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파행으로 끝난 이후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강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러시아는 유럽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거세게 밀어붙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2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매체 <타스> 통신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그들(유럽)은 이제 평화유지군이라는 형태로, 총검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려 한다. 이는 근본 원인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말하고 있고 스타머(영국 총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수천 명의 평화유지군을 준비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공중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부적절하다"라며 "이 계획은 우크라이나가 우리에 대한 전쟁을 일으키도록 계속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2월 28일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유럽 및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국가 정상들은 긴급 회의를 위해 영국에 모였다. 2일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우리의 미래를 지킨다'(Securing Our Future)는 슬로건 하에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덴마크, 체코 등 유럽 주요 국가뿐만 아니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참석해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영국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스타머 총리는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영국, 우크라이나, 프랑스 및 유럽 일부 국가가 "의지의 연합"을 구성하고 트럼프에게 제시할 평화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타머 총리는 "지금은 더 이상 말로 할 때가 아니다. 행동할 때다.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중심으로 단결할 때"라고 말했다.
미국 방송 CNN에 따르면 그는 영국의 수출 금융 자금 16억 파운드(약 20억 달러)를 사용해 5000개 이상의 첨단 방공 미사일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이는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상 및 공중에서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차원의 지원을 밝히기도 했는데,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스타머 총리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안보를 보장해야 하며,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이 미국에 제시할 평화 계획과 관련, 구체적인 사항은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유럽 및 나토 정상회담 전 마크롱 대통령이 '지상전을 제외한 한 달 휴전안'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실질적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럽의 평화유지군이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이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위한 독자 행보를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에는 호의적인 제스처를 보이며 트럼프를 달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기도 했다. 스타머 총리는 "지난 금요일에 일어난 일(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도 "미국이 신뢰할 수 없는 동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영국의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이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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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미국에 대해 "전략적 파트너"라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다. CNN은 2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나 "우리(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우리를 지지하는 국가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 감사드린다. 양당의 초당적 지지는 항상 우리 편이었고, 같은 수준에서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 측이 제안한 희귀 광물 협상에 대해 "우리는 서명할 준비가 되었고, 미국도 준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당사자들이 준비가 되면 서명될 것"이라고 말해 미국과 다시 협상을 추진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정상회담 이후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까지 거론하며 더욱 거세게 젤렌스키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있다. 마이크 월츠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CNN에 출연해 젤렌스키가 전쟁 종식을 협상할 준비가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월츠 보좌관은 "우리와 러시아를 상대하고,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개인적 이유 또는 정치적 동기가 전쟁 종식이라는 목표와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진다면, 우리는 진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역시 2월 28일 기자들에게 미국이 여전히 젤렌스키 대통령과 협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2일 미국 방송 NBC의 <미트더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해 "뭔가 바뀌어야 한다. 그(젤렌스키)는 정신을 차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하도록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를 언급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 방송 ABC의 <디스위크>(This Week)에 출연해 정상회담 이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통화하지 않았다면서 "그들(우크라이나)이 평화를 이룰 준비가 되면 다시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미국의 태도에 러시아는 긍정적 반응을 내놨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2일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실용적인 사람이다. 그의 슬로건은 상식"이라고 평가했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그의 팀인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월츠는 말 그대로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며 "그들은 우리를 통제하지 않고 우리가 그들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근거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전임자(조 바이든 대통령)가 지난 4년 동안 무엇을 망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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