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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팔레스타인을 위한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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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팔레스타인을 위한 외침이다

[기고] 대량 학살을 보고만 있는 것은 이를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글은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미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작가인 KJ Noh가 기고한 글이다. 그는 광주학살, 제주 4.3학살 등을 다룬 한강이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볼 수 있다면서, 지구촌의 양심적 시민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편집자

한국의 소설가 한강이 토마스 핀천, 무라카미 하루키, 살만 러쉬디, 제럴드 머네인,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던 중국 작가 캔 쉬에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은 수상 사실을 알리는 전화를 받은 후 다른 사람들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아들과 차를 마시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매일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축하 기자회견을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며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뛰어나고 강력한 작가였으나 수상 경쟁에서는 다크호스에 불과했던 한강의 예상치 못한 수상은 노벨위원회가 팔레스타인의 대량 인종학살을 인정했다는 게 가장 근접한 결과이다. 물론 한강 자신은 최근까지 팔레스타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수상은 지금이 역사의 전환점이라는 점을 반영한 것임은 분명하다.

팔레스타인 대량학살에 대한 노벨위원회의 입장이 무엇인지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일 노벨위원회가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나 시인에게 상을 수여했다면 서방 제도권 세력의 맹공격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아니면 (2005년 노벨상 수상자인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가 (수상 연설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과 관련해) 서구의 잔혹성과 위선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것과 같은 사태가 재연될 위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즉 수상자 선정)은 언제나 정치적 순간에 행해지는 정치적 발언이었다. 따라서 이번 선정 작업에서도 매일 매순간 벌어지면서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비인도적 상황이 선정 과정에 고려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한강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은 바로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한강은 수상 후보에 오른 모든 작가 중 유일하게 제국주의 식민지 세력과 그 부역자들이 저지른 역사적 잔학 행위와 대량 학살의 참상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데 전념한 현대 작가다.

노벨위원회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찬사와 함께 그녀의 작품을 "증인 문학", "죽은 자를 향한 기도", "망각을 막으려는 애도의 예술작품"으로 규정하며 이같은 점을 시사했다.

▲14일 오전 광주 북구 중흥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녀의 주요 작품에 대한 이러한 설명에서 팔레스타인의 울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에서 그녀는 1980년 5월 미국의 묵인 하에 군사 독재 정권이 광주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 썼다.

당시 미국은 이란의 친미 독재자 팔레비 샤가 대중 시위에 의해 몰락한 것과 같은 사태가 재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팔레비는 1979년 1월 해외로 망명.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국장에 의해 살해된다). 대신 카터 행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 쿠데타에 항의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한 한국군(당시 미국의 완전한 작전 통제 하에 있었음)의 파병을 승인했고, 한국군은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당시에도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들은 대량 학살에 휘말렸지만 이를 막을 수 없었던 불운한 방관자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실제로는 학살의 주동자이자 대리인이었다.

광주학살의 진상을 파헤친 미국 언론인 팀 셔록은 이같은 미국의 이중성을 명확하게 기록했다.

그는 "광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면서, 문제는 미 국무부가 미국은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도덕적 책임이 없다'고 계속 믿고 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한강의 책은 (광주학살과 관련해) 굳이 미국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녀의 책은 정치적인 책이 아니며,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주학살의 전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슬퍼하는 자, 죽은 자, 고문당한 자, 저항하는 자, 죄책감에 시달리는 자 등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학살의 인간적 고통을 되살려낸다.

어린 소년 동호가 정성스럽게 돌보는 임시 영안실의 썩어가는 수백 구의 시체 더미에서 시작하여, 그녀는 여과되지 않은 학살의 냄새와 느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동호는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고등학생 문재학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한강은 동호/재학이 4개월 전 자신들의 가족이 광주를 떠나면서 비워둔 집의 방으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을 밝힌다. 운명이 바뀌었다면 한강 자신이 죽은 아이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동호는 재학과 한강 모두의 대리인이다. 이 비유는 동호가 첫 번째 총격에서 살아남고 총격을 피해 도망치다가 동료가 쓰러지면서 분명해진다. 한강은 이렇게 썼다.

"난 도망쳤을 거야... 너도 도망쳤을 거야. 네 형제, 네 아버지, 네 어머니 중 한 명이었다고 해도 넌 도망쳤을 거야... 용서할 수 없을 거야.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라는 듯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움찔하고 있는 그의 눈을 바라본다. 용서란 있을 수 없어. 적어도 나에게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한강은 용서를 시도하지 않는다.

"넌 나와 다르잖아... 넌 신성한 존재를 믿고,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부르는 그걸 믿잖아. 당신은 결코 나를 설득하지 못했어... 주기도문도 목이 말라서 다 읽지 못했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듯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나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한강은 그저 목격하고 증언할 뿐이다.

"총검으로 이목구비를 도려낸 한 젊은 여성의 훼손된 얼굴에 내 시선이 닿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소리 없이, 그리고 소란스럽지 않게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깨어졌다. 그때까지는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애도할 수 없는 것을 애도한다.

"당신이 죽은 후 장례식을 치를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을 바라보던 이 눈은 신전(神殿)이 되었어요.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이 귀는 신전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결을 들이마셨던 이 허파는 신전이 되었고... 당신이 죽은 후 나는 장례식을 치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삶이 장례식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현재 팔레스타인 학살에서 이스라엘의 '아말렉' 교리와도 비슷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을 비판한다.

"그 순간 나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 고문과 굶주림이 어떤 말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인지. 너희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깨닫게 해주겠다... 너희는 더럽고 냄새나는 시체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 너희는 굶주린 동물의 시체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 말이야."

또 다른 소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작별 인사 없이 죽고, 사라지고,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제목은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지거나, 잔해 속에 묻히거나, 무덤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그들이 사라지거나 버려지거나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고집스러운 주장이다.

꿈속에서 본 이미지와 택시 안에서 머리 위로 흘러나오는 팝송에서 따온 한 줄의 노랫말을 바탕으로 주한 미군정의 지휘 아래 인구의 20%가 폭격과 학살, 굶어 죽었던 1948년 미국이 주도한 제주도 집단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48년의 제주는 ‘눈 내리는 가자지구’였던 것이다.

"갓난아이들도요?

물론, 전멸이 목표였으니까."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한 후, 해방된 한반도는 소련과 미국의 공동 신탁 통치하에 놓였다. 해방된 한국 국민은 수천 개의 자생적 노동자 및 농민 단체들로 구성된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인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소련은 이를 지지했지만 미국은 이 집단을 적대시하고 금지했으며, 통일 조국을 원하는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남한에서의 단독 선거를 강행하고 이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제주도는 한국전쟁의 본격적인 학살로 이어지기 전, 학살의 양상이 대량 학살로 치달았던 곳 중 하나였다. 그 학살은 이후 반세기 동안 은폐되고 지워졌으며, 진실의 속삭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 은폐를 보여주기 위해 한강은 눈(雪)의 은유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건너편에 40여 채의 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1948년 피난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 불이 나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마을이 소각되었대.

그녀는 어렸을 때 군인과 경찰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어떻게 살해했는지 내게 이야기했다...

다음날 이 소식을 들은 자매는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아다녔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난 여동생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방으로 쓰러져 있는 시신들을 살펴보니 밤새 얇은 눈이 얼굴마다 덮여 얼어붙은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눈 때문에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었고, 이모는 맨손으로 눈을 털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손수건으로 각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한강에게 눈은 "침묵", 비는 "문장"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시신을 닦고, 피와 눈을 정밀하게 닦아내고, 사물을 명확하게 보고, 아무리 극심한 고통을 겪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진실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그녀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이 책은 세 명의 여성 인물을 통해 끔찍한 진실, 즉 공포의 "바다 밑바닥까지" 더 깊이 파고드는 발굴, 즉 릴레이 경주와도 같다.

"이 섬에 내렸던 눈과 먼 옛날, 다른 머나먼 곳에 내렸던 눈은 모두 저 하늘 위 구름 속에서 응축되었을 것이다. 내가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눈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었을 때, 서른 살 때 서울 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맞아 흠뻑 젖었을 때, 70년 전 이곳 제주 학교 운동장에 누워있던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 어르신들의 얼굴을 내린 눈이 가렸을 때....... ... 그 빗방울과 부서지는 눈 결정과 피투성이의 얇은 얼음 층이 하나가 아니라고, 지금 내 위에 내리는 눈이 바로 그 물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한강은 "아주 어려운 숙제"를 해내듯이 보도연맹 학살, 제주 학살, 베트남 학살, 광주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면서, 그 진실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지극하고 다함없는 사랑", 그리고 작가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언어라는 "불가능한 도구"를 이용해 이들 진실을 하나의 단단한 실로 엮어내려 한다.

한강은 아주 어린 시절, 집안에 굴러다니던 어떤 책에서 학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을 떠올리며 그것이 자신의 글쓰기의 핵심 질문이 됐다고 말한다:

"그 책은 어른들에게 전달된 후 책장 속에 책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거꾸로 꽂혀져 있었다. 나는 그 책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무심코 열어보았다.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책에 담긴 압도적인 폭력의 증거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인간이 서로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이 첫 번째 질문에 이어서, 또 다른 질문이 곧바로 이어졌다.그런 폭력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강이 던진 질문은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 체제 하에서 벌어졌던 일과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에 직면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이다.

우리 중 누구도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고도 못 봤다고 말할 수 없다. 대량 학살을 단지 보고만 있는 것은 이를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이슨 히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매일 가자지구에서 목격하는 갈가리 찢긴 아이들, 뒤틀린 시체 더미, 고문 수용소의 비인간적 처우, 산 채로 불타는 사람들 등의 이미지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보았던 이미지와 도덕적으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 끔찍한 규모의 순수한 악, 그 자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각자는 이 질문에 개별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직면해야 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행동을 취해야 한다. 이 문제를 외면하는 자는 누구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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