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가리려는 수사·사법기관의 노력이 진행 중인 가운데, 관련 기관장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일부 언론 보도 사실을 확인하거나 수사 의지를 강조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계엄 당시 상황에 대해 "22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 방첩사령관 이 전화가 와서 세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저는 그게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제가 참모들한테 지시를 안 한 내용이 있다"고 증언했다.
조 청장은 당시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주요 인사들 위치추적을 부탁했다면서 이에 대해 "경찰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해 줄 수 있는 것도…(아니었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당시 위치추적 요청 대상이 된 명단이 기억나느냐. 기억나는 사람 누구라도 얘기해 보라'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언론에 보도됐던 이재명 대표, 그리고 위원장님(정청래 법사위원장 지칭)도 있으셨던 것 같다"며 "여야 원내대표님 있었고, 그리고 '이 사람은 왜 들어갔지?' 생각됐던 게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정도였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한동훈 대표는 처음에 불러준 명단에는 없었고, 그 뒤에 다시 전화가 와서 '한 명 추가'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앞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 대상 명단을 전달받았다. 명단에는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 전 대법원장, 권 전 대법관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는데, 이같은 내용을 조 청장도 교차확인해 준 것이다.
조 청장은 다만 '12.3 사태가 내란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수사를 통해서 확인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야당 의원들은 계엄 당일 밤 경찰이 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막았다며 "내란 공범"이라고 조 청장을 질책하기도 했다.
조 청장은 이에 "저희들은 처음에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단 통제를 했다가, 국회 출입자들의 출입요구가 있다는 서울청장 보고를 받고 제가 '그럼 국회 상시출입자, (즉) 국회의원, 사무처 직원, 보좌관, 기자들은 출입을 허용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날 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출국금지에 관해서는 수사 지휘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법사위 회의 도중인 오후 3시30분 윤 대통령을 출국금지했다고 발표했다. (☞관련 기사 : 내란죄 피의자 尹, 현직 대통령 최초 출국금지)
배상업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은 이날 회의 도중 '윤 대통령이 현재 출국금지됐느냐'는 법사위원장의 질문에 "출국금지했다. 한 5분, 10분 전에 한 걸로 알고 있다"고 직접 답변했다.
오 공수처장은 '내란 피의자인 윤 대통령을 구속할 의지가 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거듭된 질문에 "내란죄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신병 확보에 노력을 하고 있다"며 "국가를 구한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이 '좀더 명확히 구속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히라'고 요구하자 오 처장은 "내란죄의 수괴와 내란죄 중요범죄자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해서 열심히 수사를 진행하려고 하는 의지를 공수처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고 '구속수사 원칙'을 밝혔다.
오 처장은 공수처가 경찰·검찰에 내란죄 혐의 수사 이첩 요청을 한 데 대해 "공수처법 24조에 의한 것"이라며 "검찰과 경찰이 수 사권을 두고 다투는 모양새가 벌어지고 있고, 법원에서 요청한 수사권 조정을 협의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으로 보여 법에 따라 이첩요청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 및 체포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데 대해, 검찰·공수처 등이 중복해서 영장 청구를 해와 수사기관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기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내란죄 혐의가 엄중한데 왜 기각을 시켰느냐'고 따지자, 천 처장은 "절차에 따르지 않은 비상계엄에 의해 나라가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법부가 법과 절차, 원칙에 따라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무위원 및 그 직무대리자들에 대한 추궁과 질책도 이어졌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계엄 선포 절차에 따르면 국무회의 심의를 한 이후 장관들이 계엄선포문에 서명하도록 돼있고, 총리가 부서하고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해서 계엄포고문을 발령하도록 돼있다"며 "계엄포고문에 필수적으로 서명해야 하는 장관은 국방부, 법무부, 행안부, 기재부 그리고 국무총리인데 장관은 계엄포고문에 서명을 했느냐"고 묻자 "저는 그렇게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박 장관은 '계엄선포문 내용에 대해서 법무부가 법률검토를 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사전에 이 내용에 대해서 법률검토를 법무부가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 "저도 거기에 가서 봤다"고 답변했다.
국방장관 직무대리인 김선호 국방차관은 야당 의원들로부터 "군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데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려고 국회에 쳐들어왔다"는 질책을 듣고 "잘못됐다"며 유감을 표했다.
김 차관은 야당으로부터, 이날 양심선언을 한 김현태 특전사 707특임단장에 대해 과거 박정훈 대령처럼 군무이탈로 기소하는 등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지적을 받고 "(김 단장이) 지금 한 그 행위에 대해서 제가 그 어떤 책임도 물을 생각이 없다"고 확인했다.
김 차관은 전날 한동훈-한덕수 담화에서 나온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분과 관련해, 야당 의원들이 '북한과의 교전상황 등에서는 한덕수 총리의 지시를 받을 것이냐'고 묻자 "대통령께서 총리한테 위임한다는 것이 그렇게 구두로 정해져서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모르겠다"며 "그런 것 또한 어떤 법적인 절차에 의해 분명히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군통수권이 헌법에 따라 대통령에 귀속돼 있는데, 궐위상태도 아닌데 총리에게 위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대통령이 그 어떤 사유에서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실 수 없을 때 총리께서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그런 전제조건(권한을 행사할 수 없을 때라는)이 되지 않은 가운데 구두로 권한을 위임한다고 해서 그것이 위임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제가 법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했다.
법사위는 이날 이같은 토론을 거쳐 △상설특검법에 따른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요구안' 등 법안들을 의결하고, △'윤석열 정부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과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법안'을 상정해 법안심사1소위에 회부했다.
또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오는 11일 현안질의에 박성재 법무부 장관, 류혁 법무부 감찰관, 심우정 검찰총장, 오동운 공수처장, 이완규 법제처장,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 등 증인 8인에 대한 출석요구를 의결했다.
이날 법사위를 포함해 환경노동위원회·교육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여러 상임위 전체회의가 열렸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부분 불참해 야당 단독으로 진행됐다.
환노위에서는 야당 간사인 김주영 의원 등 야당 위원들이 김문수 노동부 장관에 대해 날을 세웠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김문수 씨는 현 상황, 탄핵에 대해 사실상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환노위를 열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출석을) 거부한 것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성토했다.
김 간사는 "민주당 환노위는 극우적 역사관을 가진 김문수 씨를 임명 당시부터 국무위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역시나 이번 계엄령 사태를 두고 김문수 씨는 '대통령께서 계엄령을 선포하실 정도의 어려움에 처했다'며 초헌법적 내란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의 행동을 정당화했고, 계엄 선포의 위헌성에 대해서도 '판단한 적이 없다',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6일에는 윤석열 탄핵과 관련 '국민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나'라는 답변을 했다"고 규탄했다.
교육위는 경희대 시국선언문 작성을 주도한 이 대학 장문석 교수를 불러 관련 입장을 청취했다. 장 교수는 "미디어에서 탄핵집회에 응원봉을 들고 나온 2030들이 많다고 나오는데 그분들이 실제로 제가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이라며 "학생들 역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 깊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위는 이번 12.3 사태 주범들로 지목된 이른바 '충암파' 장성들과 윤 대통령의 모교 충암고 교장 및 학부모회장이 출석해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충암고는 최근 학생 안전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교복 대신 등교 복장을 사복으로 자율화하기도 했다.
이윤찬 충암고 교장은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되는 교육기본법 6조가 상당히 원망스러운 심정"이라며 계엄 사태에 대한 입장 등은 밝히지 않았지만 "저희 선생님들한테 '어떻게 가르쳤길래 이런 사람들이 국가를 이렇게 만드느냐' 이런 유의 성난 표현들로 질타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오세현 충암고 학부모회장은 "직접 피해는 많지 않아 다행이지만, 학생들 같은 경우 다른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네가 (그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 '윤'처럼 되지 않을까' 이런 비아냥을 들었다"며 "학부모들 단톡에서는 '잘못은 '윤'이 하고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받는 현실이 참 안타깝디', '학교 거론 좀 안 했으면 한다'는 우려가 많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충암은 절대 안 된다 쯧쯧'이라고 해 아이들이 굉장히 상처받았고 학부모 입장에서 화가 난다", "기말고사가 내일모레인데 집중을 못 한다"고 전했다.
과방위에서는 야당 위원들이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에게 언론 자유를 침해한 계엄포고문에 대한 평가를 물었으나, 김 대행은 "수사 진행 중"이라며 "제가 말씀드리는 게 적절치 않다"고 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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