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고 올해는 무슨 일이 있을까 예상하면서 희망을 갖으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을사년에는 별로 좋은 일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특별히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1905년에 있었던 ‘을사늑약’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잘못된 조약의 체결이다. 여기서 유래한 단어가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이다.
‘을씨년스럽다’는 ‘남 보기에 탐탁하지 않고 몹시 쓸쓸하다’, ‘싸늘하고 스산한 기분이 있다’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해 강제로 맺은 조약(‘을사보호조약’이라고 하지만, 의미상 을사늑약(勒約 : 억지로 맺은 약속)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한자로 을사조약(乙巳條約)이라고 한다.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린 것이 ‘을사년 같다’고 하여 생긴 말인데, 발음이 변하여 ‘을씨년스럽다’로 되었다.
1905년(을사년)에 특히 대홍수로 우리나라가 황폐해지고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거기에 일본의 강점 의욕을 담은 조약이 체결되니, 백성들에게는 을사년이 아주 비통하고 슬픈 시절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을사년스러운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을 의미한다. 예문으로는
태호는 을씨년스럽고 초라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차식이의 얼굴에는 을씨년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오늘같이 을씨년스러운 날엔 따끈한 설렁탕이 최고야.
와 같이 쓴다.
또한 ‘을사사화’(1545)도 잊을 수 없다. 역시 을사년에 일어난 일이다. 명종이 즉위하던 해에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이 충돌한 끝에 소윤이 승리하여 윤임 일파가 모조리 숙청된 사화를 이르는 말이다. 이때 대윤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모두 피해를 입어 사화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의 4대 사화 중의 하나이다. 윤원형은 핵심 동조 세력과 결탁하여 형조판서 윤임, 이조판서 유임숙, 영의정 유관 등을 제거하려 하였고, 을사사화를 통하여 정적을 제거한 윤원형은 명종의 보위를 굳혔다는 명분으로 공신책록을 서둘러 28명을 위사공신에 봉하기도 했다. 외척들의 횡행으로 작용한 정치적 갈등의 한 면을 보여준다.
1665년(을사년)에는 을사예송이라고 해서 상복 기간을 두고 논쟁을 벌여 왕권과 신권의 균형에 관한 중요한 논쟁이 있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예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김장생과 그 아들 김집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예학의 명문가로 키우는데 초석을 다져놓았다. 충남 연산으로 낙향하여 돈암서원을 세워 기호학파를 일궜다.
그렇다고 해서 을사년이 모두 두렵고 떨리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485년에는 조선 최초의 법과 제도를 완성한 경국대전을 만든 해이기도 하다. 1785년에는 정약용이 거중기를 발명하여 수원화성을 건설하였다.
다시 을사년으로 넘어가 보자. 작금의 상황이 친일과 반일 등으로 정서가 혼재되어 있다. 반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일제의 전자 제품을 쓰고 있고, 친일을 한다는 사람도 축구 한일전이 있으면 한결같이 한국을 응원한다. 세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데, 우물 안에서만 소리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과거를 돌아보고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데, 어쩌자고 비슷한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초가 되었지만 정국이 불안하여 또 다시 ‘을씨년스러운 한 해’로 시작하는 것이 불안하다.
슬기로운 민족이니 잘 헤쳐나아가리라 기대한다. 전쟁 중에도 형제 간의 싸움 보는 것 같아서 심히 안타깝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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