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대란에 대한 정부 대응이 자꾸만 꼬이는 모양새다. 응급실 인력난 대응 차원에서 정부가 민간 병원에 투입한 군의관들의 근무 거부가 이어지는 데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설화(舌禍) 논란까지 맞물리면서 정부를 향한 국민 불신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 응급의학 회장 "응급병상 97.5% 운영? 숫자 조작이고 국민 기만")
박 차관은 6일 서울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최근 자신의 '환자가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 발언과 관련해 "동네 병의원이나 작은 기관의 응급실부터 방문해달라고 요청하려다 일반화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인터뷰 발언으로 여러분 걱정을 끼쳤는데, 당시에도 '환자 스스로 경증이나 중증을 판단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며 "과도한 일반화를 하는 바람에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4일 박 차관은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가 경증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 방문 시 내야 하는 본인부담금을 60%에서 90%로 인상하기로 한 방침과 관련해 '환자가 경증과 중증을 어떻게 판단하나'라는 질문에 "본인이 전화를 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경증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같은 날 성명에서 "망언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경·중증 판단은 의사들도 쉽지 않은 것으로, 실제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처음에는 경증으로 진단받았다가 추가 검사가 진행되면서 중증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도 5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박 차관의 발언에 대해 "일반인의 시각이고 의료인의 시각은 당연히 다르다"며 "응급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알고 봤더니 응급인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차관에 대한 문책론을 꺼내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차관 발언에 대해 "(환자 본인이) 전화를 못 할 정도면 결국 죽는 것 아닌가. 21세기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고위 관료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라며 "장관과 차관을 문책해야 한다"고 했다.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도 이날 YTN 라디오에서 "지금 같은 시기에 국민들이 불안해하는데 감정까지 폭발하게 만든 것"이라며 "사퇴든 해임이든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복지부의 응급 의료 대응 방침도 '의료 현장을 모르고 낸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복지부는 응급실 대체 인력이 시급한 것으로 알려진 아주대병원, 이대목동병원, 충북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강원대병원 등 집중관리대상 의료기관 5곳 군의관 15명을 보냈다.
그러나 아주대병원에서는 전날부터 마취과, 응급실 등에 배치된 군의관 3명이 "현장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날 근무를 중단했다. 세종충남대병원도 응급실 진료 지원을 위해 파견한 군의관들과 업무 범위를 논의한 결과, 군의관들을 기존 근무지로 돌려보낼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회장은 복지부의 군의관 투입 방안에 대해 "대세에 영향을 줄 상황은 아니"라며 "전문성이 필요하고 숙련도가 필요한데 이런 단기간에 비숙련 인원이 투입된다고 해서 지금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어렵다"고 비판한 바 있다.
군의관들의 복귀 사례가 잇따르며 대책의 실효성 논란이 빚어지는 데 대해 배경택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장에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을 지원하는 건 효과가 없지 않을 것"이라며 "응급실이든 배후 진료를 돕는 형태의 일을 하시든 현장에서는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는 구두 또는 부처 간 실무자 회의를 통해 가이드라인 없이 (군의관 민간 의료현장 파견이)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국방부와 협의해 제도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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