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2008년 5월 태어났습니다. 선천성 심장 기형으로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심장개복 수술을 했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치료를 받으면서 지냈고 자폐와 중증 청각장애 진단도 받았습니다. 아들은 성인이 돼도 자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지 않기를 기도하곤 합니다. 아빠가 일하면서 안 좋은 화학물질에 노출돼 아프게 태어난 우리 아들이 산재 제도로 보호 받으면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아버지 태아산재 피해자 정모 씨
근로복지공단이 아버지의 업무상 유해요인과 태아의 질병 간 연관성을 인정하고도 법 미비를 이유로 산업재해 요양급여 신청을 불승인한 데 대한 재심사가 청구됐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한 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어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도 주목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근로복지공단의 정모 씨 자녀에 대한 산재 요양급여 신청 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정 씨 아들은 2008년 5월 심장, 눈, 귀 등에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태아 발달기 1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인 '차지증후군'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에 앞서 정 씨는 지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삼성전자 LCD 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정 씨는 당시 근무 중 유해요인에 노출돼 자녀에게 차지증후군이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지난 2021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이는 '아버지 태아산재'로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한 최초 사례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자녀의 차지증후군은 아버지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은 점, △정 씨가 엔지니어로 일하며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점, △반도체 남성 노동자의 아이에게 선천성 심장질환 발생위험이 높은 점, △전자산업 남성 노동자의 아이에게 선천성 기형 발생위험이 높은 점 등을 이유로 정 씨의 업무와 아들의 질병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아버지인 정 씨가 태아산재법(산재보험법 제91조의 12)이 정한 "임신 중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산재 신청을 불승인했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의 비상식적인 판정이 내려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멍이 많은 태아산재법이 있다"며 "현재 태아산재법에는 어머니 태아산재만 규정돼 있고 아버지 태아산재는 규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업무상 재해가 맞는데도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일"이라며 "정 씨 자녀의 차지증후군이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은 만큼 아버지 태아산재도 태아산재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에 태아산재법의 "임신 중인 근로자"를 "근로자"로 바꾸는 법안이 이미 발의돼 있다는 점을 짚은 뒤 "국회는 올해 내에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태아산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노동자가 업무 중 유해인자에 노출돼 그 출생 자녀까지도 장해를 입었는데, 아빠라는 이유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아빠 태아산재 인정을 포함해 더 많은 태아산재 피해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개정안 통과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주영 의원도 "어머니 태아 산재가 인정되듯, 아버지 태아 산재가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음에도 아버지의 유해요인 노출이란 이유로 태아 산재가 인정되지 않는 불합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소급적용을 포함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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