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표기에서 '여사' 호칭은 대통령 부인만이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국무총리는 물론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부인도 종종 '씨'로 표기하지만, 대통령 부인한테는 꼭 '여사'라고 표기하는 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여사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가는 불경죄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지난 2월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SBS의 한 프로그램 출연자가 '김건희 특별법' 논평을 하다가 '여사'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당 프로그램에 제재를 가했다.
대통령 배우자는 선출이나 임명 등 공식 절차를 통해 정통성을 부여받는 게 아니라 국가 최고지도자 부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는다. '여사'라는 호칭도 그런 맥락에서 사용된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의 남편은 이제 '내란 범죄 수괴'가 됐다. 남편의 위상이 범죄자로 바뀌면서 국가 최고지도자 부인이라는 특별대우의 근거도 완전히 사라졌다. '내란 수괴 윤석열의 영부인 김건희 여사'.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14일 국회 탄핵안이 통과되든 다시 불발에 그치든 윤 대통령이 '내란 수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이에 따라 여사 호칭도 버리는 게 마땅하다.
사실 김건희씨는 내란 범죄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내란 범죄 광기는 그의 '광적인 아내 사랑'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김건희씨에 대한 야당의 계속된 특검 발의에서 비롯된 야당에 대한 끓어오르는 적개심과 증오심이 범죄 행위 광기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배경을 놓고 외신에서도 "아내 김건희씨를 지키기 위해서인가?"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김건희씨가 '국정운영의 최대 리스크'라는 말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왔는데 그 리스크가 가장 충격적인 강도로 폭발하고 만 셈이다.
김건희씨의 그동안 행태를 보면 계엄 사태의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그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내란 행위를 적극 만류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겼을 수 있다. 평소 무속에 깊이 심취한 점을 생각해보면 무속인과 역술인들의 예언을 앞세워 '거사가 분명히 성공한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모습마저 연상된다. 어쨌든 내란죄 수사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역할과 행동은 중요한 수사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사실 '김건희 여사' 호칭 폐기는 늦은 감이 있다. 대통령 배우자가 국가 최고지도자의 부인으로 특별대우를 받으려면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도덕성과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데 김씨는 그 대목에서 0점이었다. '김건희 여사'를 주어로 한 그동안의 숱한 언론 보도가 이를 웅변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명품 디올백 수수 논란, 해외 순방 중 명품 매장 방문 논란,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안 특혜 의혹, 비선 보좌 논란 등 하나같이 범죄 혐의, 비도덕적 추문, 국정 개입 의혹의 연속이었다. 이런 기사를 쓰면서도 언론은 꼬박꼬박 '김건희 여사'라고 표기해야 했으니 얼마나 고역인가.
대통령실이 가끔 '여사님의 선행과 미담 기사'를 만들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대부분 또 다른 말썽과 논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기간에 '빈곤 퇴치 선행'을 한다며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소년의 집을 방문했다가 '오드리 햅번 코스프레' 구설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이다. 외국 언론에서까지 대서특필을 해서 국제적 망신을 샀는데도 국내 언론은 그 사건을 보도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김건희 여사'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사'에 대응하는 남성의 호칭을 굳이 찾는다면 '선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선생'께서 각종 비리 의혹으로 언론보도에 계속 등장하면 언론수용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떨까. "정부 최고위 공직자의 남편인 김○○ 선생이 고가의 명품백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선생은 주가 조작에 깊숙이 개입한 혐의로도 검찰 수사 대상이 됐으나 검찰의 눈치보기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한테 '선생'과 '여사' 호칭은 개 발에 편자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국민 중에는 '김건희씨'라는 호칭도 과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김건희씨에 대해 아무런 호칭 없이 그냥 이름만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씨의 호칭과 세상 인식 사이의 골짜기는 참으로 아득히 멀고도 깊다. 어쨌든 앞으로 나올 언론 보도에서는 김건희씨의 선행·미담 기사는 없게 된 상황이니 굳이 여사 호칭을 붙일 필요는 없어졌다.
'대통령학' 못지않게 '퍼스트레이디학'이 발달한 미국 학계에서는 대통령 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양하다. 교육·아동·복지·빈곤퇴치 등 사회 봉사활동, 외국과의 관계에서 국가 대표와 국격의 상징적 역할, 지적 수준, 대통령에 대한 헌신과 지원 등 항목이 많다. '봉사' '국격' '헌신' '지적 수준' 등의 단어와 김건희씨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 퍼스트 레이디의 평가 기준에 '젊은이들의 롤모델 역할'을 포함하고 있는 점이다. 김건희씨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롤모델일까. 논문을 표절해서라도 학위를 따내고, 경력을 허위로 기재해서 대학 겸임교수를 꿰차고, 김명신이라는 애초 이름마저 바꾸고, 성형수술로 외모를 완전히 뜯어고치고, 주가를 조작해 부를 축적해가며 '야망의 계단'을 한 발자국씩 올라가 종국에는 국가 최고권력자의 부인 자리까지 꿰차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본보기로 삼아 따르려고 노력해야 할 모습인가.
김건희씨의 과거와 현재는 오히려 헛된 야망과 집착이 끝내 개인은 물론 국가 전체를 얼마나 엄청난 파국으로 몰아넣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술에 취하고 권력에 취한 남편, 그런 남편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조종한 아내. 이 두 광기가 서로 나란히 타오르면서 끝내 우리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내란 범죄'라는 전무후무만 비극에 이르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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