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6일,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특별법은 대규모 토건 사업이 거쳐야 하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줬고, 사전타당성도 간소화시켰다. 특별법이 통과된 후 3주 가량이 지난 3월 15일, 나를 비롯한 6명의 동지들은 여의도 민주당사의 입구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2층 카노피에서 '기후파괴당 민주당 가덕도신공항 철회'라는 플랭카드를 펼치며 시위를 벌여 모두 연행되었다. 이후 2년 넘게 8번에 걸친 재판 끝에 벌금형이 확정되었고, 두 동지는 항소를 하며 법정 투쟁을 이어가기도 했다.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단순하고 소박했다. 기후위기가 점점 심화되며 재난으로 인한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 정부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약속한 상황, 그리고 해외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비행기를 덜 타는 캠페인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특별법까지 만들어 신공항을 추진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행법을 어기게 되더라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특별법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더 많은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가덕도신공항을 둘러싼 논쟁은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지만, 이것이 본격화된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였다. 민주당의 가덕도 신공항 사랑은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던 전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가덕도를 방문해 신공항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데서도 나타났는데, 2021년 초 급하게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추진되었던 데에는 그해 4월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선거용 입법'의 성격이 다분했다.
부산 시장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민주당의 가덕도신공항 사랑은 계속되었다. 가덕도신공항을 동남권 핵심 사업으로 천명한 이재명 대표는 올초 신공항 의지를 보이기 위해 가덕도를 방문했다가 피습당하는 일을 겪었다. 민주당 탄소중립위원장이자 21대 국회에서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정호 의원은 '노무현의 꿈'이라며 가덕도 신공항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책까지 출판했다.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하는 전국의 시민들은 김해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찾아가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그는 아직도 가덕도 신공항의 개항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부산시장인 박형준에 의해서도 지지되어 왔다. 정부와 부산시에게는 2030부산월드엑스코 유치가 중요한 명분이 됐다. 하여 작년 3월에는 바다를 매립해 짓는, 난이도가 높은 가덕도 신공항을 단 5년 만에 초고속으로 건설하겠다는 '가덕도신공항 2029년 12월 개항 로드맵'까지 발표하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엑스포 유치가 실패하고 이제 더이상 명분도 없는 가덕도 신공항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세 차례에 걸쳐 신공항 부지조성 공사가 유찰이 되었지만 공사가 중단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와중에서도 가덕도신공항 반대의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국수봉을 잘라 바다에 매립해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에서부터 13조원이 넘어가는 막대한 공공재원이 들어가는 국책 사업에 대한 비용편익 계산, 가덕도라는 공간이 가진 입지 타당성, 열린 바다에 건설되는 신공항이 가진 안정성, 이미 많은 공항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공항이 건설되었을 경우 제대로 운영이 될 수 있을지, 즉 흑자운영을 할 수 있을지, 부산경제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제기 등 반대의 이유도 다양했다.
이 모두 다 중요하고 필요한 문제제기일 것이다. 또한 개인마다 반대 혹은 찬성하는 이유는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가덕도신공항 반대의 논리를 보면서 무언가 허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나와 동지들이 민주당사를 점거한 직접행동의 동기와 그 이후 진행된 신공항 반대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입으로는 기후위기를 말하는 정부가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로 행동을 감행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분노의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더많은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고, 이에 따른 불편함 혹은 아쉬움도 발견하게 되었다.
예컨대, 270미터에 달하는 국수봉을 깎아 바다에 매립하겠다는 계획이 그러했다. 이미 많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국수봉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굴참나무 등이 자생하는 100년 숲이 있는데, 이곳은 202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보전대상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100년 숲에는 대홍란과 팔색조, 긴꼬리딱새 등의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고, 그 주변 바닷가에는 역시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상괭이 등이 살아간다. 또한 가까운 낙동강하구 유역은 철새들의 도래지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시민들은 국수봉을 잘라내어 바다에 매립하는 것이 엄청난 생태파괴를 가져온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멸종위기종이 피해를 받는다고 '생태파괴'라 하는 것에 대해 어딘가 모를 불편함이 남았다. 멸종위기종이 위협받기 때문에 '생태파괴'를 말하는 것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남산의 3배 규모인 국수봉을 발파해서 바다에 매립하는 것이 어디 멸종위기종에만 위협이 되는지. 모든 숲과 들판은 무수한 생명들로 가득 차 있고, 이들은 섬세하고도 오묘하게 연결된 생태계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다. 산을 폭파시켜 바다에 매립하겠다는 계획은 멸종위기종만이 아니라 국수봉의 생태계를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며, 더 큰 생태계와 연결된 생태적 연결고리를 잘라 버리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도치 않게 멸종위기종과 멸종위기종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 사이에 위계를 설정했던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멸종위기종이 없었더라도 생태파괴를 외치며 반대했을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또하나의 사례는 가덕도신공항이 발표된 이후 드러난 가덕도 토지 소유 구조와 연결된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된 후 언론에는 가덕도 땅의 80% 가량이을 외지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당시 부산시장 후보였던 오거돈 일가가 가덕도 인근에 소유한 땅이 2만2000평 가량이 된다는 보도가 넘쳤다. 특별법 통과 직후 오거돈의 조카인 오치훈 대한제강 사장이 본인이 소유한 토지를 매입가의 5배로 '급매물'로 내놓은 것도 논란이 되었다. 주류 정치권은 '지역경제 활성화'나 '동남권 부흥'과 같은 구호 아래 신공항을 밀어붙였지만, 그 뒤로는 사익에 대한 고려가 없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을 암시해준다. 많은 가덕도 토박이들은 이런 개발 열풍에 밀려 억울하고 원통하게 지역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소유 구조에 너무나 익숙해진 탓일까, 우리는 가덕도신공항 반대를 외치면서도 자본주의적 체제로 인해 파괴되는 많은 민중의 일상적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나는 기후와 생태계, 생명 파괴를 비판해왔지만 이 '파괴'를 가능하게 한 근본 조건이나 전제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되레 정치권에서, 주류 언론에서 잡아주는 의제에 맞춰 반대 논리를 구축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게 나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얼마 전 열린 '가덕도신공항 건설 기본계획'에 관한 한 온라인 토론에서도 '이 세계를 지배하는 돈의 논리, 경제성의 논리, 제도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그 논리를 가지고 대응하려고 했던 건은 아닌가'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시청 앞에서 박형준 시장을 바라보며 외치는 것이 아니라 부산 시내 사람 많은 곳에 다니면서 더많은 시민들을 만나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공기 단축, 위험성, 비용이 아니라 애초 가덕도신공항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인식틀 자체를 허무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정말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고 더많은 시민들과 그 이야기를 하자는 제안으로 나는 이해했다. 많이 공감했다.
이런 문제제기는 단지 가덕도 신공항 반대운동에만 국한되는 건 아닐 것 같다. 사람과 자금이 부족한 현실에서 소수에 의존해 열심히 운동하고, 그러다 보면 사회적 연대를 위한 여유는 더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고립된 상황에서 내가 더 열심히 해야만 하는 운동의 현실이자 딜레마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동의는 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은 쉽게 극복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서 싸워서 크게 이득 볼 게 없다면, '저들의' 합리성과 논리가 아닌 '우리의' 합리성과 논리를 부여잡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부산의 경제가 어렵고 특히 젊은 충의 유출이 심각한 상황에서 '개발=발전'이라는 도식과 이에 기반한 비용편익분석 대신, 상호돌봄과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관계에 기반한 삶의 만족도에 초점 맞춘 '지역발전'의 새로운 비전을 그려보고 작은 공동체 수준에서 그 맹아를 만들어보는 노력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쉬운 일도 아닐 것이며 갑자기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끌어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반대를 넘어 대안을 품은 활동은 더많은 시민이 지금의 기후생태위기를 가져온 문제를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활동이 다른 사회운동과도 더 큰 연대로 묶일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