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기고문들은 주로 법의 문제를 비판하고 법 개정 방향을 제안했다. 그러나 법만 바뀌면 학교 현실이 바뀔까? 반대로 법이 바뀌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우리는 지난해 발표한 성명서에서 교육부와 교육청만 제 역할을 했더라도 서이초 사건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처벌법, 학교폭력법, 초·중등교육법 등 교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기존 법률이 가장 큰 문제이나 교육당국이 교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사태가 그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넘게 지난 지금, 교육부와 교육청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교육부가 만든 생활지도 고시, 무기력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공표했다. 그러나 지난 기고문에서 지적했듯 학생이 교육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 지도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고 분리 조치, 상담, 사실확인을 위한 면담 등을 학습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분리조치가 가능한 인적 물적 조건 마련을 학교에 떠넘기고 있어서 실효성이 거의 없다. 고시 제정에 이어 배포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해설서'는 추상적일 뿐 아니라 교사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내용이 많다.
'주의' 지도요령
[관련 판례] 교사가 아동A(7세)가 작성한 일기를 검사하던 중 자신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동의 일기를 다른 급우들이 듣도록 크게 읽은 후 아동에게 "내가 뭘 했다고 말 공격해? 얘들아 선생님이 말 공격했니? 혼내야 돼? 안 혼내야 돼?"라고 말하고, 아동B(7세)가 반 친구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때면 반 친구들로 하여금 아동에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을 여러 번 반복하여 말하도록 시키는 등 정서적 학대 → "공개적인 장소 및 주의 반복" → 아동학대 인정
교육부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 해설서' 中
예를 들어 '주의'에 대한 해설에서 공개적으로 주의를 줄 때 경멸, 비난, 조롱, 타인과의 비교 등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하면서 관련 판례를 제시했는데, 판례를 해석할 때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주의를 준 것, 주의를 '반복'한 것이 문제인 것처럼 지적하고 있다. 경멸과 경멸이 아닌 것, 비난과 비난이 아닌 것은 어떻게 구별되는지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그동안 정서 학대의 개념이 모호해서 무분별한 신고가 발생했고 교사가 고통을 겪었는데 경멸, 비난, 조롱, 타인과의 비교 등도 개념이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교사가 어떤 학생에게 "떠들지 말고 선생님 말에 집중하세요"라고 했는데 학생이 "저만 떠든 것도 아닌데 왜 저한테만 뭐라고 하세요?"라고 반발했다 치자. 교사가 "지금 너 말고 떠드는 사람이 누가 있지? 다른 친구들은 모두 조용히 듣고 있는데?"라고 했다면 타인과의 비교여서 인권을 침해한 것이고 학대한 것인가? 아니면 정당한 지도인가? 이런 혼란스런 가이드북을 접하면 교사는 웬만하면 주의를 주지 말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교육부 해설서는 어떻게 하면 고소 당하지 않는지 알려주는 내용 위주여서 정당한 생활지도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고 보기 어렵다.
교육청도 무능했다
2018년 서울시교육청은 악성 민원 대처법을 배포하였다. 흥분한 학부모에게 차를 권해라, 경찰에 신고하라는 황당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동안 교육청이 학부모의 부당한 민원에 대해 방관하며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매뉴얼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경기도교육청은 악성민원 학부모를 형사고발하기 시작했고 서이초 사건 이전보다 강경 대처 기조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도 올해 담임교사에게 협박성 편지를 보낸 학부모를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개별교사가 직접 민원대응을 하지 않도록 학교 출입관리 강화, 24시간 민원상담 챗봇서비스 개발, 모든 학교 녹음 가능 전화 구축, 카카오채널을 이용한 학교 방문 사전 예약시스템 도입 및 지능형 영상감지시스템 설치, 면담실 및 방문대기실 설치 등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교육활동 침해 사안 발생 시 교사를 돕기 위해 1교 1변호사제, 교육활동보호전담관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부산교육청도 법률지원단 변호사를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학부모와 교사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의 대화와 행동을 녹음·녹화하고, 법률지원 변호사를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정책 도입에 따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교사노조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교권 침해 등에 대한 서울 지역 교사들의 고충 상담 건수는 1246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1222건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서 찬반 논란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은 교권 침해 등을 이유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추진하는 서울시의회와 갈등을 빚었는데 학생인권조례 존치를 위한 노력에만 몰두해왔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호 보완적이다,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교권도 보장된다는 공허한 주장만 되풀이해왔다. 최근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면서 정근식 교육감이 당선되었지만 조희연 전 교육감과 입장이 비슷하므로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교육부, 분리조치 현실화 위한 인력과 예산 확보해야
분리조치가 가능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고 분리조치실에서 학생을 보호‧감독‧교육할 인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 분리조치실은 교무실, 교장실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무실이나 교장실에는 분리조치된 학생이 있을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고, 교사도 교감, 교장도 해야 할 업무가 있으므로 학생을 보호‧감독‧교육하기 어렵다. 어떤 학생이 분리조치되면 교무실이나 교장실 한쪽에 앉아서 자습하게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문제는 분리조치 실시 전부터 발생할 것이 뻔히 보였다. 교육부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알아서 하도록 떠넘겼다. 제한된 학교 부지 안에서 분리조치실을 따로 만드는 것은 어려우니 공간은 학교에서 마련하게 하더라도 지도 인력 확보는 교육부가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전담조사관제도처럼 퇴직 교사를 고용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분리조치실에서는 보호‧감독뿐만 아니라 교육도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돌림사회연구모임은 모든 학교에 생활지도 전담 교감 또는 수석교사를 배치할 것을 제안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교에서 알아서 분리조치 담당 교사를 정하라고 떠넘기거나 분리조치를 담당한 교사에게 보결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분리조치 지도 담당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모든 학교에 배치해야 한다.
분리조치 학생 지도 프로그램 개발해야
분리조치에 교육이 동반되지 않으면 학생의 행동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학교에서 특별교육이수나 출석정지 징계를 받은 학생들이 마치 휴가라도 얻은 것처럼 행동한다. 이는 특별교육 프로그램이 부실하고 출석정지가 방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분리조치에 교육이 동반되지 않으면 분리된 학생은 교실보다 분리조치실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면서 분리조치를 우습게 여길 게 뻔하다.
교육부는 분리 조치가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민원을 의식한 듯 분리조치 시 수업의 내용을 보강할 수 있는 학습자료를 제공하도록 권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교과 수업만을 학습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분리 조치된 학생에게 필요한 성찰과 반성을 가로막는 것이다. 학교는 단순히 교과지식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공동체 정신을 배우고 함께 생활하기 위한 예의와 규범을 습득하는 것이 교과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학습이다.
교육부는 분리 조치된 학생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도록 양질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사안별‧급별‧행위의 심각성 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역량 있는 교사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초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급별‧지역별‧사안별‧학생의 특성별로 워낙 복잡한 원인을 갖고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으니 프로그램은 계속 보완하고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교사 평가권 보장해야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평가를 기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생활기록부에는 생활태도를 평가할 수 있는 별도의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행동특성 및 종합 의견'란에 뭉뚱그려 기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학생의 학교생활 태도를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 없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중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관련 부분을 살펴보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 학생에 대한 일종의 추천서 또는 지도 자료가 되도록 작성한다", "단점을 입력하는 경우에는 변화 가능성을 함께 입력한다" 라고 되어 있다. 기재 내용이 일종의 추천서가 되어야 하고 단점을 입력할 때는 변화 가능성을 입력해야 하므로 교사는 자기가 평가한 대로 내용을 입력할 수 없다. 이는 교사의 평가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모든 교육활동에 평가가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유독 학교생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면만 기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누군가는 생활에 대한 평가가 낙인이 될 수 있다면서 반대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교과 성적도 낙인이다. 한때 생활태도가 나빴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거나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는 게 부당하다면 한때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거나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는 건 정당한가? 교과 성적은 평가하지만 학교생활은 평가하지 않으니 학생이 교과 학습에 비해 생활태도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고등학생들이 입시에 필요한 과목 수업은 집중해서 들으면서 불필요한 과목 수업 시간에는 자거나 학원 숙제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학생의 학교 생활 중 무엇을 평가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거칠게나마 제시해 보자면 평가 영역은 크게 교과 교육활동 참여 태도, 비교과 교육활동 참여 태도, 대인 관계 태도, 규범 준수 태도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고, 평가 방법은 5단계 평가를 기본으로 하여 서술 평가를 추가할 수 있는 형태가 어떨까 싶다. 징계 사실도 기록해야 한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데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징계 사실 기재에 대해서도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폭력 가해 사실 기재로 인해 소송, 맞신고 등이 늘어난 이유는 기재 그 자체로 발생한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학교생활 태도에 대해서는 평가‧기록하지 않는데 학교폭력 가해 사실만 기록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생활지도에 대한 평가권만 교사에게 있어도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교사의 정당한 지도에 따르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분리 조치되는 학생도 줄어들 것이고 징계받는 학생도 줄어들 것이다.
저경력 교사 지원 제도 필요
올해 서울 신규 초등교사 40%가 근무 기피지로 불리는 강남, 서초에 인사발령 되었다고 한다.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비율이다.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므로 서울시교육청이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강남, 서초 지역의 근무 여건이 열악하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있었겠지만 작년에 서이초 사건을 겪으면서 소문이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에 신규 교사가 강남, 서초에 발령된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교사의 근무지 발령 방법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전출 대상인 교사가 근무 희망학교를 정해 내신서를 작성하고 경력을 점수화하여 점수가 높은 교사를 본인 희망대로 우선 배치한다. 그러다 보니 신규 교사와 저경력 교사는 비선호, 기피 학교로 인사발령 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생활지도가 어려운 학교, 민원이 많은 학교는 교사들이 근무를 기피한다. 경력이 많은 교사도 근무하기 힘든 학교에서 저경력 교사가 버티는 것 자체가 지옥이다. 저경력 교사에 대한 제도적 배려가 필요하다. 생활지도가 어려운 기피 학교에는 교육경력 5년 이하의 저경력 교사를 배치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기피 업무인 학교폭력, 생활지도 업무, 초등학교 1학년, 6학년 담임 업무는 5년 이상의 경력교사가 맡도록 해야 한다.
저경력 교사를 도울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거나 이미 있는 제도는 보완해야 한다. 서이초 교사의 경우에도 어려움에 대해 누군가와 8번 상담했다고 하는데, 상담의 효과는 미미했던 듯하다. 고인이 연필 사건과 관련해 모 부장교사와 상담할 당시 상담자는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조언했다는데 상담자는 그것 말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경력교사가 저경력 교사의 멘토가 되어 적절하고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멘티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 멘토의 판단과 조언을 적극 반영하여 심리적 지원이 즉각 이루어지도록 제도화 해야 한다. 멘토, 멘티 만남의 시간을 수업 시수로 인정해주고 주 1회 정기적으로 만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만남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걸 막을 수 있다.
퇴직 교사, 사망 교사에 대한 전수 조사 필요
최근 10~20년 사이 교사의 사망 또는 퇴직 사유를 조사해야 한다. 의정부 호원초 이영승 교사의 경우 학교측은 교육청에 단순 추락사로 보고했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생활지도의 어려움이나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명예퇴직하는 교사들도 많다. 그러나 퇴직 사유에 '생활지도의 어려움' 등으로 기재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청은 있으나마나한 대책을 세우기 전에 현실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교육청 변호사에 대한 평가 필요
현실 진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엉뚱한 대책을 세우기 마련이다. 교육청에 변호사가 적은 게 교사들이 도움받기 어려웠던 핵심적 이유일까? 변호사의 조언이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게 더 큰 문제이다. 그러니 변호사의 수를 늘리기에 앞서 교육청 소속 변호사의 조력이 도움이 되었는지 평가하는게 우선이다. 교권침해 피해 교사가 도움을 얻으려고 교육청 변호사에게 전화했다가 교사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을 두고 학생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 말을 들은 교사 대부분은 교권침해 신고를 포기하고 혼자 끙끙 앓는다.
지난 1년, 교육부와 교육청은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남발해왔다. 대책의 가짓수만 많았지 효과적인 대책은 거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것은 문제의 원인을 피상적으로 진단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대책만 마련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책들이 과연 효과적이었는지 냉정하게 평가한 바탕 위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이 할 일 제대로 했다면 학교가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교사는 절망하고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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