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어느덧 2주기를 맞았다. 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일어난 압사 참사의 진상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약 38평의 경사진 골목에 수백 수천 명이 몰리면서 '그날' 밤 10시 25분께 군중 밀도는 한 평당(㎡) 10.7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인파 관리를 위해 배치된 인력은 없었다. 경찰이 기동대를 처음으로 투입한 시간은 밤 11시 40분, 압사 위험에 대한 첫 112 신고가 들어온 지 5시간 뒤였다. 그렇게 누군가는 선 채로, 또 누군가는 깔린 채로, 축제였던 그날은 악몽이 됐다.
그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참사 발생 18개월 만에야 통과되면서 지난 9월 특별 조사 기구가 정식 출범했다. 이런 가운데 관련 책임자 3명에 대한 1심 판결이 엇갈리면서, 유가족들에겐 특별 조사 기구의 판단만이 마지막 보루로 남았다.
송기춘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6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참사 2주기 추모대회에서 "특조위는 2년 전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왜 희생자와 피해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조처들이 행해졌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등 모든 의문과 요청에 답하고자 한다"며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특조위에 "형사처벌 중심의 수사·재판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참사의 원인"과 참사 당시 가족의 마지막 모습 등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했다. 또 생존 피해자 이주현 씨는 생존 피해자들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그날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며 특조위에 "피해자 조사를 최대한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염원을 받아 안게 된 특조위는 형사 재판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유가족과 관련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쟁점 세 가지를 정리했다.
① 도의적·정치적·법적 책임, 어떻게 물을 것인가
경찰은 참사 발생 사흘 만인 지난 2022년 11월 1일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꾸려 74일간 수사를 진행했다. 특수본은 서울경찰청·용산구청·용산경찰서 등 책임 있는 기관들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인한 참사, 즉 '인재'라고 결론 내리고 23명을 입건했다. 이들 중 최근 김광한 전 청장, 박희영 구청장, 이임재 전 서장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졌다. 김 전 청장과 박 구청장에 대해선 무죄가, 이 전 서장에 대해서는 유죄(금고 3년형)가 선고됐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TF의 백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김 청장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재판부는 서울청을 용산서가 1차적으로 파악한 위험을 보고하면 조치하는 기관으로 소극적으로 본 것 같다"며 "경찰 차원의 책임을 더 포괄적으로 인정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판결"이라고 밝혔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한 변호사는 "2심도 있기 때문에 1심 판결만으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확정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혐의인 업무상 과실치사에만 초점을 맞춰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형사 재판의 한계를 짚었다.
재판부도 이 같은 한계를 인정했다. 김광한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서부지법은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 안 된 것으로 보여 아쉬움을 넘어 실망과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관련 기관 책임자에 대한 도의적·정치적·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족과 생존 치료자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치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참사 당시 가족의 마지막 모습과 응급조치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이태원 참사 TF 조인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유가족들마다 특조위 조사를 통해 알고 싶어 하는 점이 조금씩 다르다"면서도 "유가족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그 당시 현장에서 희생자들이 어떤 응급조치를 받았는지, 혹은 어떤 조치를 받았어야 했는데 못 받은 것은 아닌지 현장 상황에 대한 의문이 크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어 "희생자든 생존자든 구조 이후 병원이나 다목적 체육관 등으로 이송된 과정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며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가족들이 (정부에서) 받은 구급활동일지는 '2차' 구급활동일지로 병원이나 다목적 체육관으로 이송된 이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궁금증을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급활동일지는 당시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의 조치 사항 등을 기록한 것이다.
희생자 고(故) 유연주 씨의 아버지 유형우 씨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딸의 사망 소식을 알았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마주한 경찰은 복도 한 켠에 놓인 간이침대 위 시신을 확인하라고만 할 뿐 다른 설명은 없었다고 했다. 고(故) 서수빈 씨의 어머니 박태월 씨도 최근 발간한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에서 참사 다음 날 새벽에도 사망자 명단에 없던 딸이 오후 2시쯤 경기도 성남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딸이 어떻게 성남의 병원까지 가게 됐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유가족 대부분은 가족의 시신을 인계받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정부 당국으로부터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일 특조위에 낸 '1호 진정'의 9대 진상규명 과제 중 첫 번째로 '희생자 159명이 가족들에게 인계되기까지의 행적'을 꼽았다. '부실 구조'에 대한 의문인 셈이다.
앞서 특수본은 최성범 전 용산소방서장 당일 현장에 도착해 지휘권을 선언한 밤 11시 8분까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반려했다. 이후 검찰총장 직권으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렸지만, 1(기소)대 14(불기소) 의견으로 불기소 권고안이 의결돼 최 전 서장은 재판정에 서지 않았다.
② '대통령실 이전이 참사에 미친 영향' 밝힐까
특조위가 '용산'을 조사 대상에 넣을지도 관건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치안 책임 증가와 참사 당일 질서 유지 공백을 연관 지어 조사하다 보면, 특조위는 결국 '용산'을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반면 특조위가 '용산'을 거론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조사 자체가 '정쟁의 도구'로 변질돼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임재 전 서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용산경찰서가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집회·시위 대응으로 핼러윈 데이 질서 유지에 구멍이 생겼다는 점을 일부 인정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사고 당일 관할 내 대규모 집회·시위가 예정돼 있어 용산구의 치안을 책임지는 용산경찰서로서는 집회·시위 대비와 핼러윈 데이의 질서 유지를 모두 담당하게 됨으로써 병력을 실효적으로 운용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가족들도 특조위에 제출한 9대 진상규명 과제에서 '대통령실 이전이 참사 대응 관련 각 기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민변은 지난해 10월 참사 1주기에 향후 진상규명을 위한 추가조사과제 31개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각각 기관과 책임자·담당자들이 행했던 위법을 포함해 다수 개별적 활동 문제를 파악·판단하기 위해서는 특수본·검찰 조사가 갖는 법 위반 관점의 한계를 넘어서는 포괄적 시각과 명확한 문제의식, 일관된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변은 또 참사 직후 유가족에 대한 정보제공 지연, 유가족 신원확인 및 시신 인도 과정에서의 문제점, 피해자 명예훼손 및 혐오 표현으로 인한 2차 가해 등 피해자 지원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③ 정부·여당의 협조, 어떻게 구할 것인가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참사 2주기 추모대회에서 "위원회(특조위)가 독립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특별법 제정과 특조위 구성 등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 비판적이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다. 국민의힘은 22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통과시킨 뒤에도 특조위 위원 명단을 기한을 넘겨 제출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시민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야4당이 발의한 21대 국회 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으며, 국회의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참사 조작설과 같은 '음모론'을 언급할 정도였다. 윤 대통령은 또 특조위 위원 임명을 뚜렷한 이유 없이 미루다 참사 2주기 50일을 앞두고서야 재가했다. 이로 인해 특조위는 참사 발생 22개월 만이자 특별법 통과 4개월 만에 겨우 출범했다.
'지연된 출발'에도 특조위는 지난 15일 5차 전원위원회에서 시행령안을 의결하고, 본격적인 운영 준비에 들어갔다. 사무처 구성(파견 공무원 30명·선발 별정직 60명 등 총 90명) 및 별도의 자문 기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시행령안은 행안부 등 관계 부처의 검토 후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공포된다.
대통령령으로 시행령이 공포되고 특조위가 조사개시를 결정하면, 특조위는 이때부터 1년에서 최대 1년 3개월간의 활동 기간을 보장받게 된다. 여야 간 정쟁으로 이태원 특조위는 세월호 특조위·사참위보다 짧은 조사 기간에 권한마저 축소됐다. 세월호 특조위·사참위는 최대 6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했으며,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이 부여됐다.
특조위가 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조사 권한만큼 중요한 게 예산 확보다. 특조위 사무처 준비 설립단 관계자는 "이미 조사 활동에 필요한 예산 규모를 짜놓았다"며 "예산 확보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세월호 특조위는 1년(2015년 8월 4일~2016년 9월 30일)간의 활동 중 제출한 두 번의 예산안 모두 절반 이상이 삭감됐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유가족들과의 면담에서 "대통령이 위원 임명도 시간을 끌고 내년 특조위 예산도 편성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정부가 진상 규명에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특조위가 제대로 활동하려면 충분한 예산, 인력과 지원이 필요하고 정부의 관련 기관 협조도 필수적이다. 이 자리를 빌려 정부가 내년 특조위 예산을 서둘러 편성하고 인력도 충분히 지원하길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특조위 활동은 정부·여당이 '합의 정신'을 얼마나 잘 따르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야 합의로 만든 특별법 중 '피해자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시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3조(피해자의 권리)
피해자는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조사, 피해자 구제 등 모든 과정에서 다음 각호의 권리는 갖는다.
1.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고 진상조사 과정 등 정부 행정에 참여할 권리
2. 차별받지 않고 혐오로부터 보호받으며 필요한 조력을 받을 권리
3. 개인정보 및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4. 기억, 추모, 애도를 받거나 할 권리
5. 생활지원·의료지원·심리치료지원·법률지원 등 필요한 지원을 받을 권리
6. 추모사업·공동체 회복사업 등 후속 사업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등 참여할 권리
7. 배상 및 보상을 받을 권리
8. 그 밖에 「대한민국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따라 인정되는 피해자의 권리
제4조(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① 국가 및 관계 지방자치단체 (이하 "국가등"이라 한다)는 피해자에 대한 피해구제 및 지원 등 피해자의 권리보장에 관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② 국가등은 이 법에 따른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지원 등 피해자의 권리보장을 위한 업무수행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③ 국가는 피해자의 권리 보장 및 피해지역의 지원을 위하여 필요한 예산상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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