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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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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었다

[나의 좋은 돌봄 이야기] 함께돌봄상 수상자 곽현원 장기요양요원

초고령사회의 문턱에서 헌신하는 장기요양요원들이 현장에서 겪은 희노애락을 직접 글로 써냈습니다. 이 중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가 주최한 '2024 나의 좋은 돌봄 이야기'에서 수상한 다섯 작품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오늘은 바퀴 달린 카트를 끌고 시장에 갔습니다. 요즘 부쩍 입맛을 잃고 식사를 안 하려고 하는 엄마에게 예전에 엄마가 끓여주던 영양죽을 해줄 생각입니다. 전복 10마리, 소고기 한 근, 버섯과 각종 야채, 과일 등을 샀더니 가방 한가득입니다.

혼자 있는 엄마가 걱정돼서 잰걸음으로 집을 향해 갑니다. 나는 90대 치매 친정어머니를 돌보는 가족 요양보호사입니다. 엄마는 치매 말기 환자입니다. 시집간 것도 기억 못하고 삼남매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 저편에 묻었나 봅니다. 아는 것은 엄마의 친정아버지와 어머니 이름, 엄마가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이름은 또렷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아버지 이름은 ○○. 우리 엄마 이름은 ○○. 저는요, 학교에서 제일 공부를 잘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금도 종이와 펜만 있으면 글씨를 예쁘게 써서 저한테 보여줍니다. '저렇게 똑똑한 분이 어쩌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괜히 눈물이 납니다. 엄마가 볼까봐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곤 합니다. 엄마는 결혼 전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던 학창 시절만 기억합니다. 애지중지하던 아들들도, 귀여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곱게 키웠던 딸의 존재조차 기억 한쪽에 묻어버리고 엄마가 딸로 귀염받던 시절만 기억합니다. 바람피우며 한 해에 몇 번 집에 들르던 남편도 말썽부리던 자식들도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입니다.

나는 심근경색으로 가슴에 스탠스 시술을 해 가슴에 기계가 들어 있습니다. 나도 아픈 사람이지만 엄마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수 없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돌보고 있습니다. 나는 어렸을 적 유난히 몸이 약해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내가 입맛 없어 밥을 안 먹겠다고 하면 엄마는 영양가 있는 재료를 갈아 찹쌀죽을 쒀서 저에게 먹였습니다.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든지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끓여준 죽도 예전에 엄마가 끓여주던 죽처럼 맛이 있기를 바라면서 정성껏 죽을 끓입니다. 치아가 좋지 않아 씹지 못하고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전복·소고기·낙지·새우와 버섯 등 채소를 갑니다.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찹쌀죽을 쒀서 엄마에게 드리면 "이게 얼마예요?" 하십니다. 나는 능청스레 "돈이 얼마 있는데요?" 되묻는다. 그러면 엄마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돈이 없어요." 하십니다. 내가 웃으며 "오늘은 엄마가 예뻐서 그냥 드리는 겁니다." 하면 "고맙습니다." 하면서 살며시 죽그릇을 앞으로 당겨가 맛있게 드십니다. "맛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활짝 웃는 엄마를 보면 준비할 때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엄마는 결혼 생활 중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나나 봅니다. 가끔 내가 아버지 첩으로 보이는지 "가시나!" 하면서 폭언과 폭력 행동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럴 땐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어제는 목욕시키고 있는데 그분이 오셨나 봅니다. 엄마가 "그만할래요." 하시는데 말없이 발가락 사이사이를 닦아 드리다 "이 가시나가!" 하면서 내 가슴을 걷어찼습니다.

순식간에 나는 나동그라졌고 그 순간에도 엄마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펴봅니다. 다행히 엄마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몸을 말리고 머리를 말린 후 옷을 입혀드리니 수줍게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엄마는 나를 걷어찬 것은 기억도 못한 채 목욕을 잘했으니 맛있는 거 달라고 합니다. 견과류와 통깨, 과일을 갈아 직접 만든 요플레를 드리면 맛있다고 하면서 금세 다 드십니다. 그런 엄마가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뒷정리하는데 엄마가 걷어찬 가슴에 통증이 옵니다. 아무래도 이상이 생겼나 병원에 가봐야겠습니다. 부디 몸에 이상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엄마한테 받았던 사랑 엄마를 위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엄마를 돌봅니다. 엄마가 주신 사랑 만 분의 일도 안 되겠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니 청명한 가을 하늘에 뭉게구름이 사이좋게 두둥실 떠다닙니다. 크게 한숨을 쉬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니 순간 내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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