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위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이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 극우혐오세력을 부추겼습니다. 쿠데타 이전에도 윤석열은 각자도생을 강요하며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를 양산해왔습니다. 자본주의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계속해서 떠넘긴 결과, '비정규직', '고용불안'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절반에 달합니다. 다수 여성 노동자가 5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 플랫폼 노동, 특수 고용, 프리랜서 등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윤석열에 맞서는 동시에 여성파업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여성파업을 제안하는 이들의 절박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
거리에 서다
노동자들의 애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던 촛불집회에서 처음 듣고 외우게 되었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는 그 가사가 왜 그렇게 사무치고 멋지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빨갱이가 될 전조증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참 말 잘 듣던 노동자였습니다. 관리자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성과급을 주면 받고 안주면 안 받고, 사무실 바닥에 누워서 자지 말라기에 시키는 대로 12시간을 의자에 앉아 전화를 받던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남들도 다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다. 말 잘 듣고 60살까지 다닐 수 있으면 되잖아'라고 앞장서 말했던 최저시급 하청노동자였습니다.
2022년 11월 말, 업체가 변경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곧 업체가 변경된다고 했습니다. 변경될 새 업체는 기존에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던 최대한 많은 상담사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업체는 계약이 종료되었으니 사직서를 써야 새 업체와 계약할 수 있다며 우리의 사직서 작성을 종용하였고, 새 업체는 같이 일하고 싶다면 새 업체에서 주관하는 고용연장을 위한 면담에 임하라고 했습니다. 상담사 20명 안팎인 작은 콜센터에서 69개 각 저축은행사들의 비대면 금융거래와 금융사기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우리는 지난 3년처럼 앞으로의 시간도 "시키는 대로"만 하면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린 예전과 같이, 여전히 함께, 일하고 싶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중 대부분은 재계약의 대상이었지만, 우리 중 4명은 재계약의 대상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 함께 열심히 일해서 일군 일터인데, 새 업체는 그 일터에 누군가는 함께하고 누군가는 함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채 10분도 보질 않고 말입니다. 과반수가 넘는 상담사는 계약을 거부했습니다. 재계약 불가통보를 받았던 동료와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기존 직원이 없으면 남아있는 상담사들이 감당해야 할 업무량 자체가 부당했기 때문입니다. 부당함에 항의하면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고 과반수가 넘는 우리를 자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과 노동자의 입장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을까요. 계약을 거부한 상담사들 조차도 일터를 잃고 말았습니다. 같이 일할 수 없는 상담사들을 위해 일터를 내던질 만큼 우린 똘똘 뭉쳐 3년을 함께했던 서로에게 너무나 좋은 동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 우리의 일터를 만드는 동안 세상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두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단절,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 감정노동자, 경력단절 여성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린 일할 수 있어 감사했고, 동료와 함께이기에, 행복했기에 세상이 우리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이 없었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무관심이 나와 내 동료를 거리로 몰았습니다.
거리에 서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해고자가 이렇게 많다니,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다니,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조폭이라고 부르다니. 이 땅에 장애인들이 이렇게 많은데, 버스를 타기도 지하철을 타기도 이렇게 힘들다니. 그간 이토록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소수자들이 무엇을 얻기 위해 투쟁해 왔는지를 우리는 비로소 거리에 서서 알게 되었습니다.
20년쯤 전 대통령을 지키자며, 군중심리에 어린 마음에 목이 터져라 불렀던 그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20년 후에 다시 또 거리에서 목이 터지도록 부르게 되었습니다. 내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서요.
해고된 동료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충무로에 가서 10만 원을 주고 현수막을 만들었습니다. 처음 그 현수막을 거는 새벽, 손가락이 끊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해고된 비정규직, 여성, 콜센터 상담노동자들 11명이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충무로에서 맞춰 온 10만 원짜리 현수막을 걸기엔 가로수는 너무 높았고 바람은 너무 차가웠습니다. 그렇게 우린 거리에 섰습니다.
해고자가 되고 싶다
10명이 넘게 시작했던 우리의 투쟁(그 때의 우린 우리가 하고 있는 게 투쟁인 줄도 몰랐습니다)은 추운 날씨와 쪽팔림에, 첫 선전전 이후 함께 해보자던 동료들이 대부분 포기했고 아주 간단히 3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콜센터 해고'나 '콜센터 고용승계'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시작했다는 기사는 있는데 이겼다는 기사는 없었습니다. 우리같이 억울한 사람들이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적이게도 우리가 마지막이리란 약속도 없었습니다.
'해고', '콜센터', '비정규직', '업체변경', '고용승계'라는 키워드로 기사들을 찾아보고 밑에 나온 기자들 메일과 연락처로 메일과 문자를 하루에 30통 넘게 보냈습니다. 좀 알아달라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요. 하지만 노조도 없던 간접고용, 최저시급 여성노동자의 해고에 세상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전 8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원청인 저축은행중앙회 앞에서 남은 셋이 선전전을 하며 호소문을 계속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추웠고 창피했고 또 외로웠습니다. 그래도 우린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무도 모를 우리의 사정을 알리려고, 알아달라고 처음 세상을 향해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위해 닥치는 대로 노무사 상담, 변호사 상담, 노동상담을 받으러 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 한가지였습니다.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이고, 너희는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니까 해고가 아니다. 안타깝지만 법은 너희가 해고자라는 것조차 인정하질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린 정규직이 아니라 일터를 잃어도 해고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미치도록 해고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우린 일터를 잃었으니까요. 살아오며 가장 춥고 외롭고 서러웠던 2023년 겨울이었습니다. 셋뿐인 우리의 투쟁은 단출했고, 초라했고, 그래서 서글펐습니다.
조합원이 되다
매일을 거절만 당하던 우리에게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본부'가 손을 내밀어 줬습니다. 노조가 없는 해고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다고 수없이 거절당했지만, 우리에게도 이제 뒷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벅차오르던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린 또 다른 투쟁하는 동지들을 마주했습니다.
같은 본부의 콜센터노동자인 서울신용보증재단지부가 우리와 같은 건물(저축은행중앙회와 서울신용보증재단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피케팅을 시작했습니다. 해고자였던 우리는 그 앞에 휘날리던 깃발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복직하면 저런 깃발이 생기겠지"라고 꿈꿨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 건물의 캐노피에서 서울신용보증재단지부 동지 둘이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 우린 알았습니다. '깃발이 있어도, 지부가 있어도 콜센터 노동자의 삶이라는 건 이렇게 고된 일이구나'하는 서글픔에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가 포기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처럼, 저들처럼 거리로 쫓겨나고 고공으로 올라가겠구나.'
우리가 시작한 투쟁을 통해 일터를 되찾고 우리 투쟁이 끝났다는 기사가 나는 것. 누군가 우리와 같이 거리로 나오게 되었을 때 우리의 질긴 투쟁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이 투쟁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연대 -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던, 속된 말로 '콜딱이'라 불리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해고자들에게 노조와 동지들이 생겼고, 10만 원짜리 현수막 하나 지키자고 애쓰던 우리 투쟁농성장에 연대동지들의 현수막이 틈도 없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회사는 여전히 꿈쩍도 하질 않았습니다. 얼마 후 있을 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당연히 기각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우리를 조롱했습니다.
3일 만에 우리의 밥줄을 끊어버리고 여전히 거리에 있는 우리의 사정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으며, 우리가 많이 양보하여 잘린 두 명은 받아 줄 터이니, 항명한 노동자는 '의리로 그만 두었으니 의리로 복직은 포기하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겁도 없이 단식을 시작하였고, 단식 3일차에 해고 200일을 맞아 200인의 동조단식 연대를 요청하였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 멀리 구미에서, 거제에서, 울산에서…. 200명이 가능할까 걱정했던 우리의 연대요청에 일면식도 없었던 동지들 700명이 함께 밥을 굶었습니다. 우리 3명의 일터를 위해서요.
나가라면 나가라는 말
결국 법적으로는 조금의 가능성도 없어 보이던 우리에게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례적으로 사측과 노동자의 화해를 권고하였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사측과 노동자의 화해권고는 우리 셋이 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울고 웃어주었던 동지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내가 뭐라고, 우리가 뭐라고 같이 밥을 굶고, 먹고 살기도 힘든 시간을 내어주는 동지들에게 잔뜩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감사함을 전할 때마다 동지들은 "너희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야"라고 손 잡아주셨습니다.
우리가 가난했던 것, 힘이 없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경력단절 여성들이기에 깨어있지 못했다던, 스스로를 위한 합리화를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처럼 거리에서 깨닫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혹여 거리에서 깨달았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단언코 우리가 거리에 있던 그 시간은 살아오며 가장 치열하고 고되었지만, 함께 해주었던 동지들 덕분에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우리의 삶 속에 가장 빛나고 찬란한 시간이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일기에 말했다던 "너는 나의 나, 나는 너의 너"라는 그 말과 같습니다.
다시 전선으로
'노동자의 잘못이 아닌 일의 대가를 노동자가 치러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상식을 함께 소리 높여 외쳐주고 싸워주는 연대동지들 덕분에 우린 결국 복직하여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현장은 여전히 황무지입니다. 동료를 밟고 오르라는 성과압박과 갈라치기, 인간으로서의 존중일랑 없는 감정노동보호의 사각지대, 제대로 편히 밥 먹고 휴게시간을 보낼 공간도 없는 닭장 같은 콜센터에서 사람답게 살기를 꿈꿉니다.
나는 몰랐습니다. 내가 거리에서 투쟁하는 해고노동자가 되는 일이 내게 벌어질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벌어진 일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고용안정을 위한 정규직 전환을 위해 몇 년 째 투쟁하고 있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동지들, 든든한콜센터지부동지들,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동지들, 서울교통공사고객센터지부동지들. 해당기관의 정규직들은 공정을 이야기하며 날로 먹는 도둑취급을 하며 수치를 주고 인간으로서의 모욕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 수치와 모욕감에도 견디고 버티며 콜센터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는 2023년 영하 17도의 거리에 나와 투쟁을 시작했던 우리와 같습니다.
우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다시는 쓰다 버리는 걸레짝처럼 버릴 수 없는, 죽지 않고 잘리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노동자가 되고 싶은 이유입니다. 돈을 더 받고 덜 받는 걸 다투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해서요.
아직 사업장 지부가 없는 우리에겐 지부가 있는 동지들이, 그들이 노동자로서 낼 수 있는 목소리와 권리들이, 실제적인 파업이 꿈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곧 우리 지부의 깃발이 휘날리고,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받기 위한 여성파업을 꿈꿉니다.
나는 기적과도 같은 연대로 다시 일터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있지만, 투쟁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우리에게 벌어진 기적들이 다시 일어나리라 믿으며 나의 작은 목소리를 더해봅니다.
1000일이 넘도록 복직투쟁 중인 명동역 10번 출구 앞의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이, 구미에서 1년을 고공농성중인 박정혜, 소현숙동지와 옵티칼 노동자들이, 한화오션 거통고 하청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는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이, 지혜복 선생님이, 서진ENG 해고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과 장애인, 이주민들과 소수자들의 투쟁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고, 광장에선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내란수괴에 대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건 나의 무관심,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만들어 낸 일들에 대한 빚을 빛으로 서로에게 갚는 시간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암흑 속에서도 빛을 믿으며 꺾이지 않고 앞서 나아가는 이들과, 그들과 함께 걷는 "'연대'의 마음-함께 밝히는 불빛"이라 믿습니다.
함께 소리 내어 외칠 때 세상은 아주 조금씩, 정말 조금씩 '처참할' 정도로 사소하게 움직이죠. 허나 광장의 불빛이 하나에서 열이 되고 백이 되고 큰 빛을 만들어 누군가의 외로움을 보듬고 벗이 되어주어 함께 추위를 녹이고 길을 열어줬듯이 간절한 희망을 담은 투쟁에 그 한걸음씩의 힘을 더하는 연대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일 것입니다.
우린 '살아있는 자'들 이니까요. "산 자여 따르라"라고 우린 매일 노래하니까요.
* 3.8여성파업 참가신청 : https://bit.ly/202538여성파업조직위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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