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애정(?)이 식을 줄 모른다. 1기 때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고선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했고, 김정은이 보낸 친서를 "러브레터", "아름다운 편지"라고 부르면서 자랑하기도 했다. 대선 유세 때에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도 '김정은과 잘 지냈고, 잘 지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줄곧 해왔다.
트럼프는 2기 취임 당일에도 조선을 "핵보유국(nuclear power)"라고 부르면서 그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또 1월 23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다시 연락을 취해보겠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과제에 직면한 트럼프가 대북정책을 후순위로 밀어놓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조선(북한)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첫 인상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대권의 꿈을 갖기 시작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는 그해 10월 24일 미국의 <NBC>에 출현해 특유의 대북관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당시 그의 발언은 오늘날 그의 대북정책을 이해하는 데 큰 함의를 지니고 있다.
당시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뒤죽박죽이었다. 1998년 8월에 조선의 금창리 비밀 핵의혹 시설 논란과 탄도미사일로 이용될 수 있는 인공위성 '광명성 1호' 발사 등이 맞물리면서 미국 내에서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었다.
야당인 공화당에선 조선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빌 클린턴 행정부를 압박했다. 일각에선 외과수술적 선제 타격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대북포용정책이 필요하다고 미국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자 클린턴 행정부는 국방장관 출신인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정책 재검토에 착수했다. 검토 결과 대북 협상에 1차적인 방점이 찍히자 공화당이 들고 일어났다. 트럼프는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에 나와 '내가 대통령이라면 조선을 이렇게 상대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조선이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금창리 지하에서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철석같이 믿었다(참고로 그 이후 미국의 현장 방문 결과 텅 빈 동굴로 판명났다). 또 미국이 조선과 협상을 하겠다는 것인지, 정밀타격으로 핵시설을 파괴하겠다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데이브 쉬플릿과 같이 쓴 '아메리카 위 디저브(The America We Deserve)' 초고에서 대북 선제공격론을 강하게 피력했다.
초고를 읽은 <NBC> 방송 진행자는 "당신은 대통령으로서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선제타격을 가할 의사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먼저 협상을 할 것이다. 정말 미친 듯이 협상해서 최선의 거래를 이끌어내려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워싱턴의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다가와 머리에 총을 겨누고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총을 손에 쥔 의도를 아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며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조선의 동기부터 알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결코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앉아서 진지한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거듭 강조했다. 협상이 성공하려면 미국이 진지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그런 일", 즉 미국이 조선을 정밀 폭격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이후 트럼프가 목도한 미국 행정부의 태도는 진지함은 없고 한탄만 쏟아내는 것이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8년 임기 가운데 7년 가까이 조선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한가함에 대북정책을 묶어두고 백악관을 나올 때엔 "미국이 직면한 최대 안보 문제는 북핵"이라고 트럼프에게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4년간 북미대화는 한 차례도 없었고 조선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두 배 가량 강해졌다.
이렇듯 트럼프의 조선에 대한 관심은 그가 대권의 꿈을 품고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1기 때 최초의, 그것도 세 차례 북미정상회담에 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기 때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돌아온 트럼프는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다. 전임자들이 "엉망진창(mess)"으로 만들어놓은 북핵 문제를 "나는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트럼프를 상대할 김정은은 과거의 그가 아니다. '시즌 1'에선 갑을관계가 명확했고 김정은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도 갑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펼쳐갈 '시즌 2'가 자못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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