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기도 한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자유주의적 교육개혁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자유주의 교육개혁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많은 교육학자와 언론이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에 주목하면서 교실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경직된 교육과정, 교수법을 비판하면서 학생들의 선택, 흥미, 만족도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교육개혁을 주도한 이들을 '교실붕괴론자' 라고 부른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교실붕괴의 원인이 경직된 공교육에 있다고 외치면서 우리 교육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교육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교실 붕괴론자들이 외치는 교육개혁의 끝판왕이 '고교학점제'이다. 고등학교에 학점제를 도입하여 선택 과목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실붕괴론자들의 미사여구와 달리 자유주의 교육개혁은 학교를 망치고 해체시키고 있다. 이제는 수업이 잘 안 되는 것을 떠나 교실이 망가졌다. 망가진 교실에서 폭력과 센 척이 교실을 장악했고 아이들은 교실에서 폭력과 센 척, 이기심을 배워 가고 있다. 교사들의 훈육권은 박탈됐다. 수요자 중심을 외치던 교육 풍토에서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과도한 요구도 서슴치 않았고 자기 아이가 손해보지 않기 위해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했다. 교사들은 무기력감을 느꼈고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교사들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있다.
교실붕괴론자들의 교육개혁은 실패했다. 급기야 교실은 해체됐다. 우리는 교실붕괴론자들의 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비판하는 우리의 논리를 '교실해체론' 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기고문을 통해 지난 20년 간 교실붕괴론자들이 외친 자유주의적 교육 담론이 어떻게 학교 교육을 망쳐왔는지를 비판하고자 한다. 교육문제에 대한 그들의 안이한 인식과 대처가 교사와 학급공동체의 힘을 빼앗아 교사와 학생을 절망하게 만들고 있으며, 공교육 정상화의 길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고자 한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선생님, 왜 우리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으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문제를 일으켜 교사들이 혀를 내두르는 중2 남학생의 부모에게 이와 같은 답변을 들은 젊은 담임교사는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이 아이의 잘못을 적은 기록 중 일부를 살펴보자.
"책도 없고, 과제도 하지 않고 오직 주변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매일 교사의 지시를 어기고, 소리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마음대로 교실을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복도를 돌아 다니다 다른 반 창문을 열고 친구에게 인사한다. 수행 평가 도중 심심하다고 교과서를 찢어 뭉치기 시작, 교실 앞에 수북이 산처럼 쌓아 놓은 적도 있다."
아이의 문제 행동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가 문제 행동을 일으켜 교사가 집에 연락을 하면 부모가 불같이 화를 내며 왜 우리 아이를 차별하느냐며 난리를 쳤다. 중학교 교사들도 그걸 아니까 이 아이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이 아이가 있는 교실의 다른 아이들은 고통스러워도 참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다른 아이들도 이 아이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수업 따위 내팽개치고 이 아이의 장난질에 재밌다고 낄낄거리며 동조하기 시작한다.
담임교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매일 교무수첩에 기록하고 학부모에게 전화한다. 그러나 부모에게 전화할 때마다 부모는 오히려 담임을 공격한다.
"왜 우리 아이만 차별하세요?"
"잘못만 지적하지 말고 칭찬하고 감싸주셔야죠."
못된 아이가 장악한 교실
이 교사는 의욕 있고, 성실하며 수업, 상담, 생활지도 등 아이들과 밀착하여 생활하는 친화력 있는 교사였다. 그러나 이 아이를 막을 수 없었다. 교실의 분위기는 점점 냉랭하게 얼어붙어 갔다. 학기 초반에는 선생님 선생님 하며 붙어 다니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돌아선다. 이제 아이들은 담임교사가 앞에 있는데도 '야, 솔직히 담임이 우리에게 해 준게 뭐냐?'라고 대놓고 무시한다. 교사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부모 역시 처음 담임과 통화할 때는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러나 담임의 전화가 계속되자 부모는 점점 냉담해지고 담임 탓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왜 우리 아이만 나쁜 아이로 보냐, 우리 아이는 특별한 아이인데, 왜 담임이 그걸 이해 못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부모는 급기야 담임교사와의 통화를 녹취한 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앉아 교사의 녹취를 돌려 들으며 교사의 잘못을 트집잡기 시작했다.
"선생님 우리 애랑 말이 다른데요? 이런 거 다 교육청 민원넣고,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도 있어요"
서이초 1학년 교실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가위로 장난치다
한 아이가 다른 애 손가락 살을 자름
살점이 떨어지니 삽시간에 피범벅 되고
소리 지르듯 기절할 듯 울고
그 주변 난리 난 26명의 1학년들
그야말로 혼비백산
사실 나도 울고 싶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겨우 애들 진정시키고
피뚝뚝 내옷에도 다 묻으면서 겨우 치료받으러 가는데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 떨렸다 사실 나도 울고 싶었어...
집에 가고 싶다... 너무 힘든 하루
- 故 서이초 교사가 '가위 사건' 당시 남긴 SNS
마음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와 그것을 막지 못하는 교사, 그리고 공포에 사로잡힌 다른 아이들. 교실은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서이초 교사가 죽음을 택한 이유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서이초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정교육을 잘 못 받은 '못된 아이들'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교사를 위협하는 '아동학대법과 학부모의 악성민원'으로 본다. 어떤 사람들은 교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추락한 교권'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못된 아이들이 장악한 교실' 이라는 현재의 상황은 잘못된 교육정책이 낳은 교육정책 실패의 결과로 본다. '교실붕괴론'이라는 '자유주의적 교육개혁' 담론은 지난 20년간 우리 교육의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며 교육개혁을 강제해 왔다. 이 '교실붕괴론' 이야말로 교실을 망친 주범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실붕괴론, 우리 교육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
왜 우리 교실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 시작된 1999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교육의 잘못된 해법을 내세운 교육계 주류 인사들이 지금의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 잠자거나 만화책봐...자리 비워도 못본척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아이, 수업시간에 교실을 뛰어다니는 학생들, 교사의 지시와 질책을 우습게 여기는 아이들, 학생지도를 겁내는 교사들…. 모두가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마저 무너지는 현장,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충격적인 '교실 파괴'의 현장들이다. 그러나 교실이 무너지는 소리는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일선교사들은 "교실에서 수업이 불가능한 지 이미 오래"라고 증언하고 있다.
- <조선일보>,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1999.8.23.~31.)
1999년, 조선일보에서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위 '교실붕괴론'의 연재가 시작되었다. '교실붕괴론'은 이처럼 갑작스레 등장했다. 언론에서는 수업시간 자는 아이, 교사에게 반항하는 아이, 지도를 포기하는 교사들 등을 연일 대서 특필했다.
'무너지는 교실', <조선일보>(1999. 8. 23. ~ 31.)
'학생도 교사도 학교 가기 싫다', <시사저널>(1999. 9. 23.)
'열린교육 1세대 - 고1 교실은 난장판', <한국일보>(1999. 10. 6.)
'고교생 학력저하 우연 아니다', <한국일보>(1999. 10. 11.)
'방황하는 청소년, 무너지는 교실, 그들만의 미래는 있다', <주간한국>(1999. 10. 14.)
'추적 60분 - 교실붕괴', 한국방송(1999. 10. 21.)
'정운영의 100분 토론 - 교실붕괴, 공교육 불신의 원인', 문화방송(1999. 11. 12.)
언론의 막강한 힘은 입시 교육, 지식 암기 교육만 하던 부실한 우리 공교육이 드디어 무너져 버렸다는 위기감을 자아냈다. '교실붕괴론'은 금새 언론을 장악하고 교육계 핵심 화두가 되었다. 성열관, 이인규, 전종호 등 교육계의 주류 인사들이 교실붕괴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교육운동 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금의 교실붕괴 현상에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전교조는 성명을 발표하고, 아름다운 학교운동을 시작하고 이것은 이후 혁신학교 운동으로 이어진다.
원래 교실붕괴는 1) 수업시간 자는 아이들 2) 교사에게 반항하는 아이들 3) 지도를 포기하는 교사들을 모두 포함하던 개념이었다. 즉, 교실 붕괴론은 공교육의 위기를 두루 다루고 있었다. 99년은 우리나라에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일진들의 괴롭힘, 횡포로 자살하거나 죽는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었고 교사들은 이에 어찌 대응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분명 교육의 위기는 오고 있었고 그것은 총체적 문제였다.
교실붕괴의 원인은 무능한 교사
그러나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 교육학자들은 총체적인 문제 중 '수업시간 자는 문제' 를 핵심적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또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대에 뒤떨어져 낡았고, 교사들이 게으르고 무능하기 때문이라며 공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보화다 세계화다 하며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고 우리 아이들은 크게 달라져가고 있는데, 우리들은 그 달라진 아이들을 이해하지도 못한채, 집이나 사회보다 훨씬 뒤떨어진 교육환경 속에 몰아 넣고 획일적인 교육을 구태의연하게 하며 입시경쟁을 시키고 있다.
이러한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불러 온 교육붕괴 사태일 것이다.이제 교육은 이 변화된 아이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서 부터 시작하되 우리 교육환경부터 바꾸어야 하고 탁상공론의 획일적인 교육개혁이 아닌, 교사가 주최가 되어 각각의 교육현장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교육여건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 '아이들에게 변화된 교육환경을', 조경원 교수, <이대학보>(1999. 11. 1.)
그러나 이는 매우 단편적인 해석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사들이 수업을 재미있게 하여 자는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면, 의도적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도 막을 수 있을까. 또한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반항하는 학생, 학교부적응 학생도 없어질까.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모든 문제를 '잠자는 아이들'과 '낡은 학교, 무능한 교사'를 대비시키는 프레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서 '잠자는 교실을 깨워라' 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했다. 이런 논리는 20년간 반복되며 이어지고 있다.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라', <한국교육신문>(2001. 6. 11.)
'교육대기획 다시, 학교 8부 잠자는 교실', 교육방송(2020. 1.)
'클래스 업(UP)! 교실을 깨워라', EBS(2023.11.~2024. 1.)
'잠자는 교실, 제도와 실천으로 깨워라', 최우성 교장, <인천일보>(2024. 2. 26.)
'하이터치 하이테크로잠자는 교실을 깨우다!', 교육부 영상백서 교육TV(2024. 3. 7.)
교실붕괴론은 자유주의 교육개혁을 위한 타협의 산물
그런데 과연 잠자는 아이들만 문제였을까? 99년은 학교폭력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1995년 김대현 군의 투신자살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알려졌고, 1998년 대덕고등학교 조직적 왕따 사건, 2000년은 옥정중 서지혜양 폭행사망, 같은 해 성수여중 일진 폭력 피해 폭로 등 굵직한 학교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교실붕괴에는 학교폭력, 일탈행동, 교권침해가 모두 포함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를 수업불가능,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 문제로 치환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매우 협소한 관점인데, 이 시기에 이런 협소한 관점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장기적인 교육개혁을 염두에 둔 교육학자들의 모종의 타협, 합의의 산물로 보인다. 앞으로 우리나라 교육을 미국식으로 바꾸기 위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문제를 협소화하여 학교, 교사 집단을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99년이라는 시기는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시작한 5.31 교육개혁안이 좌초할 위기에 빠진 것과 관련이 있다. 김영삼 정부는 5.31 교육개혁안을 통해 '국가 중심, 공급자 중심에서 시장 중심, 수요자 중심으로' ,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 '규제에서 자율성 확대로', '교육과정 다양화' 등의 기조를 가지고 초중고 뿐 아니라 대학교육을 아우르는 전 교육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하여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 하고자 했다.
교실붕괴론을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가속화
그러나 5.31 교육개혁 조치는 각계 각층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자사고 도입, 학교평가 도입, 대학 설립 완화' 등은 학교 교육을 시장의 논리로 구조조정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 이라는 사회적 반발에 부딪혔다. '7차 교육과정, 수준별 이동수업, 조기 영어 교육' 등은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그리고 '교원 정년단축, 교원평가, 성과급제 도입' 등 교사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교사들의 집단 반발이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즉, 정부가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준비한다며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정책이 사면초가에 놓여 좌초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 때 구원투수처럼 '교실붕괴론'이 등장하며 상황이 뒤바뀌었다. 교실이 무너진다, 우리 교육이 무너진다는 위기 여론이 형성되었고, 구시대적 교육 방식을 고집하는 학교와 교사는 개혁 대상으로 매도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교육계의 주류 이론가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수업시간 잠자는 아이들과 무능한 학교- 교사'라는 프레임 속에서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모두 무력화되었다. 실제로 교실붕괴론의 등장 이후 정부의 교육개혁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1997년에 만들어진 7차 교육과정이 '고교서열화, 우열반 편성 등 공교육을 붕괴 시킬 것'이라는 전교조의 집단적 반대투쟁에 밀려 계류되었으나, 교실붕괴론의 등장 이후 곧바로 2000년부터 시행되기 시작되었다. 교원평가가 2005년부터 시범 실시되었고, 교과교실제가 2009년 도입, 마지막으로 고교학점제가 2017년 도입되었다. 고교학점제는 내년인 2025년 전면 실시를 앞두고 있다.
이로써 우리 교육의 체질을 개선한다는 5.31 교육개혁은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교실붕괴론' 은 지난 20년간 우리 교육을 지배해 온 담론이고 그 지위는 여전히 굳건하다. '교실붕괴론자'들은 흥미 위주 수업을 하고, 학생들의 선택을 늘리고, 학점제와 교과교실제를 통해 학급을 해체한 뒤, 꿈과 끼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면 잠자는 아이들이 일어나고 교육이 살아날 거라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이 약속한 교육의 장밋빛 미래에 이미 와 있는가. 우리 교육의 체질을 개선한다던 교실붕괴론은 우리 공교육을 바꾸기 위한 혁명의 깃발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공교육을 해체시키려는 악마의 속삭임이었을까?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앞서 우리는 지금의 교육현실을 냉정히 돌아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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