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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백수’가 과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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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백수’가 과로사한다

작년(2024년) 9월1일부터 백수가 되었다. 연금을 받으니 완전한 백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편하게 백수라고 한다. 친구들보다 연금이 조금 많은가 보다. 질투하는 녀석이 있다. 그래서 “너는 42년간 연금 냈니?” 하고 물으면 아무 말 못한다. 사실이다. 1982년부터 월급에서 ‘기여금’이라는 명목으로 꼬박꼬박 떼어갔다. 유리봉투라 세금도 한 푼 떼먹지 못하고 원친징수 당했다. 퇴직 직전에는 38%를 세금으로 냈다고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여든 살까지 무조건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낸 돈과 같고, 더 살면 그때부터 나랏돈 받아먹는 것이란다. 생각해 보면 선친께서도 교사였는데, 76세 때 돌아가셨다. 숙부도 교사였는데, 72세에 돌아가셨으니 우리 가족들은 연금을 제대로 타 먹은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우리 세대(큰형, 형수, 아내 모두 교직에 근무했다)는 여든 살까지 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환갑을 못 넘기셨고, 증조부는 일제 강점기 때 항일운동하시다가 서른 세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무튼 단명한 집안이라 조금 걱정이 된다.

백수(?)가 되면 한가하게 여행 다닐 수 있으려나 했더니, 아내도 바쁘고 필자도 은근히 바쁜 관계로 제대로 된 여행을 하지 못했다. 아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면 “돈도 안 되는 일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백수가 되었으니 한가한 줄 알고 번역해 달라는 사람도 많고, 아들 낳았으니 이름 지어달라는 사람, 여기저기 강의해 달라는 청탁(?), 그리고 명예교수라는 신분으로 강의도 해야 하고, 요즘 유행하는 동영상도 찍어야 한다. 요즘 그나마 인기가 좀 늘어서 팬(?)관리도 해야 한다. 들어오는 금액은 2/3로 줄었는데, 나가야 할 곳은 여전히 많다. 겨울을 지나면서 상가는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정말로 백수가 과로사할 지경이다.

오늘의 주제가 백수니 만큼 백수에 관한 의미부터 찾아보기로 하자. 사전적인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한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늘 필자가 굳이 강조하는 백수가 바로 이것이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과로사할 정도로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게 무슨 비논리적인 말인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아흔아홉 살을 달리 이르는 말’이 있다. 한자로 ‘백수(白壽)’라고 쓴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흰 백(白)’ 자가 된다. 그래서 99세를 ‘백수(白壽)’라고 하는 것이다. ‘하얗게 센 머리’를 이를 때도 ‘백수(白首)’라고 한다. 이제 각각의 예문을 보기로 하자.

그는 취직이 되지 않아 백수(白手) 생활을 한다.

태호는 긴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교수로 취직하였다.

두 늙은이는 모두 이가 빠졌고 머리는 백수(白首)였다.(흰머리)

사자를 흔히 백수(百獸)의 왕이라고 부른다.(온갖 짐승)

올해 백수(白壽)이신 최 교수님께서 아직도 책을 집필하신다.(99세)

위의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수’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위의 예문 두 개는 일반적인 건달 백수로 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문장의 맨 뒤의 설명과 같다. 그 외에도 여기에 빠진 것으로 ‘伯嫂큰형의 아내, 白水맑은 물, 白袖손을 덮기 위해 저고리나 두루마기 따위의 소매 끝에 흰 헝겊으로 덧대는 소매, 白鬚허옇게 센 수염, 白叟나이 많이 먹은 사람’등과 같이 다양하다. 이러한 ‘백수’라는 단어는 모두 한자어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빨리 퇴직해서 쉬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노인의 혜택도 받아보고 싶었다. 막상 퇴직하고 나니 노인의 혜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지공거사(지하철 공짜로 타는 사람)로 사는 것이지만, 그것도 자동차로 다닐 때가 훨씬 더 많아 아직 느낌은 별로 없다. 백수가 되어 보니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이 바쁘다. 이유 없이 바쁘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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