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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에 면죄부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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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에 면죄부 줬다"

대법원, SK·애경 공동정범 불인정…"국민 고통·호소 의도적으로 외면"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애경산업에 대한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자, 시민사회단체가 "대법원이 가해기업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환경보건시민센터, 참여연대, 환경운도연합, 녹색법률센터 등은 지난 26일 성명을 내고 "원심처럼 피해자들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한 대법원의 판결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대법원 판결이 기업의 형사책임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같은날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심 법원은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과 과실범의 공모 관계라고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이들 회사가 제조·판매한 상품은 전혀 별개의 상품이기 때문에 공동정범으로 묶어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옥시 사건의) 피고인들이 제조·판매에 관여한 가습기살균제의 주원료는 PHMG 등이고, 이번 사건 살균제의 주원료는 CMIT/MIT로, 그 주원료의 성분, 체내분해성, 대사물질 등이 전혀 다르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활용하거나 응용해 개발·출시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어떤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망 등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구매·소비가 용이하게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상품 제조·판매자들 등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대법원의 판단은 현대산업사회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형태에서 과실범의 공동정범의 무한한 확장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피고인들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검토함에 있어서는 그것이 개량형 제품인지 독자적 제품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특정 제품에 관한 시장확대, 시장 내에서 시장점유율 확보전략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정 제품이 판매되면서 시장이 형성될 경우 기업들은 유사제품들을 생산판매하여 해당 시장에 참여하게 되어, 시장이 확대되고 소비자들은 확대된 시장에서 제품들을 선택하여 사용하게 되며 기업들은 자사제품의 시장점유율 확대 조치를 통해 시장을 더 확대해간다"며 "자사 제품의 안정성 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 동일 용법 제품이 판매되는 시장에서 해당 제품의 누적 사용에 따른 인체 위해성은 충분히 예견가능하다고 보아야 하며, 공동으로 시장을 형성한 기업 임직원들에게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였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의 판단과 같이 오로지 개량형 제품들의 제조판매사 임직원들에게만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화학제품의 장기 누적적 인체피해에 대한 과학의 한계를 외면하여 기업의 면책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특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법정 투쟁은 "제품 출시 전 안정성 검사를 충분히 실시하고 제품 출시 후 관찰의무를 이행한 기업 임직원의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불이행한 기업 임직원의 공동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며 "가습기살균제 기업의 임직원에게 합당한 형사책임이 부과될 수 있도록" 적극 연대하겠다고 했다.

4.16세월호참사, 가습기살균제참사 등 재난참사피해자연대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가습기살균제는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 대한민국 국민만을 상대로 한 생체실험(흡입 독성시험)이었다"며 대법원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연대는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으로 △ 회사 임직원 간 공동정범 불인정, △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면죄부, △ 공소 시효문제 등을 짚으며 "(이번) 판결은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국민의 행동 양태와 기업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피해 국민의 고통과 호소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가해 기업의 주장만을 전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대는 "대법원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에 의거하여 판결했다고 자부하는가"라며 "이번 판결은 업무상과실치사죄의 공소시효가 7년이라는 점에서 일부 가해 기업의 범죄는 공소시효 만료로 사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는 약 627만 명으로, 국민 10명 중 1명 이상이 사용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등록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신청·접수자 7977명 중 1883명은 사망했다(2024년 11월 현재).

▲ 12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국가책임소송단 관계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관련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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