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의 기본소득 실험 결과
챗GPT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는 샘 올트먼이 3년 간 진행한 대규모 기본소득 실험 결과를 발표 했다. 2017년부터 2년간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한 핀란드 사례 이후에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과거에 실시되었던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여러 면에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규모 사회실험을 실시할 수 있는 국가의 기능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한편 하나의 기업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3년여간 실시했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생각할꺼리를 더 던져주었다.
오프리서치(OpenResearch)라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진행된 샘 올트먼의 기본소득 실험은 2020년 1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미국의 텍사스와 일리노이 주의 21~40세 저소득층 3000명을 그 대상으로 하였다. 실험군 1000명에게는 매월 1000달러를 주었고 그 외의 대조군 2000명에게는 50달러만 지급하였다. 대조군 2000명에게 50달러를 지급한 이유는 실험에서 나타날 수 있는 플라시보 효과를 제거하기 위함이었고, 이런 부분만 보더라도 과거에 실시되었던 기본소득 실험에 비해서 진일보한 설계로 느껴졌다. 소액 이라도 기본소득으로 지급했을 때 대소군에 속한 사람 역시 내가 지금 기본소득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 분석에 있어서 실험군과 대조군 모두에서 '내가 지금 큰 규모의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의 문제를 동일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인 것이다.
해당 실험의 결과는 흥미롭다. 매월 1000달러를 아무 댓가나 조건 없이 지급받은 실험군은 평균적으로 월 310달러를 더 지출했다. 주로 지출한 내역은 식품과 주거, 교통비 였다. 건강 관련 지출도 늘었다. 의료 지출이 월 20달러 늘었다. 한편 음주와 진통제 오용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과 방문 확률 역시 10% 정도 늘었다. 다른 사람을 돕는데 월 22달러를 더 지출했다는 결과도 있었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노동의욕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나태해 질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는 어떠한 결과를 보였을까? 실험군에서 나타난 결과는 평균적으로 주당 1.3시간 정도 덜 일했고, 이는 연간 8일 정도 덜 일하는 셈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한편 구직 활동은 10% 증가하였고 이는 기본소득으로써 삶의 안정감이 생기니 더 나은 직장을 구하려는 욕구가 커진 것으로 해석되었다.
공통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로
어떤 실험이나 조사이건 간에 완벽한 것은 없다.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와 완벽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특히 인간을 그 재료로 하는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조금씩 나아지게 하는 것에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고, 그 결과 역시 다양한 변수와의 관계 속에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마치 사회가 금방이라도 병들고 망할 것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인식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공짜 돈이 주어졌을 때 인간은 나태해지고 자기 삶을 방임하여 결국 사회 전체로 확대 시킬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정답을 찾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 실험과 같은 대규모의 사회실험에서 그러한 불안감을 완화시켜줄 만한 나름의 실증근거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험결과에서 나타나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1000달러를 가치있게 쓰고자 노력하였다. 생활필수품에 대한 지출이 늘었고,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지출이 늘었다. 공짜 돈이 주어진다고 해서 흥청망청 쓰는 것은 계획되지 않은 일회성 당첨금일 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까? (가능하다면 다음 실험에서는 이런 부분도 고려해보면 어떨지) 보다 확장하여 보면 우리는 조금씩 나아지고자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최소한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제 몫을 해내려는 보편적인 수준의 사회화, 그리고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무리 안에서 도태되는 것을 바라고 일부러 그렇게 되려는 존재는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한편, 한국사회에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또는 다른 가치와 지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점점 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전히 치열하게 경쟁적인 시장 중심의 문화와 그것을 부채질하는 높은 물가, 무엇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비교의식 등등 많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고 타인을 향한 관용과 배려에서 멀어지게 한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다 같이 잘 사는 것에 대한 지향과 가치는 일상의 언어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원자화 된 개인들의 자기생존을 위한 목소리가 가장 당위적인 것으로 힘을 얻고 있다.
더 높은 성장, 발전은 '적당히'가 없다. 어디가 목적지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그냥 직진하게 만든다. 주변 풍경이나 대열의 낙오자는 없는지 살펴볼 겨를도 없이 맹목적으로 열심히 달려가게 만든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할지 말해주는 사람 없이 다툼과 반목의 뉴스 속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써 공통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현실이다. 정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하는 상속세 감세, 노동현실에 대한 외면 등 사회적 응집력이 떨어질 것이 불보듯 뻔한 현 시국에서, 한국사회를 단단하게 묶어줄 공통의 가치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기본소득 실험과 같은 다양한 사회실험과 숙의에 기반한 토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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