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숙소에서 숨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외부 발사체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는 숙소 내부 폭발을 원인으로 지목한 서방 언론 보도와는 상반되는 발표다. 하니예 살해 뒤 이란이 보복을 천명하고 가자지구 휴전 전망도 멀어진 가운데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 휴전 관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헛소리 그만 하라"며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란 <IRNA> 통신에 따르면 3일 혁명수비대는 하니예가 이스라엘 정권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하니예의 숙소 밖에서 발사된 해당 발사체엔 7킬로그램가량의 탄두가 장착돼 있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혁명수비대는 "이번 테러 공격은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이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범죄적인 미국 정부가 도왔다"고 주장하며 "적당한 때와 장소에서 가혹한 처벌과 단호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스라엘은 하니예 암살과 관련해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이란이 밝힌 하니예 암살 방법은 숙소에 미리 설치된 폭발물이 내부에서 폭발했다는 서방 언론의 보도와는 상이한 것이다. 2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이란 보안 요원을 고용해 테헤란 북부 혁명수비대 귀빈 숙소 내 하니예가 머물 가능성이 있는 방 3곳에 하니예 도착 전 이미 폭발물을 설치한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스라엘의 당초 계획은 지난 5월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한 하니예를 제거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군중 밀집으로 작전이 철회됐고 대신 이란 요원 두 명을 고용해 숙소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쪽으로 작전이 변경됐다고 두 명의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설명했다. 이 당국자들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해당 요원들이 숙소의 여러 방에 은밀히 드나드는 것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텔레그래프>는 혁명수비대 내부 관계자가 "모사드가 (고위 관리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안사르 알마흐디 경호 부대 요원들을 고용한 것이 확실하다"며 "추가 조사 결과 다른 두 개의 방에서 폭발물이 발견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일 미 <뉴욕타임스>(NYT)도 이란 당국자 2명을 포함해 7명의 중동 당국자들과 미국 당국자 1명을 인용해 하니예를 죽인 폭탄이 이미 2달 전 숙소에 장치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란과 하마스가 하니예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한 가운데 신문은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미 당국자들도 이 같은 평가를 내렸다고 전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으로 경비가 삼엄해진 상황에서 이뤄진 하니예 암살은 이란 당국에 굴욕을 안겼다는 평가다. 3일 <뉴욕타임스>는 관련해 고위 정보 당국자, 군 당국자 및 하니예가 살해된 숙소 직원 등 2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조사에 정통한 두 이란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에 의한 헤즈볼라 수장 오른팔 푸아드 슈크르 살해, 하니예 암살이 연달아 발생하며 이란과 헤즈볼라가 보복을 천명한 가운데 각국은 레바논 내 자국민들에게 대피를 촉구했다. 베이루트 주재 미 대사관은 3일 성명을 내 미국인들이 "이용 가능한 모든 항공권을 예약"해 레바논을 떠날 것을 권고했다. 대사관은 귀국 자금이 부족할 경우 대사관에 "대출"을 요청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30일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무장관도 레바논에 머무는 영국인들에게 레바논을 떠날 것을 촉구했다.
3일 미 매체 <악시오스>는 미국과 이스라엘 당국자 3명을 인용해 이르면 5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 공격을 단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이날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 마이클 에릭 쿠릴라 사령관이 중동에 도착했다고 미 당국자 2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매체는 쿠릴라 사령관이 최근 하니예 암살로 인한 긴장 고조에 대응해 지난 4월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습했을 때와 같이 이 지역 및 국제 동맹을 동원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이번 방문 자체는 최근 긴장 고조 이전에 계획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현지 채널12 방송의 3일 보도를 인용, 지난 1일 하니예 암살 관련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헛소리 그만 하라(stop bullshitting me)"며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 발언이 네타냐후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 휴전 협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 뒤 나왔다고 설명했다. 3일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해당 통화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하니예 사망이 하마스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해 결과적으로 휴전 협상 타결을 앞당길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해당 통화에서 하니예 암살의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지적했다고 <NYT>가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일 기자들에게 하니예 암살이 휴전 협상 타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고 "(협상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답한 바 있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해당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미국) 대통령을 쉽게 보지 말라(Don’t take the president for granted)"고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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