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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家 '축구의 시대' 장기집권, 이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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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家 '축구의 시대' 장기집권, 이번에도?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중징계' 다툼 속 정몽규 4선 도전

"(현대 계열 기업들이) 매년 축구계에 1500억 원을 투자하는 부분도 고려해주시길 바란다."

지난 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현대가(家)의 축구협회 장기집권 지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현대는 K리그 구단 전북 현대, 울산 HD, 부산 아이파크와 여자 실업 축구팀 현대제철을 지원하고 있으며 연령별 대표팀도 10개 이상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축구계에서 현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한국 축구의 컨트롤 타워인 축구협회도 1993년 정몽준 현 아산재단 이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조중연 회장이 재임했던 4년을 제외하면 모두 범(凡)현대가 출신이 지휘하고 있다.

현대가(家) '축구의 시대'는 어떻게 시작됐나

1993년 정몽준 의원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년 전 김우중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대우 그룹 기업 경영에 집중하기 위한 그의 결정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축구협회 회장으로 재정적 지원을 했지만 국제무대에서 대표팀의 성과가 나지 않아 국민의 비난만 산 것에 대한 좌절감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 와중에 현대계열의 정몽준 의원이 차기 회장을 노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현대는 홈구장이 있는 울산에 50여 명의 축구 원로를 초청한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축구인 출신의 회장 추대론도 거론되고 있었다. 이는 김우중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었다. 현대 그룹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대우의 총수 김우중은 축구인 회장을 내세워서 섭정 체제를 모색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고(故)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의 축구협회장 출마설도 회자됐다. 박 회장은 포철 구단 관계자를 만나 간접적으로 축구협회장 출마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우리가 스포츠에서 일본보다 앞선 것은 축구뿐인데 일본은 이미 월드컵 개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대로 나가다는 자칫하면 축구마저 일본에 밀릴 것"이라며 "포항제철은 축구 전용구장을 세우는 등 나름대로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은 축구가 프로야구의 인기에 밀려 팬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협회의 행정과 축구장 인프라를 개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었다.

1993년 1월 우여곡절끝에 정 의원이 축구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축구인 출신으로 회장 후보에 거론됐던 김창기 대학축구연맹 회장은 협회장 도전의사를 철회했고 박태준 회장도 협회장 자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정몽준 회장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었다. 당시 부산 초원복집 도청사건으로 기소 상태에 있던 정몽준 회장이 향후 어떤 처벌을 받거나 정부 부처와의 불편한 관계가 형성될 경우 축구협회 운영에 파행을 거듭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아버지 고(故) 정주영 회장을 도와 선거운동을 했던 야당 의원 정몽준에 대한 김영삼 정권의 견제 가능성도 제기됐다.

'도하의 기적'으로 위기를 넘긴 정몽준 회장

이런 분위기를 정몽준 회장은 2002년 월드컵 유치 프로젝트로 바꿔 놓았다.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축구로 방향을 전환한 그의 결정은 맞아 떨어졌다. 정부 차원에서도 월드컵 유치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1994년 월드컵 예선이었다.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한국은 일본에 0-1로 패했다.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이 일본에 40년 만에 처음으로 당한 패배였다.

숙적 일본에 패배한 충격도 컸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나서지 못하고 일본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경우 한국의 2002년 월드컵 유치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도하의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은 마지막 예선 경기에서 북한을 3-0으로 이겼다. 한국이 승리했더라도 일본이 이라크에 승리하면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좌절되는 상황이었다.

일본은 경기 종료 1분 전까지 이라크에 2-1로 앞서 있었다. 기적은 후반 추가 시간에 터져 나왔다. 이라크가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기록해 경기는 2-2로 끝이 났다. 이 결과로 일본은 탈락했고 한국은 골득실을 따져 월드컵 본선 3회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월드컵 유치전에 후발주자로 나섰던 한국에 이 경기는 매우 중요했다. 정몽준 회장은 언론을 통해 "일본은 단 한차례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반면 한국은 4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나갔다"는 점을 크게 부각시켰다. 일본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불리한 상황이었던 한국의 2002년 월드컵 대회 공동 유치에 '도하의 기적'은 큰 역할을 한 셈이었다.

범현대가 프로축구팀 구단주 역할을 섭렵했던 정몽규

현대 그룹의 한국 축구에 대한 강한 영향력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이력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정 회장이 지난 해 출간한 자서전 <축구의 시대>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부사장이던 그는 1994년 울산 현대 축구단의 구단주가 됐다.

그가 축구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96년이었다. 명문 구단으로 불렸지만 창단 이후 단 한번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울산 현대가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 때 차지했다.

더욱이 이 해에 결승전 상대가 현대의 재계 라이벌 삼성이어서 축구 팬들의 관심은 증폭됐다. 수원 삼성은 당시 정몽준 축구협회장이 프로축구 활성화를 위해 고(故) 이건희 회장에게 요청해 창단한 팀이었다. 농구와 배구 등 각종 스포츠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현대와 삼성의 라이벌전이 프로축구 판에서도 펼쳐진 셈이었다.

현대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1차전을 삼성에 0-1로 내줬지만 2차전에서 3-1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두 팀간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퇴장과 경고가 난무했던 경기였지만 이 결승전은 큰 관심을 끌었다.

정몽규 회장은 울산 현대의 첫 우승을 이끌고 이듬해인 1997년에 전북 현대의 구단주로 자리를 옮겼다. 호남에 탄탄한 지역 연고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1994년 창단했던 전북 버팔로는 해체 위기였다. 결국 전라북도 전주 인근에 세계 최대 상용차 공장을 짓고 있던 현대자동차가 이 구단을 인수했다.

이후 같은 리그에 운영 주체가 같은 복수의 팀이 존재하면 안 된다는 FIFA(국제축구연맹) 규정에 따라 전북 현대는 현대자동차가 맡고 울산 현대는 현대 중공업이 모기업이 됐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정몽구 회장 체제로 전환되면서 정몽규 회장은 1998년에 평생직장으로 생각했던 현대자동차를 나와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산업개발은 2000년 모기업인 대우의 경영 악화로 어려움을 겪던 대우 로얄즈를 인수했고 정몽규 회장이 구단주가 됐다. 이후 그는 2011년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가 됐으며 2년 뒤에는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포니정재단 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차기 축구협회장 선거 관련 입장을 밝힌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체부의 징계 압박과 정몽규의 4선 연임

정몽규 회장의 4선 연임 공약 중에는 2031년 아시안컵 축구대회와 2035년 여자 월드컵 대회 유치가 있다. 1960년 대회 이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아시안컵 축구대회와 최근 그 규모와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여자 월드컵 대회의 국내 유치는 모두 의미가 크다.

하지만 정 회장 4선 연임의 최대 걸림돌은 1993년 정몽준 회장 출범 때와 비슷하다. 정부와의 마찰 가능성이 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1월 축구협회 감사 결과에서 정 회장 등 주요 임원에 대해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협회에 요구했다. 하지만 협회는 징계 시한을 앞두고 징계 요구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과 함께 징계 요구 효력의 정지를 요청하는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고 정몽규 회장은 오는 26일 선거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체부는 지난 18일 법원이 내린 정 회장 징계 요구 효력 정지에 대해 항소하기로 했다. 문체부의 항소는 정 회장에 대한 징계 압박을 계속 하겠다는 의미다. 정 회장이 4선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협회 보조금을 환수하거나 제재부가금을 징수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현재로는 정몽규 회장이 4선 연임에 성공해 국제대회 유치전에 뛰어든다고 해도 월드컵 유치를 통해 위기를 벗어났던 정몽준 전 회장과는 다른 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을 펼쳐질 경우에는 다른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정몽규 회장이 4선 연임에 성공할 경우 축구적인 측면에서 그의 첫 번째 시험무대는 2026년 북중미(미국, 캐나다, 멕시코) 월드컵이다.

1993년 회장에 선임된 뒤 정몽준 체제에서 처음으로 치른 1994년 월드컵도 미국에서 열렸다. 흥미롭게도 1994년 월드컵 조별 예선 독일전에서 대활약을 펼친 홍명보가 2026년 월드컵에는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다. 당시 한국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던 위르겐 클린스만은 한국 대표팀의 전임 감독이었다.

최근 이변이 많이 나타났던 각종 체육단체장 선거를 감안하면 26일 열리는 대한축구협회 선거 결과를 점치기는 조심스럽다. 정 회장의 당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절대적으로 우세하지만 이변의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정 회장이 4선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현대의 축구협회장 독점은 적어도 그의 임기가 끝나는 4년 뒤에는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대 그룹의 축구의 시대가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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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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