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이하 현지시간)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횃불을 넘긴다"며 대선 후보직 사퇴 이유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 새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을 향한 막말 공세로 포문을 열었고 해리스 부통령은 임신중지권을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 정책을 비판했다. 이날 공개된 새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오차범위 내에서 추격했다.
24일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한 연설에서 "나는 앞으로 나아갈 가장 좋은 길이 새로운 세대에 횃불을 넘겨주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통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후보 사퇴 이유를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새로운 목소리, 신선한 목소리, 젊은 목소리를 위한 시간과 장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지금" 그러한 시간과 장소를 위해 후보직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이 직무를 존경하지만 내 나라를 더 사랑한다"며 "우리 민주주의를 구하는 데 내 개인적 야망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방해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뒤를 이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실시 되는 해리스 부통령이 "경험이 많고 강하고 능력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미국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후퇴, 희망과 증오, 통합과 분열"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50년 이상 이 나라에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영광이었다"며 "앞으로 6달간 대통령으로서의 내 직무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가족을 위해 비용을 낮추고 경제를 성장시키고 투표권부터 선택할 권리까지 개인의 자유와 시민권을 계속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포기 의사를 밝힌 직후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바이든이 즉시 대통령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선거운동에서 자유로워진 바이든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가자지구 전쟁 등 외교 정책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문은 바이든 대통령 중재로 가자지구 휴전 협정이 성사된다면 해리스 부통령이 유세 과정에서 이 문제를 피할 수 있다고 짚었다.
퇴임이 확실해진 바이든 대통령의 세계 지도자들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겠지만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인 리처드 하스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대선에서 패할 것으로 예상되며 바이든 대통령 영향력이 이미 약해진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카멀라 해리스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이며 11월 선거 결과가 갑자기 덜 확실해 보인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했던 많은 것들을 무효로 만들 사람이 아니라 그와 대체로 일치하는 사람이 후임이 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에 (후보 사퇴 결정 뒤) 바이든 대통령 영향력은 더 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알아듣기 힘들고 매우 나빴다"며 "사기꾼 조 바이든과 거짓말쟁이 카멀라 해리스는 미국의 큰 골칫덩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해리스 부통령이 상대가 될 것이 확실해진 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행한 첫 연설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막말을 쏟아냈다. <AP>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4일 유세에서 "이제 우리에겐 패배시킬 새로운 희생양이 생겼다. 거짓말쟁이 카멀라 해리스"라며 해리스를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극좌 부통령"으로 칭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이 "급진 좌파 미치광이"이며 임신중지와 이민에 관한 해리스 부통령의 입장은 "미쳤다"고 표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유세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잘못 발음했는데 통신은 이는 흑인·남아시아계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을 비하하는 접근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공화당 지도부는 역풍을 우려해 당원들에게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인종차별적 혹은 성차별적 공격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반면 이날 흑인 여성 주최 행사에 참석한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 쪽 정책 비판에 집중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24일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흑인 여성 대학생 단체 '제타 파이 베타' 주최 행사 연설에서 보수 싱크탱크와 트럼프 정부 당시 당국자들이 만든 트럼프 2기 정책 제안 '프로젝트 2025'를 "미국을 어두운 과거로 되돌리려는 계획"이라며 비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프로젝트 2025가 고령층을 위한 공공의료보험(메디케어)을 축소하고 저소득층 어린이 지원 프로그램(헤드 스타트)을 폐지하려 하는 "어린이, 가족, 미래에 대한 노골적 공격"이라고 몰아붙였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재생산의 자유를 보호하겠다며 "도널드 트럼프가 로 대 웨이드 판결(임신중지권 보호 판결)을 뒤집기 위해 대통령 재임 당시 연방대법원 대법관 3명을 신중히 임명했다"고 공격했다. 그는 "내가 미국 대통령이 돼 의회가 이러한 자유를 되돌리는 법을 통과시키면 그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공격용 무기 금지 등을 통해 총기 폭력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공개된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앞선다는 로이터·입소스 공동 여론조사에 이어 24일 공개된 CNN과 여론조사기관 SSRS 공동 조사에서도 해리스 대통령에 고무적인 결과가 나왔다. 지난 22~23일 등록 유권자 1631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CNN·SSRS 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은 46%를 기록해 오차 범위(±3%포인트) 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49%)을 바짝 추격했다. 4월과 6월에 수행된 같은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43%)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49%)에 6%p 못 미쳤다.
특히 흑인·히스패닉·여성 유권자 등 해리스 부통령으로 인한 상승 효과가 기대된 집단에서 지지율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CNN은 앞선 4월 및 6월 조사에서 흑인 유권자 70%가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했고 23%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이번 조사에선 78%가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밝혔고 15%만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짚었다.
히스패닉 유권자의 경우 이전 조사에선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41%)이 트럼프 전 대통령(50%)에 뒤졌지만 이번 조사에선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47%)이 트럼프 전 대통령(45%)에 앞섰다. 앞선 조사에서 46% 동률이었던 여성 지지율도 해리스 부통령이 50%로 앞섰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46%에 머물렀다.
CNN에 따르면 이전 조사에서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유권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47%)을 바이든 대통령(37%)보다 더 지지하는 경향이 컸지만 이번 조사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46%)과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43%) 사이 격차가 줄었다.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 및 민주당 성향 유권자의 대다수(76%)가 민주당이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지명해야 한다고 답했고 전체 등록 유권자의 87%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를 지지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지층 확장을 위해 백인 남성이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CNN·SSRS 조사에선 민주당 및 민주당 성향 유권자의 24%만이 남성을 부통령을 선정하는 것이 극도로, 혹은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고 절반 이상(54%)은 부통령 후보가 남성인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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