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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능욕'하면서 과시하는 폭력, 100년 전에도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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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능욕'하면서 과시하는 폭력, 100년 전에도 포착됐다

[프레시안books] 김명임 외,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불특정다수의 여성들이 SNS의 프로필 사진을 내리는 일이 사회적 현상으로 보도된다. 8년 전 강남역에서 '밤거리를 돌려달라'며 싸우던 여성들이 이제는 온라인에서의 자유를 주제로 투쟁에 뛰어든다. "구조적 차별은 없"고 "여성가족부는 소임을 다 했다"는 나라에서. 백래시라는 개념을 이토록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 또 있을까?

딥페이크 범죄엔 특이점이 있다. 가해 행위가 가해자 집단 내에서 하나의 '놀이'가 되면서 폭발적으로 확산했다는 점이다. 불법 합성을 통한 '지인능욕' 범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능욕'의 기술이 쉽고 빨라지면서 형성된 특이점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낸' 여성들은 이제 이들에게 성착취의 자원이며, 재원이고, 소재가 된다.

여기엔 두 가지 축이 있다. 신기술과 여성혐오. 여성을 "능욕(욕보임)"해 개인의 욕망이나 집단 내 지위를 '성취'해낸다는 범죄의 목적이 '지인능욕'이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에서 이미 보여진 뿌리 깊은 여성혐오에 기인한다면, 이를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사회적 화두로 올려놓은 것은 혐오를 쉽고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신기술이다.

이 문제가 '이제야 터졌다'는 사실은 여성혐오가 더 이상 '팔리는' 뉴스가 되지 않는 세간을 반영한 듯하다.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정치권이 범죄의 두 축 중 '신기술'에 주로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여야정을 막론하고 '신기술의 위험성'이 화두에 올랐고, 여당의 대응 특위에는 과학기술 전문가 안철수 의원이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성별권력관계를 전제한 여성폭력범죄라는 한 축이 무시 당하니 대응의 와중엔 황당한 언설도 동반된다. "과잉규제"를 운운하는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발언은 그의 '안티페미' 정치행보에 따른 안타깝지만 당연한 결과였지만, 비슷한 우려가 여당 원내대표의 입에서도 반복되는 일은 참혹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한술 더 떠 본인의 시그니처 정책인 촉법소년 연령하향을 다시 꺼내기도 했다. 여성이 부재하고 젠더가 실종된 여성폭력범죄 '대응'의 한 장면이다.

딥페이크 범죄는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만의 신종 일탈일까? 하여 기술에 방점을 찍은 작금의 대응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 걸까? 안타깝지만 여성을 '능욕'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라고 믿는 무언가)를 내적으로 복원시키는 폭력이 이미 100년 전에도 포착된 바 있다.

▲김명임 외,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한겨레 출판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는 20년 전인 2005년 이미 초판을 낸 책이다. 1920년대 이른바 '모던걸', '신여성'들을 주제로 출간된 잡지 <신여성>을 연구해, "신여성이라고 불리던 일군의 여성들을 지금 여기로 다시 소환하는 것"을 목표로 책을 썼다고 저자들은 밝힌다.

잡지 <신여성>은 "여성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거듭나야 함을 부르짖으면서도 '밖'에 등장한 신여성을 끊임없이 비난"하는 매체였다. 저자들은 <신여성>이 신여성을 설명하는 이 시대 속에서 "사회의 이중적 잣대, 강력한 여성혐오, 노동 기회의 원천 봉쇄 등으로 신여성은 '밖'에 자리하지 못하고 점차 도시의 거리에서 사라져 갔다"고 설명한다.

'은파리'라는 가명의 필자가 세간의 '신여성'들을 미행하고,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 전하는 형식의 꼭지인 <은파리> 사례는 특히 인상적이다. 은파리가 전하는 신여성 이야기들은 그 진위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여성은 주로 외모를 가꾸고 사치, 허영, 연애, 불륜 생활을 하는 이들"이라는 은파리의 시선은 객관적인 자료가 되어 가상인지 실제인지도 모를 불특정다수의 여성들을 '공적으로' 모욕해냈다.

말하자면 <신여성>의 신여성 이야기들은 주로 남성인 필자들의 주로 여성인 소재를 활용한 사회비평 혹은 풍자를 빙자한 욕보임에 가까웠다. 가령 "반지로 사장에게 유혹을 당하거나", "거스름돈을 잘못 계산한 것이 빌미가 되어 상관에게 정조를 빼앗"기는, 그래서 마침내 "여성의 타락"을 보여주는 백화점 여점원에 대한 묘사는 이 같은 묘사를 갈구한 당대의 남성문화를 짐작케 한다.

이는 "남성이 자신과 다른 성적 타자에 대한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채택하는 전략"일 수도 있고, "권력 영역에서 배제된 식민지 피지배 남성에게 허용되었던 극소수 쾌락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의 남성들은 본인들을 긴장케 한 이 '불온한' 여성들을 "육체와 섹슈얼리티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남성의 조사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이다. 본인의 관점을 통해서 내적으로, 그리고 <신여성>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공적으로.

<신여성> 창간 100주년이 지나고 이 책이 출간 20년째를 맞은 지금, 저자들의 눈에 비친 사회는 여전하다. "1990년대 여성자살률 OECD 1위", "2020년 3월 한 달간 20대 여성 12만 명 실직", "독박 육아에서 독박 노인 돌봄으로 이어지는 K-장녀"가 현재에도 여전한 여성들의 현실이라고 저자들은 진단한다. 이들이 2005년의 책을 2024년 판으로 다시 찍은 이유다.

이는 또한 여성 없는 <신여성>의 시대를 읽으며 여성 없는 여성폭력 대응책이 논의되는 2024년의 풍경이 자연히 연상된 이유기도 하다. 최신 기술로 무장한 딥페이크 범죄는 100년 전 <신여성>의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신여성을 욕보이던 100년 전 남성 지식인들의 심리는 동료여성을, 교사나 상사나 친족인 여성들을, 혹은 감히 이 생태계를 공격한 여성 기자들을 욕보여 '성취감'을 느낀다는 이 시대 '신남성'들의 심리와 뭐가 얼마나 다른가. '기본프사'로 변경된 2024년 누군가의 프로필은 신여성들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간 뒤 남은 황망한 경성거리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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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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