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은 지난번 연재에 이어서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 다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정부가 내세운 '밸류업' 정책으로 여의도 증권가를 비롯한 경제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해 민주당서는 '부스트업'이라는 일련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기도 했고요. 오늘은 이 '부스트업' 정책의 하나인 주주에 대한 이사의 책임 문제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특히 증권시장은 여러모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증권시장이 잘 되기 위한 전제가 몇 가지 있다면 답은 한결같습니다. 어느 누구나 주주의 지속적 관심과 투자, 그리고, 기업의 안정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라 답할 겁니다. 그러면, 지속적 관심과 투자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당연히 기업의 성장가능성(매출, 영업이익/당기순이익)과 기업의 주주 가치의 제고(배당, 자사주매입후 소각)가 뒷따라야겠죠. 재무적 지표 외에 최근들어서는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를 반영한 여러 기업의 성과지표들이 사회환원의 관점에서 강조되고 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한국의 주식시장은 여러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동원할 만큼 주주에 대한 환원이 다른 선진국시장에 비해 낮은 형편입니다. 주주환원율이 낮으니, 특히 이자나 배당으로 생활해야 하는 고령층일수록 한국의 주식시장에 투자해야 할 매력이 낮아진거죠.
다른 한편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 때문입니다. 한국기업들은 여전히 주주환원보다는 성장에 더 집중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성장의 근간은 결국 기업의 재투자와 외형확대에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성장세를 가능하게 한 이유는 재벌총수의 오너십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 개발경제시절 저금리의 기업공여, 특혜 대출, 집중적 산업육성의 관행이 재벌을 낳았고, 재벌은 여전히 한국의 산업자본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거죠. 다만 그 형태가 좀 더 세련되고, 규모가 거대해졌을 뿐인 것이죠.
해외자본시장의 관점에서 한국의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은 선진국 주식시장이라기 보다는 개발도상국 주식시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여러 차례 정부에서도 한국을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계속 좌절하고 있죠.
이렇다 보니, 한국의 주식시장은 성실한 개인투자자가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기보다는, 총수가 지배하는 대기업 집단과 기관투자자들의 시장이라고 보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습니다. 22%의 양도소득세(Capital Gain Tax)를 부담하면서도 다수의 개미투자자들이 한국의 주식시장보다 미국 또는 EU의 증시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쨌든 애플이나 구글, 코카콜라같은 미국의 대형주들은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을 통해서 개인주주가 투자했을 때 일정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한국의 기업들은 개인주주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다는 거죠. 적어도 기업의 기관인 이사회와 기업의 이사들이 특정주주의 이익만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여러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주주제안권이나,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과 같은 제도는 이를 보호하기에 매우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법, 그리고 상법을 해석하는 관행 또한 이러한 시민사회의 불신을 증폭시키는데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그렇습니다. 우리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한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고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지, 회사의 구성인자인 ‘회사의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발행 사건' 이후에 대한민국의 판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대법원(2009.5.29.선고 2007도4949전합)은 이사가 주식회사의 지배권을 기존 주주의 의사에 반해 제3자에게 이전하는 것은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에 불과하지, 지배권의 객체인 주식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당시의 제3자배정 CB발행의 적법성을 확인했습니다. 아울러 주식회사의 이사는 주식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주식회사와 별개인 주주들에 대한 관계에서 직접 그들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는 않다고 판결하며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죠.
즉 ①회사 다수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기업의 CB를 제3자에게 배정하거나, ②또는 어떤 계열사 간의 합병비율을 모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이 아닌 특정 주주의 지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치산정을 달리하거나, ③주주가치를 계속적으로 제고하는 것보다는 물적분할을 통한 모회사의 회사가치를 희석(dilute)하는 등의 행위가 있어도, 그것이 회사에게 '손해'가 발생한 것이라 아니라면 이사는 자신이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fiduciary duty, 신인의무라고도 칭하기도 합니다)를 다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주주가 회사의 법률관계에서 가진 주식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주주평등원칙에 반하는 해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판결 이후, 우리나라의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대표적인 선진 자본시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거나, 이사의 행동이 이사가 회사 및 그 주주를 공정하게 대할 의무를 위반했다면, 회사나 주주에 대한 책임을 지게끔 하고 있습니다. (델라웨어주 회사법 제102조, 모범회사법§8.30) 우리나라의 여러 기업구조 변경절차에서 보여준 법률·해석의 관행과는 매우 상반돼 있죠. 영국 법원의 경우에도 이사에게는 폭넓은 재량권이 인정되고, 주주는 그러한 직책상의 권한 남용에 대해 취약하므로(vulnerable) 이것이 이사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의 근거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가 이렇다보니, 그 기업의 가치의 영속성이나 적절한 관행(best practice)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의 경우는 기업지배구조의 일방적 변경과정에서 큰 손해를 보게 되고, 반대로 기업의 대주주, 즉 재벌총수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문제를 막자는 시도가 지난 19대 국회때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21대에도 동일하게 여러 의원(정준호, 박주민 등)들이 입법안을 발의하고 있습니다. 위 상법조항을 개정해서 '회사'와 '회사의 주주'에 대해 성실한 책임을 다하게 하자는 것이죠. 기업총수의 이익과 여타 주주의 이익이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여타 주주의 이익이 훼손되는 방향으로 회사의 자본거래(발행, 합병·분할, 주식의 포괄적이전·교환, 지주사설립, 자사주매매, 지배주주의 공개매수)절차를 밟지 못하게 하고, 미리 주주에 대한 이해상충을 탐지할 의무를 이사에게 부과하자는 것입니다.
이 경우, 기업의 지배주주가 아닌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사전에 탐지하면서, 이해상충을 어떻게 해소할지는 이사들이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령 다수주주의 의결권에 따라 선정한 이사일 지언정, 그 이사가 그 이해상충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다수주주의 의결권에 종속된 의사결정만을 하게 된다면 다른 주주의 손해에 대해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겠지요.
또한 이러한 이해상충 해소에 대한 의사결정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다른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손해를 입증하기가 매우 쉬워질 것입니다. 총수의 이해상충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정된 의사결정하에서의 주가산정이나 그 기초가 되는 가치평가 역시 위법한 것으로 보고, 그러한 의사결정이 없었던 상태에서의 주주가치를 산정한 차액상당을 손해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정부의 입장도 약간의 입장변화가 감지되는 만큼, 이러한 상법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큰 관심입니다. 기존의 기업지배구조의 틀을 바꾸는 법안인 만큼, 상법개정만큼이나, 기업 지배구조의 모범규준, 관행, 판례등이 연달아 변경되어야 할 문제인 만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 밸류업의 또다른 방안이 될 수 있고, 선진국 주식시장의 문턱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관문(gateway)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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