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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르신이 좋아요

[나의 좋은 돌봄 이야기] 좋은돌봄상 수상자 최소영 장기요양요원

초고령사회의 문턱에서 헌신하는 장기요양요원들이 현장에서 겪은 희노애락을 직접 글로 써냈습니다. 이 중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가 주최한 '2024 나의 좋은 돌봄 이야기'에서 수상한 다섯 작품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하는 봄의 끄트머리에 나는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다독이며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가 첫 인사를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첫 직장으로 주간보호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간 초보 요양보호사, 모든 것이 낯설어 쭈뼛 서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소영 요양보호사입니다!"

내 귀에도 안 들리는 개미만 한 소리 소개하고 나니 어느 어르신이 "목소리 너무 작다"고 하신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부리부리한 큰 눈을 하신 어르신이 나를 보고 있었는데 그냥 봐도 당차 보이셨다.

그 어르신의 모습을 눈여겨보게 됐다. 어쩌다가 다른 어르신이 화장실을 다녀오고 불을 끄는 스위치를 안 내리면 대번에 호통을 치곤 하신다. 오늘의 날짜를 두세 번 알려주면 내가 바보냐고 하신다. 정작 당신의 노트에는 엉뚱한 날짜를 적고 날씨는 비가 옴에도 화창하다고 하시고, 화창함에도 비가 온다고 표시한다. 아마도 어르신의 날씨는 오늘의 날씨와는 반대로 가고 있었나 보다.

가끔은 센터 가족 모두에게 소갈비를 사신다고 하신다. 평소 배포가 크셨는지 돼지갈비도 아니고 꼭 소갈비로 사겠다고 하신다.

"최선생, 내 가방 가져와 봐. 내가 오늘 한턱 낼 거야! 다들 맛있게 먹어~ 특히 최선생은 많이 먹고 키 좀 더 크고!"

듣고 계시는 다른 어르신께서 "에이그, 저이는 소갈비를 지금까지 백 번은 샀을 거야. 만날 소갈비 산다고 가방만 챙겨"라고 말씀하신다.

어르신께서는 평소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시지만 큰 목소리로 선생님들께 호통을 치시기도 하고 어떨 때는 까다롭게 행동하시며 욕구를 표현해 당황스럽게 만드시기도 한다. 인지 수업 시간이나 노래를 부를 때에도 제일 먼저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안 되는 것이 있으면 투정을 부리곤 하였다.

프로그램에 집중하실 때는 승부욕이 앞서신다. 안 되는 것이 있으시면 투정을 부리곤 하신다. 레크레이션 시간에도 가장 열심히 참여하신다. 다른 어르신이 조금이라도 딴청을 부리면 바로 한마디 하시곤 한다.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강사의 마이크를 빼앗을 때도 있다. '왜 선생님만 불러요? 나도 잘해요' 하며 열창을 하신다.

앞장서는 걸 좋아하시고 차를 타도 항상 앞자리에 일등으로 타려고 하실 때도 있고, 자리가 없으면 타 어르신들과 다투시기도 하고 '젊었을 때 내가 이런 사람이야!'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분이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어찌할지 몰랐다. '어르신을 무조건 진정시켜 드리자!'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등 뒤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점차 어르신과 유대를 쌓으면서 어르신에 대해 알게 됐다. 여장부다운 모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콧소리가 나오는 애교도 있으시고 송영할 때 얘기하면 자상하게도 말씀해주신다.

어느 날, 어르신의 다리에 부종이 심해서 약을 발라주겠다고 하며 양말을 벗기려 하니 안 벗는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한참을 어르신에게 말씀드리며 설득했다. 마음이 가라앉을 즈음 조용히 여쭤봤다.

"어르신, 다리에 약을 발라야 하는데 왜 양말을 안 벗으려고 하셔요?"

당신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셨다. "내 발이 너무 못생겨서 그래."

보이고 싶지 않은 단점이 있으신 거구나. '어르신, 저만 살짝 볼테니 보여주셔도 괜찮아요'라고 해서 보니 무지외반증이 너무 심해 모든 발가락이 한쪽으로 드러눕다시피 했다. 발바닥 주위는 온통 굳은살이 감싸고 있었다.

찡한 마음을 달래고 조용히 약을 바르고 문질렀다. 어르신들을 케어하면서 어르신들께서는 세월의 흔적을 온몸에 갖고 계신다. 표현을 못하실 때가 많아 어디가 불편한지를 항상 살펴보아야 한다.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야 하는 일이다.

당당해 보이는 여장부이시지만 엄마와 아내였기에 짊어져야 했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발바닥에 고여 있는 듯 어르신의 발은 더욱 무거워 보였다. 그 이후로 어르신은 부끄러운 발이 아니라며 당당한 발로 양말을 벗으신다. 가요시간에 마이크를 잡고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시는 어르신의 노랫소리가 온 센터에 울려 퍼지고 있다.

"어르신, 젊은 시절 고생하신 발로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제 건강하고 행복하게 센터에서 보내시기를 간절히 바랄게요. 소갈비를 사주신다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의 마음에 어르신이 너무 좋습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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