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교육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공공운수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오는 11월 말에서 12월 초 연이어 파업에 나선다. 해당 부문의 공공성과 안전을 위협하는 윤석열 정부의 인력감축, 시장주의 정책 등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이에 공공운수노조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과 비판을 담은 글을 싣는다. 편집자
전국철도노동조합이 공사와의 교섭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12월 5일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뉴스에서는 거의 매일 철도와 지하철이 파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알리지만 왜 파업을 하는지는 보도하지 않는다. 뉴스 시간이나 보도 분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민의 입장에서 파업으로 인한 불편과 대책은 크게 보이지만, 정작 노동자가 왜 파업에 들어가는지는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업의 원인을 알아야 해결도 가능하고 시민불편도 최소화할 수 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임금과 인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체불을 해결하라고 한다. 인력도 증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축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철도노조가 231억 원의 임금체불을 주장하는 이유는 성과급 지급과 관련돼 있다. 철도노조와 공사는 2018년 노사합의로 성과급을 통상임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해 지급했으나, 2019년 공공기관 예산운영지침이 변경돼 성과급은 통상임금이 아닌 기본급으로 지급하게 됐다. 상식적인 해석이라면, 2018년 노사합의로 지급한 성과급은 인정하고 2019년부터는 새롭게 바뀐 정부 지침을 적용하면 된다. 감사원도 2020년 6월 정기 감사에서 2018년 철도공사의 성과급 지급은 2018년 지침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2022년 12월, 성과급이 초과 지급되었다며 2022년 4%, 2023년 8%, 2024년 12%, 2025년 16%, 2026년 20%씩 성과급을 삭감하고 그 후부터 매년 20%씩 삭감하라고 결정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노사합의로 지급된 성과급에 대해 나중에 개정된 지침으로 물어내라고 하니 억울함을 호소한다.
법도 시행 후에는 과거 사건을 처벌하지 않는 법률불소급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법 위에 있는 조직인가보다. 현재 공공기관은 총인건비제 적용을 받고 있어 노사는 총인건비를 넘는 합의를 하더라도 총인건비를 넘게 되면 철도공사처럼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철도노조가 파업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력감축 정책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기 공공기관 혁신을 발표했고 이를 바탕으로 철도공사는 기능조정과 업무효율화를 통해 1566명의 인력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인원조정을 통해 철도공사의 만성적인 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도 했다. 실제 철도공사의 정원은 2022년 3만 2336명이었으나 2023년에는 3만 1735명으로 601명이나 줄었다. 1년 만에 정부 계획대비 38%가 줄어든 것이다. 이중 안전인력도 2022년 대비 137명이나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인력이 줄어들면 한 사람 당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노동강도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걱정하는 것은 단순히 일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철도와 지하철은 안전하게 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신호체계, 과속, 정비 불량 등이 누적되면 사고로 이어지고 한 번의 사고는 되돌릴 수 없는 인명 피해를 낳기 때문이다. 인원이 줄어들면 빨리빨리 일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실수가 발생한다. 한두 번 실수가 반복되면 결국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은 인력감축을 걱정한다. 자신이 더 일하는 것이 억울해서라기보다 시민안전을 지킬 수 없을 때 느낄 죄책감이 큰 탓이다. 참고로 2021년 기준 한국 정부가 직접 채용하거나 지원하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0.9%로 OECD평균인 17.8%보다 낮은 수준이다.
공공기관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지 수익을 내는 회사가 아니다. 철도, 지하철 같은 공기업이 수익을 내려고 한다면 요금을 현실화하면 어렵지 않게 적자를 벗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의 노인무임승차만 제값을 받아도 지하철의 재정 구조는 획기적으로 좋아진다. 철도의 경우도 원가를 반영해 요금을 책정하면 승객들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KTX를 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요금인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공공요금이 서민들의 생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의 삶을 위해 저가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여 생색을 내면서 뒤로는 노동자의 주머니를 털려고 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노동관계법은 임금과 인력 등 주요 노동조건은 노동조합이 조직된 경우 노사 협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철도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공무원이 아닌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노사관계는 민간의 임금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철도공사에 대해 임금과 인력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기재부의 과도한 개입과 통제가 있기에 가능하다.
기재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경영평가, 그리고 예산지침을 통해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대한 임금수준, 임금체계, 그리고 인력 활용 등 노동조건과 관련 개입을 강화해 왔으며 그 수준이 단순 가이드라인 범위를 넘어서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의 일반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기재부의 과도한 행정력 남용에 대해선 국제노동기구인 ILO도 한국 정부가 결사의 자유를 위반했다며 시정을 권고하기도 하였다. 한국은 ILO이사회의 의장국으로서 국제규범과 권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아직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기재부의 엘리트 의식을 커지고 기재부가 공공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사장 역할을 자임하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12월 5일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에 진짜 돌입할 지 알 수 없다. 다만, 철도 노동자의 파업의 책임이 노동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임금체불과 인력감축 중단을 요구하는 소박한 파업에 제 밥그릇 챙기기란 굴레를 씌우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 정부가 파업으로 인한 국민 불편이 걱정된다면 값싸고 질 좋은 공공서비스로 생색만 낼 것이 아니라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부문 노동자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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