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대규모 통신정보 조회가 '사찰 논란'으로 확산된 가운데, 시민사회단체가 전기통신사업법 83조의 2 통지의무 시행 전인 2023년 9월경 수사가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검찰의 조회 건수는 현재까지 알려진 3000여 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적법한 절차에 따랐다'는 검찰의 해명에 대해선 "아전인수(我田引水)"라며 "수사기관은 수사과정에서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정보인권연구소·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는 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공동 긴급 기자설명회를 열고 검찰의 통신정보 조회를 '불법 사찰', '언론 감시'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검찰은 '사찰 논란'이 일자 통신조회 대상자들의 인적사항일 뿐이라고 해명자료를 냈지만 사실상 피의자 내지 참고인들이 언제, 누구와, 얼마나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인지를 파악한 것으로 '불법 사찰', '언론 감시'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 수사 명목으로 수집한 통신이용자정보 전체 현황은 확인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2024년 1월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 83조의 2 통지의무에 따라 조회대상이 된 이들에게 통지된 것인데, 관련 수사가 2023년 9월경 시작된 것을 고려할 때 법 시행 이전 조회된 조회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전기통신사업법 83조의 2는 수사기관의 장이 통신정보 조회 후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 해명, 법 허점 기술만 보여줄 뿐 수사의 정당성 제시 못해"
이날 참가자들은 검찰이 통신 조회의 적법성을 강조하는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은 통신 조회가 수사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으며, '통화기록 및 내역'이 아닌 '통신사 가입 정보'만 조회했다면서 "적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통신영장을 집행하여 분석을 실시한 것을 두고 '통신사찰'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악의적 왜곡"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한동대 교수)은 그러나 검찰이 "위법 수사"를 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검찰은 검사의 수사개시에 대한 지침(예규) 제7조제1항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 이상을 공통으로 하는 등 합리적 관련성이 있는 범죄의 경우' 직접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검사가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비공개 예규가 어떻게 강제적 처분을 포함한 검찰 수사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나"라며 "형사절차 법정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위헌, 위법한 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윤 대통령 1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수사를 위해, 언론인, 정치인 등 수천여 명의 통신이용자 정보를 무분별하게 조회하는 것이 과연 비례성을 갖춘 수사인가"라며 "이러한 저인망식 수사, 먼지털이 수사가 과연 명예훼손죄 수사에서 비례성을 갖춘 수사라고 검찰은 자신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수사비례의 원칙이란 수사의 목적달성에 적합해야 하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안에서만 해야 하고 목적과 그로 인한 법익 침해 사이에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유 부소장은 아울러 "개인의 휴대전화번호와 성명, ID 등은 보호되어야 할 메타데이터이고, 광범위하게 수집되어 분석될 경우, 사회관계망을 그려볼 수 있는 중요 정보"라며 "사법적 통제 없이 어떻게 관리되고 폐기되는지도 알 수 없는 검찰이 수집하여 관리하고 있다면 이는 정확히 사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윤 대통령이 과거 통신자료 조회를 사찰로 규정한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021년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 후보 부부와 국민의힘 의원 등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데 대해 "정치 사찰"이라고 규정한 뒤 "국회의원에 대한 사찰은 국민에 대한 사찰이기도 하다. 이런 식이라면 일반 국민도 사찰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공수처의 존폐를 검토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 부소장은 이어 통지 시점을 관련법에서 명시한 '30일'을 훨씬 넘긴 데 대해서 "통지시점의 경우 관련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고, 단순한 수사 관련자의 지인이라도 하더라도 이들에게 통신 수사 중인 사실과 수사목적이 알려지면 피의자 등에게 그 내용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증거인멸 등 공정한 사법절차의 진행을 방해할 우려 등의 사유가 있어 전기통신사업법의 규정에 따라 통지유예하였다가 법정 통지유예 시한에 맞추어 통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해당 수사의 내용과 목적을 검찰 스스로 노출하고서는 노출 가능성과 그에 따른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통지를 최장으로 유예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결국 "검찰의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의 적법성이 없는 위헌, 위법한 수사에 기초하고 있으며, 비례성을 상실한 무직위적이고 무분별한 수사이며, 단순조회를 넘어선 사찰이며, 유예 규정을 악용"했다며 "검찰의 해명은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데 기술만을 보여줄 뿐, 수사의 정당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메타 데이터, 사회적 네트워크 추정 가능한 중요 정보…수사기관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게 해야"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도 검찰의 해명은 두고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이 시민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빈약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 대표는 "통신이용자 정보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가입·해지 일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신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나아가 여러 사람의 통신 이용자 정보를 분석할 경우 사람들 간의 사회적 네트워크 관계(소셜 그래프)를 추정할 수 있"다면서 "언론인이나 정치인의 경우 통신 이용자 정보를 통해서 취재원, 제보자, 내부고발자 등 엄격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의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오 대표는 "검찰은 당사자들에게 (뒤늦게나마) 통신 이용자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통지하였으며, 이를 통해 과거에는 (스스로 통신사에 열람청구를 하기 전에는) 전혀 인지할 수 없었던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에 따른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정보) '사용목적'에 '수사'라고 기재한 것은 매우 당연하며 중언부언적인 정보"이기 때문에 현행 통지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대표는 또한 검찰의 '늑장 통지'와 관련해 "진정으로 통지를 유예할 필요가 있는지 법원 등 제3자 기관의 감독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은진 민변 변호사는 "'메타 데이터'에 대한 보호는 우리의 권리이자 수사기관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권리"라며 통신 이용자 정보 무단수집의 근절 방안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애초에 수사기관 등의 자의적인 통신이용자정보 제공요청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국회에 △법원에 의한 사전적 통제장치 마련, △통신이용자정보제공에 대한 정기적이고 의무적인 감시․감독, △수사기관의 통신이용자정보 수집의 적정성 평가제도 마련, △정보주체 권리의 보장을 위한 구제책 마련 및 수사기관 등의 책임성 확보, △현행 사후통지유예에 대한 보다 엄격한 법률적, 제도적 통제 등 통신 이용자 정보 무단 수집 근절 방안 논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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