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물가상승률이 7달 만에 3%대로 다시 올라서면서 물가 안정에 대한 기대가 흔들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탓에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올 들어 달러 강세가 꺾이며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2일(이하 현지시간)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 지난달 대비 0.5% 상승했다. CPI 상승률이 3%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이다. 전월 대비 상승률도 2023년 8월(0.6%) 이후 17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품목별로는 조류 독감 탓에 계란 가격이 전달 대비 15.2% 급등한 것이 눈에 띄었다. 계란값 상승폭은 2015년 6월 이후 최대 수준이다. 계란 가격이 전체 식품가 상승을 이끌어 식품 가격은 전달 대비 0.4% 올랐다. 에너지 가격도 전월 대비 1.1% 상승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 및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1월 근원 CPI도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해 지난달 상승폭(3.2%)보다 컸다. 전달 대비 상승률은 0.4%로 역시 지난달 상승률(0.2%)을 웃돌았다. 다만 전년 동월 대비 근원 CPI 상승률은 지난해 6월 이후 3.2~3.3% 수준에서 맴돌아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CPI 상승률은 2022년 6월 9.1%를 기록한 뒤 2024년 9월 2.4%까지 떨어지며 안정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몇 달간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로이터> 통신은 캐나다 금융서비스업체 BMO 캐피털마켓의 미국 담당 수석경제학자 스콧 앤더슨이 "지난 여름 소비자 인플레이션에서 봤던 완만함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며 이는 "단순히 한 달만의 사건이 아니라 몇 달 동안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여"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고 짚었다.
<AP> 통신도 소비자 지출이 견고해 기업들이 가격을 낮출 유인이 적고, 2023~2024년 초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기여했던 공급망 개선 효과도 대부분 마무리 돼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1월은 기업들이 대거 가격을 인상하는 것을 포함해 일시적 가격 상승 요인 또한 많아 추세가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1월 자동차 보험료가 전달 대비 2%, 처방약 가격이 2.5% 오른 것으로 집계되는 등 신년 가격 인상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징후도 있다.
<로이터>를 보면 미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수석경제학자 토마스 사이먼스는 가격 인상이 많은 "1월은 까다로운 달"이라며 "다음 달에도 (지금의 물가 상승세가) 반복될 것이라 예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향후 인플레이션에 불확실성이 더해진 것은 분명하다.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12일부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13일까지 상호 관세 계획도 발표될 것으로 예고했다.
12일 <AP> 통신은 일리노이주 글렌뷰에 있는 가전제품 매장 Abt의 운영부사장 필 해넌이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이르면 3월 제품가격이 3~15% 오를 것으로 예상 중이라고 보도했다. 해넌은 이미 2주 전부터 공급업체로부터 가격 인상 공지를 받고 있으며 이미 많은 소비자들이 관세 부과 시점 및 가격 인상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많은 분석가들이 관세 부과로 인해 기업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해 제품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본다. <로이터>는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이 불확실성을 더한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무역 상대국과 제품들에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시행 일정이 계속 바뀌고 있다고 짚었다.
관세 뿐 아니라 이민자 추방 정책도 저임금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권자들이 조 바이든 정부 아래 인플레이션과 실질 소득 감소에 반응하며 당선됐다"며 "정치적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부활은 트럼프 대통령직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1월 물가를 "바이든 인플레이션 상승"이라고 부르며 "금리를 낮춰야 하고 이는 다가올 관세와 함께 진행될 것"이라며 연준을 재차 압박했다.
그러나 <AP>를 보면 12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고개를 숙여 업무를 수행하며 경제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반으로 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가 연준의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수준이 "큰 진전"을 이뤘지만 "아직" 목표치인 2%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연준은 금리를 "현재로선 제한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전날 증언에선 관세 인상이 인플레이션율을 높이고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역량을 제한하는 것이 "(예상) 가능한 결과"라면서도 얼마나 많은 수입품에 얼마나 많은 관세가 부과될지에 따라 "어떤 경우엔 소비자에게 크게 전달되지 않고 어떤 경우엔 전달된다"며 단정적 답변은 피했다.
연준은 지난해 9월 4년 반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뒤 3차례 연속 금리를 인하했지만 1월 물가상승률로 인해 금리 인하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가상승률이 시장예상치를 상회하며 이날 미 뉴욕증시에서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27%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1%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도 0.5%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로이터>는 제이크 달러하이드 미 롱보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가 이날 주가 하락에 대해 "시장이 연준이 금리를 전혀 인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소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들어 달러 강세 또한 꺾였다고 지적하며 관세 등 트럼프 정부가 벌이는 무역 전쟁으로 인해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경제가 흔들릴 수 있음을 시장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신문은 미 투자회사 아폴로의 수석경제학자 토르스텐 슬로크가 무역 전쟁이 "잠재적으로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근본적 두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_resources/10/2025/02/14/2025021317190294608_l.jpg)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