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4일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긴축 재정 기조를 설명하고 '4대 개혁' 추진에 정책적 방점을 뒀다. 대내외적 어려움 속에도 국정 기조 유지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시정연설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국무총리가 연설문을 대독한 것은 11년 만에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지난 9월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한 바 있다.
야당이 탄핵과 하야를 거론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직접 참석이 여의치 않다는 판단에서였지만, '김건희 리스크', '명태균 녹취록' 등 정국 격랑을 일으킨 책임론이 일차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향하고 있어 시정연설 불참에 따른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불가피한 사유 없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마다한 것은 온당치 않다"면서 "국민들도 크게 실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반,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정도로 나라 안팎의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국제 경제 환경의 여파로 인한 각종 민생경제 어려움을 언급하며 "코로나 팬데믹 시절 못지않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서 국가신인도를 지켰고, 과감하게 규제를 혁파해서 국가의 성장동력을 되살렸다",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했고, 무너진 원전 생태계도 복원했다"고 자평했다.
또 "반도체, 자동차를 비롯한 주력산업의 수출이 살아나면서, 올해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올해도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인 투자유치가 기대된다"고 낙관했다.
민생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작년 15세에서 64세 평균 고용률은 69.2%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실업률 역시 2.7%로 역대 최저를 달성했다", "금투세 폐지,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 등 금융시장 활성화 정책들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약자 복지' 정책과 관련해선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돌봄 국가책임제를, 역대 어느 정부보다 폭넓고 두텁게 실현해 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의료개혁의 4대 개혁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정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해 낼 것"이라고 했다.
의료개혁에 대해 윤 대통령은 "당면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과 비급여·실손보험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는 한편, 향후 5년간 30조 원 이상을 투입해 의료개혁 과제를 차질 없이 뒷받침하고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현안인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연금개혁에는 "지난 9월 정부 차원의 단일한 연금개혁안을 제시한 바 있다"면서 "정부 案은 논의의 시작이자 기준점이다. 국회 논의 구조가 조속히 마련돼 빠른 시일 내에 사회적 대합의가 이루어지고 법제화가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노동개혁 과제로는 "노동제도 유연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연공서열에서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선해 나가고, 개인별로 다양한 근무 형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개혁에 관해선 늘봄학교 확대, 아이 돌봄체계 완성, AI 디지털교과서 등 미래인재 양성 계획 등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4대 개혁을 위한 과제로 인구 위기 극복을 언급하며 "인구전략기획부가 신속히 출범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 주시길 당부한다"고 했다.
외교 분야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흔들리던 한미동맹을 바로 세워 글로벌 포괄 전략동맹을 구축했다"면서 "작년 4월의 워싱턴 선언을 토대로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을 가동해 대북 핵억지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고 했다.
또 "무너진 한일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적인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협력 시대를 열었다"면서 "한미 연합연습을 정상화하고 한국형 3축체계를 구축해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최근의 국제 안보 상황과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 군사 공조는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모든 가능성을 점검해서 철저하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욱 튼튼하고 강력하게 안보를 지켜나가겠다"면서도 '단계적 대응'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피력하지는 않았다.
이어 윤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을 긴축 재정 기조로 편성한 데 대해 "정부의 건전재정은 단순히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뜻이 아니"라며 "흔들림 없는 건전재정 기조 아래 효율적인 재정 운용을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3.2% 증가한 677조 원이다.
세수 부족에 따른 적자 재정 우려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관리재정수지 적자규모는 정부가 추진 중인 재정준칙 범위 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채무비율은 48.3%로 전년 대비 0.8%p 소폭 증가하는 수준으로 억제했다"고 했다.
또 윤 대통령은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와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 등으로, 앞으로 재정 운용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 중점 지원 분야로 △맞춤형 약자복지 확충 △경제활력 확산 △미래 준비를 위한 경제 체질 개선 △안전한 사회와 글로벌 중추 외교 등을 꼽았다.
우선 "모든 복지사업 지원의 기준이 되는 중위소득을 내년에도 역대 최대인 6.4% 올려서, 약자복지 확충 기조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했다. 또 "양육비 미이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 가정을 돕기 위해 양육비 국가 선(先)지급제를 도입해 자녀 1인당 월 20만 원을 최장 18년간 지원하겠다"고 했다.
경제활력 확산 방안으로는 정책자금 상환기간 연장 등 소상공인 대책과 농어민 소득 안정을 위한 수입안정보험 전면도입 등을 언급했다. 또 AI, 바이오, 양자 등 전략기술에 29조 7000억 원 투입 방침도 밝혔다.
이와 함께 "원전산업 성장펀드를 조성해 원전 생태계의 복원과 도약을 이끌고, 방산 수출의 모멘텀을 키우는 K-방산 수출펀드도 조성하겠다"고 했다.
저출생 반등을 위한 재정지원 방향으로는 "현금성 지원에서 벗어나, 실제 육아 현장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양립, 돌봄, 주거의 3대 핵심 분야를 중점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시기에 충분히 육아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배우자 출산휴가를 20일로 늘리겠다"며 "육아휴직 급여를 대폭 인상하고, 동료 업무 분담 지원금도 신설하겠다"고 했다. 또 "신혼부부와 출산 부부의 주거 부담 완화를 위해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요건을 2억 5000만 원으로 상향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역의료, 필수의료 확충을 위해선 "금년 8000억 원 수준의 재정 지원을 내년 2조 원 수준으로 대폭 확대하고, 향후 5년간 국가 재정 10조 원을 포함해 총 3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밖에 윤 대통령은 사병 봉급 월 205만 원(병장 기준) 인상,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금을 50% 인상, 마약 범죄 근절 예산 20% 인상 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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