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주모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선고만을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보수진영 내에서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나 그 이후 나온 부정선거 음모론 주장에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국민의힘 최재형 전 의원은 지난 24~25일 SNS에 잇달아 올린 글에서 "탄핵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는 지인에게 호소하는가 하면, 특히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최 전 의원은 감사원장·판사 출신이며 한국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 고(故) 최영섭 해군 대령의 아들이다.
최 전 의원은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는 고교 동문에게 문자를 받고 자신이 보낸 답신 내용이라며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위협을 감지한 많은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보수의 각성과 결집을 가져온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면서도 "그런데 나는 대통령의 구국의 결단이라고 하더라도 군 병력을 국회의사당에 진입시키고, 국회의 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발령한 것만으로도 중대하고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반에 해당되고, 결코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탄핵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경우에도 탄핵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정치력을 발휘하여 나라를 이끄는 어려운 길보다 군 병력을 이용한 비상조치라는 손쉬운 수단을 사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되고 우리 정치는 1960년대로 퇴행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나의 오랜 법조 경험에 비추어볼 때, 홍장원이나 곽종근의 진술이 지엽적인 사실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부분이 있지만 큰 틀에서 일관성이 있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군 병력을 진입시킨 것이 '계몽령'이고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주장은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수 세력까지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친구에게 "네 생각이나 기대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면서도 "우리가 이재명을 중심으로 한 반 대한민국 세력을 꺾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결국 선거에서 이겨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전략적이고 치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 전 의원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관련해 쓴 별도의 글에서는 자신의 감사원장·법조인·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을 종합해 △투표지분류기에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장치는 없었고 △부정선거를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했다는 것인지 기본적인 줄거리 형성 자체가 불가능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으며 선거를 포기할 수도 없다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부정선거에 관한 주요 주장 중 하나는 전자개표기(정확히는 투표지분류기)에 외부에서 해킹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득표수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2021년 감사원장 재직 당시 '투표지분류기에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무선랜카드가 장착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으니 이를 감사해 달라'는 공익감사청구가 접수돼 감사부서에 투표지분류기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는데, 당시 전체 투표지분류기 1177개 가운데 대법원에서 당시 진행 중인 국회의원 선거무효 소송에서 검증할 것을 대비해 봉인해둔 7개를 제외한 1170개 투표지분류기를 모두 전문가 자문을 통해 가능한 여러 방법으로 점검하였으나 투표지분류기 제어장치에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무선랜카드 장착은 확인할 수 없었고, '무선랜카드를 사후 제거했다'는 주장도 있어 무작위로 21대를 선정하여 직접 분해 점검했으나 무선랜카드를 사후 제거한 흔적도 없었다. 납품업체도 투표지분류기에 무선랜카드를 장착한 사실은 없다고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외의 많은 부정선거 관련 주장들도 대부분 선관위와 법원에 의해 해명됐다"며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데, 일부 유튜버들은 짜깁기한 영상으로 계속 의혹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선동은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부정선거를 앞장서서 주장하는 검찰 출신 후배가 저에게도 동참하기를 권한 적이 있어, 저는 그 후배에게 '부정선거를 밝히려면 결국 법원을 설득해 선거무효 판결을 받아야 한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선거부정(전산조작이든 사전투표지 교체든)을 계획하고 실행했는지 6하원칙에 의해 최소한의 줄거리라도 작성해야 선거부정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지 않나. 그런 공소장을 작성할 수 있으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며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어느 누구도 그러한 최소한의 줄거리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부정선거 주장은 누가 어떤 부정선거 행위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도 못한 채 파편적인 내용을 이어붙인 수준"이라며 "대법원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무효소송(2022.7.28. 선고 대법원2020수30 판결)에서 '단편적·개별적 사정과 이에 근거한 의혹만을 들어 선거소송을 제기, 효력을 다투는 것으로 선거무효 사유의 증명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선거무효 사유 증명책임이 있는 원고가 위조투표지의 투입, 전산조작 등 중대한 범죄행위가 대규모로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행위주체의 존부 및 방법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채 외견상 정상적이지 않은 듯한 투표지가 일부 보인다는 등의 의혹제기만으로 증명책임을 다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정선거를 믿는 분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다. '부정선거가 있는데 투표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도 하신다"며 "저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린다. '부정선거가 있다고 해도 지난 대선도 이기고 지방선거도 이기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체제 수호 전쟁은 결국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며 "계속되는 부정선거 논란은 보수를 현실 정치에서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라고 호소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