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총액 35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추경) 예산 편성을 제안한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추경 편성에는 동의했으나 규모는 감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여당 측도 추경 편성이라는 방향 자체에는 한 발 더 나아간 태도를 보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지금 상태에서도 저희는 추경을 15조~20조 원 규모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앞서 '20조 원 추경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는 지금과 같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감안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같은 판단에 대해 "장기 재정건전성 등을 다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는 "추경의 시기, 규모, 내용 모두 중요하다"며 다만 "추경만으로 자영업자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지난달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며 15∼20조 원 규모 추경을 제안한 바 있다. 이후 약 1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추경 규모에 대한 의견은 그대로라는 것으로, 지난 13일 민주당이 제안한 추경 규모와는 2배가량 차이가 있다.
이 총재는 야당안에 대해서는 "진통제를 너무 많이 쓰면 지금은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 안 좋다", "적절한 양의 진통제를 써야 한다"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올해 추경을 35조 원 규모로 한 뒤에 내년에 35조 원 이상으로 하지 않으면 성장률에 음의 효과를 주게 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 민주당이 국민 1인당 25만 원의 소비 쿠폰을 지급하는 사업을 추경으로 추진하자고 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이 총재는 "(예산은) 타깃을 정해서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소비자에게 소비 쿠폰을 25만 원어치씩 나눠주는 것보다 25만 원의 몇 배에 해당하는 돈을 어려운 자영업자에게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추경에 관한 더 적극적 입장이 나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민생경제에도 어려움이 있고 미국 신정부 출범 이후 여러 이슈가 있어 재정적 소요가 있는 건 맞다"며 "여야가 추경 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국정협의체에서 논의가 시작될 필요가 있다", "조속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연합인포맥스>가 보도했다.
앞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는 지난 13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국회의장께서 국정협의체를 가지고 제안해 주셨기 때문에 그 틀에서 (추경을) 논의하자", "기본 원칙이 합의여야 한다"고 원칙적으로 열려 있다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신속한 추경 논의가 필요하지만 기존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본)예산 집행 효과가 어떤지 보면서 추경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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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도 이날 추경 편성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추경을 포함해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모든 정책대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 야당과도 얼마든지 협의할 의지가 있다"(권성동 원내대표)라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다만 "중요한 것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에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 "국민의힘의 추경 원칙은 '가장 절실한 곳에 가장 먼저 쓴다'는 '핀셋 추경'"이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내수 부진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을 위한 조치가 최우선이고, 반도체·AI·원전(핵발전) 등 미래산업을 위한 R&D 예산 강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우리 당은 추경 논의를 반대하지 않지만 분명한 원칙과 방향이 필요하다"며 "지역화폐같은 정쟁 소지가 있는 추경은 배제하고, 내수회복, 취약계층 지원, AI를 비롯한 산업·통상경쟁력 강화를 위한 추경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AI 정책 관련 당정협의에서도 이 분야와 관련해 2조 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하기도 했다. 여당 측에서 부분적으로라도 구체적 추경 액수에 대한 공식 입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35조 원' 제안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규모나 사업 내용에서 협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분위기다. 민주당도 이날 박찬대 원내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산업정책 관련 추경예산 간담회를 여는 등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여야정 지도부는 오는 20일 국정협의회 4자 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우원식 국회의장,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참석하는 이 회담을 통해 추경 규모·사업 관련 합의점이 도출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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