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데뷔한 나훈아는 60년 가까이 가수 생활을 이어오며 120곡이 넘는 히트곡을 남겼다. 한국에서 노래방 반주기에 수록된 곡이 가장 많은 가수가 나훈아다. 가히 '트로트의 황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나훈아는 주로 사랑, 이별, 고향 등을 노래했다. 그의 노래에 시대나 역사는 없었다. 고 김민기는 1971년에 <친구>가 수록된 첫 정규 앨범을 냈다. 양희은의 <아침이슬> 노래 앨범도 그해에 나왔다. 같은 해 나훈아는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재발매한 앨범에 실린 <해변의 여인>이 대히트를 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75년에는 한대수의 2집 앨범 <고무신>이 체제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전량 회수됐다. 그동안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가지마오>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등 비슷한 주제의 히트곡을 잇따라 냈다.
그 뒤로도 나훈아는 줄곧 시대적 상황과 거리를 두었다. 정태춘·박은옥, 들국화, 조동진 등 많은 이들이 검열과 제약을 뚫고 시대의 아픔과 변화를 노래로 표현하는 동안 나훈아는 고향의 흙내음, 사랑의 이별, 인간 삶의 덧없음을 계속 노래했다.
사랑과 이별, 고향이라는 소재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원초적인 감정과 기억의 형체다. 나훈아의 노래는 그저 그것들을 음미하게 한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에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우리가 한때 누구였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원형질의 서정이 녹아 있다. "아 뜨거운 사나이 눈물"은 저마다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이 땅 남자들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한대수가 시대의 갈등 속에서 '행복의 나라'를 갈구할 때,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며 갈등을 개인의 서사로 돌렸다. 그는 노래를 통해 세상과 대화했으나, 그 대화는 언제나 개인의 정서와 삶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머물러 있었다.
나훈아 노래의 노랫말은 단순하고 투박하다. 평범함이야말로 그의 노래가 지닌 큰 장점이다. 나훈아는 특유의 꺾기와 간드러진 창법으로 이 가사들의 전달 효과를 극대화한다. 한 점 칼끝으로 목청을 꿰뚫는 듯한 정밀함과, 끝내 꺾여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풀잎 같은 간드러짐으로 그의 창법은 이루어진다. 창공으로 뻗어나가던 목소리는 한순간 비단결처럼 가늘어지고 꺾이며 듣는 이들의 가슴 언저리를 휘감아 돈다. 나훈아는 세속과 인간사의 밑바닥을 어루만지는 평범한 주제들을 노련한 창법으로 길어 올려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역사의 강물에 뛰어들지 않았다. 발을 담그지도 않았다. 역사가 한창 불타던 시절, 억압과 저항의 숨결이 가쁘게 엇갈리던 그때, 그의 노래는 강물 옆 추억의 언덕을 한가롭게 노닐었다. 그의 노래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아니라 문틈으로 스며드는 달빛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며 그것이 전달하는 감정을 느낄 뿐, 그 이상의 것들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의 노래는 삶의 파편적 단면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의 음악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아름다웠으나 공동체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그랬던 그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20년 10월 '나훈아 KBS 단독콘서트'에서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KBS가 국민을 위한 방송이 돼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KBS 보도의 편향성을 꼬집는 발언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나훈아는 오랜 세월 시대의 폭풍을 피해 갔고, 권력의 칼날 앞에서도 침묵했다. 그 침묵은 때로는 지혜였고, 때로는 비겁함이었다. 그랬던 그가 갑작스럽게 정치적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은 매우 낯설고,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하게 다가왔다.
나훈아의 발언은 오랫동안 숨겨온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자의식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보수 사랑, 진보 혐오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훈아는 최근 은퇴 공연에서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를 치고 있다"며 자신의 왼팔을 가리키며 "너는 잘했나"라고 빈정거렸다. 또 "지금 하는 꼬라지들이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하는 짓거리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나훈아는 왼팔을 공격하며 실제로는 오른팔을 감쌌다. 오른팔의 우두머리가 저지른 헌정질서 파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왼팔을 꾸짖었다. 양비론의 외피를 쓴 그의 논리는 결국 비상계엄과 내란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나훈아는 오른팔이 우리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저질러온 불의와 악행을 수수방관해왔다. 그러다 급기야는 내란을 비호하는 오른팔의 논리 그대로 왼팔을 공격했다. 그는 정의를 논하지만 그 정의는 오히려 불의에 기댄 정의였다. 그는 혼란의 원인을 말하기보다 혼란을 두드려 소란을 키웠고, 저울이 기울어진 채 평형을 추구하는 논리 속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가 대중을 향해 뱉은 말은 시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왜곡하는 몸짓이었다.
노래는 사람의 가슴을 흔들며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남긴다. 나훈아는 오래도록 그런 노래를 해왔던 사람이다. 그가 부른 사랑의 노래들은 삶의 고단함을 달랬고, 누군가의 눈물 속에서 작은 웃음을 찾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나면서 노래가 아닌 정치적 언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것은 울림이 아니라 상처였다. 잔잔한 위로가 아니라 마음을 베는 칼이었다. 그의 말은 한 시대의 어둠을 비추기보다 더 깊은 어둠을 만들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세상을 향해 떠들었으나, 그 목소리는 그동안 불러왔던 수많은 사랑 노래마저 빛을 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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