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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함성, 잊혀서는 안 될 독립운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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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함성, 잊혀서는 안 될 독립운동의 역사

1919년 3월16일 인동과 유성장터에서 터져 나온 독립의 외침 대전 전역으로 번져갔다.

▲ 3.16 만세로 광장에는 1919년 3월16일 인동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현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을 외쳤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 프레시안(문상윤)

105년 전 대전에서도 독립을 위한 뜨거운 외침이 이어졌다. 3·1운동이 서울에서 시작된 지 보름 뒤 대전의 인동과 유성장터에서 첫 만세운동이 일어나면서 독립을 위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이후 대전에서는 철도 노동자와 학생들이 주도하는 항일운동이 지속적으로 펼쳐졌고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역사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대전에서의 본격적인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16일 인동과 유성장터에서 시작되었다.

이상수·이권수 형제가 주도한 유성장터에서 벌어진 대규모 만세 운동과 인동 만세운동은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특히 인동 만세운동은 다른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대전역 부근에서 펼쳐졌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일본 경찰과 헌병대는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대전형무소로 끌려갔으며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날의 시위를 시작으로 세천, 유천동, 가수원, 회덕역, 산내, 갈마동 등 대전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연이어 벌어졌다.

특히 유성장터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만세를 외쳤고, 일본 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전 지역에서 총 8차례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일제는 대전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을 강하게 탄압했다. 만세운동 이후 일본 경찰은 대전 지역에서 독립운동가 체포 작전을 강화했고 체포된 이들은 대전형무소(현재 중구 목동 위치)에 수감되었다.

1939년 대전형무소는 수감자 증가로 확장되었으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전지역 독립운동의 전개와 과제(김상기, 2023) 연구에 의하면 대전형무소는 대전 지역 독립운동 탄압의 중심이었으며 일제가 이곳을 통해 항일 세력을 무력화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형무소 건물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망루 하나만이 남아 과거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 대전 중구 목동에 위치한 옛 대전형무소 망루. 이곳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모진 고문을 견뎌야 했다. ⓒ 프레시안(문상윤)

3·1운동 이후 대전에서는 보다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전개되었다.

1927년 대전청년동맹이 결성되었으며 이는 학생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청년들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며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으며 특히 교육 기관과 노동 현장에서 항일 의식이 확산되었다.

학생들 역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대전중학교에서는 '선우회’라는 비밀결사 조직이 결성되어 학생들이 반일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은 몰래 태극기를 제작해 배포하거나 항일 전단지를 돌리는 방식으로 독립 의식을 고취했다.

학생들이 주도한 항일운동은 단순한 시위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조직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대전 지역의 철도 노동자들도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맞서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일본은 조선의 철도를 이용해 자원을 수탈하고 군사적 통제를 강화했으며 철도 노동자들은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들은 독립운동 단체와 연계되어 비밀리에 독립자금을 지원하거나, 일본의 철도망을 방해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대전의 독립운동은 특정 인물이나 단체에 국한되지 않았다.

학생,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 다양한 계층이 힘을 합쳐 독립을 위해 싸웠으며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역사로 남아 있다.

오늘날 대전에서는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유성구에서는 매년 유성장터 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진행되며 대전현충원에서는 독립운동가 추모식이 열린다.

하지만 대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인동, 대전형무소 등에 대한 기념 사업은 여전히 부족하다.

대전 시민 배 모 씨(45)는 “대전에도 3·1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독립운동의 흔적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05년 전 대전에서 울려 퍼진 만세 소리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날의 함성은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립과 자유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울림이다.

우리가 이 역사를 기억하는 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정신은 현재와 미래 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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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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