다 포함된다. 이제 이재명을 넘어 한동훈까지 공산주의자라고 한다.

나원준 :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민주노조 운동의 약점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한국사회에 기여한 바도 분명 있다고 본다. 민주노조 운동이 없었다면 나이 든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87년을 거치고 민주노조 운동이 사람들의 생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낸 면이 있는 것 같다.

▲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프레시안(박상혁)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이 불러온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오민규 : 최근의 내전 상태를 보며 가설을 하나 갖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교수의 생각도 궁금하다.

세계 경제의 생산력, 성장 공간이 이제 꽉 찬 것 같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는 이제 성장 여지가 없는, 이른바 쇠퇴(decadance) 단계에 이른 거다. 남의 걸 뜯어 먹지 않으면 내 것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 온 거다. 성장의 여지가 있으면 꼭 남의 걸 빼앗지 않더라도 내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여기며 살 수 있을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미국과 러시아의 최근 움직임도 보면, 우크라이나를 신사적으로 약탈할 거냐 아니면 대놓고 약탈할 거냐에서 이제 대놓고 약탈하는 길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2015년에 박근혜만 해도 보수의 자존심 다 버리고 중국 가서 열병식도 쳐다보면서 한중 FTA까지 체결했다. 그전에 한-EU FTA가 2011년, 한미 FTA가 2007년에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3개의 생태계(미국·중국·EU)와 모두 자유무협정을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수출을 늘리면 먹고 살 수 있다', 보수든 진보든 이런 생각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까지만 해도 부동산 거품을 더 띄울 여지가 있었다. 그걸로 경제 활성화를 하고 중국과 무역을 잘 하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도 최저임금 1만 원을 이야기한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성장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미국도 마찬가지고, 세계 경제가 서로 약탈하고 있다. 트럼프도 과학기술 혁명이니, 4차산업 혁명이니 이런 걸로 자본을 고도화하는 게 아니고, 미국 밖에서 다 빼앗아와서 자국 경제를 성장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도 그 단계에 왔고,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것을 빼앗으려는 내전이 벌어지고, 사회통합이 도저히 안 되는 구도가 펼쳐지고 있는 게 아닐까.

권오성 : 제로섬(Zero Sum) 상태가 된 거다. 제로섬 상태가 된 걸 다 인식하고 있으니, 더 넓은 범주의 연대에 관한 전향적인 이야기가 안 나온다.

나원준 : 저성장 국면이 내전 상태에 영향을 줬다는 가설에는 일리가 있다. 성장에는 사회갈등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니까. 이재명의 포석도 성장주의를 다시 해보자는 것 같다.

오민규 : 이재명은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혹은 헛된 것일지라도 성장의 꿈을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성장이 가능한 상황인가.

나원준 : 경제성장이 더 가능할지는 아직 좀 판단하기 어렵다. AI라든가 하는 걸로 자본을 더 고도화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더 많기는 하다.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어쨌든 독점자본주의의 침략성이나 폭력성이 강화되는 면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한국은 게다가 IMF 외환위기 이후에 많은 노동자가 '무권리' 상태로 떨어져버렸고, 노동조합 조직률도 얼마 안 된다. 그런 상태가 2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자본주의가 말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 아닌가라는 지적에는 공감이 된다. 자본은 항상 성장의 환상을 심어줘야 되는데, 내가 볼 때는 AI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이게 어떻게 축적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별로 답이 없다. 트럼프의 행보에도 그런 문제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삼일절인 1일 서울 곳곳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은 안국동 야 5당 공동 파면 촉구 범국민대회. 오른쪽은 세종대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탄핵 반대 집회. ⓒ연합뉴스

광장의 이야기가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나원준 : 이번 국면을 거치면서 노동조합은 정치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민규 : 그렇지 않다. 도로에 나가보면 탄핵 반대 현수막이 어마어마한데, 안타까운 건 민주노조가 조직돼 있는 공장과 사업장 안에 노조 현수막이 별로 없다. 대자보도 없다. 공장 안에서 윤석열 탄핵, 내란 세력 어떻게 하자 이런 현수막이 잘 안 보인다. 노조 신문도 지난 집회에서 이런게 있었다는 보도 수준이지 노동조합 관점에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우리는 뭘 해야 된다 이런 내용이 거의 없다.

지난번에 왜 광주에서 탄핵 찬반을 놓고 대결하지 않았나. 그래도 빛고을 광주가 위신은 지켰다고 했다. 똑같은 날 울산에서 탄핵 반대 세력이 모였다. 울산시장까지 참여한 집회에 2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울산이 어떤 동네인가.

나원준 : 붉은 울산인데.

오민규 : 탄핵 찬성 집회에는 수천 명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진지는 활성화가 안 돼 있고, 바깥 진지는 저쪽에 뺏겨버렸다.

나원준 : 노동 현장이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게 사실 촛불의 한계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같다. 87년 체제를 만들어낼 때 혹은 김영삼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와 전면적으로 싸우던 때나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그냥 무조건 질러대고 있는 가운데, 현장 조합원들은 활성화가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가끔 지역에서 들어보면, 노조 간부들이 옛날 학생운동 말기 때처럼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역사적 경험 속에서 노동운동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데, 운동의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집약할 수 있는 선명한 구호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두 가지가 현재 진보진영이 맞닥뜨린 한계의 주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싸움에서 전선의 핵심이 민주당 대 국민의힘으로 가버렸다. 민주노총은 또다시 사람 모아주고 끝날 것 같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에서 파면 결정을 하면 더 그럴 거다. 급속하게 대선 국면이 펼쳐질 거니까.

오민규 : 그렇다고 우리 요구를 뭐 하나 관철하지도 못한다.

나원준 : 그러니까 안타깝다. 비상행동도 너무 안타깝고. 너무 열심히 하니까. 죽을 고생해서 진짜 열심히 하는데…. 광장에서 키세스나 남태령 같은 좋은 장면도 보여줬지만, 전체적으로 기층민중의 요구가 집약되는 모습이 부족한 것 같다. 그 힘이 현장에서 조직되지 못하니, 결국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을 지원해주는 역할로 그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쨌든 오늘 광장에 나가야 되고, 거기서 싸워야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건 분명하니까.

권오성 : 즐거운 게 아니고 뭔가 부득이하게 광장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게 씁쓸하다. 그러면 축제가 될 수 없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그게 어떤 요구로 모이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오다 가다 들리는 많은 말이 소비되는 느낌이고, 축적된다는 느낌이 안 든다.

농민이나 2030 여성이나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나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광장에서 소비되는 땔감으로 쓰이는 것 같다. 반대편에서 십자가 들고 있는 전광훈 패거리와 싸우는 전선에서 학도병처럼 쓰러져 가는 느낌이다. 그러면 안 된다. 그들이 광장에서 하는 이야기가 향후에 정치나 정책 의제로 진지하게 다뤄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하 - 대안' 편에 계속)

▲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레시안(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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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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