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 재임 이후 서울시는 2022년 8월 서울혁신센터에 서울혁신파크 운영 종료를 통보했다. 그해 12월 60층 규모 빌딩, 대형 쇼핑몰 등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는 상업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입주단체들을 쫓아냈다. 그리고 올해 8월부터 혁신파크 일부 철거가 예정되어 있다. 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파크 개발 문제와 투쟁을 알리는 기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여기 우체국이 어디 갔어요?"
어느 날 무거운 짐을 들고 있던 할머니가 카페 쓸을 운영하며 서울혁신파크를 지키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혁신파크 '참여동' 안에 있던 우체국은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바로 이전했다. 한참이 지났지만, 이전 소식을 모르는 주민들이 자주 헛걸음을 하시곤 한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젠 우체국이 없다고 말하면서 마음이 씁쓸했다.
2022년 12월, 서울시는 혁신파크를 민간 자본을 통해 60층 높이의 랜드마크와 공공형 주거단지, 대형 문화 복합 쇼핑몰 등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 12월 31일 운영을 종료한 서울혁신파크는 단 3개의 입주단체를 제외하고 서울시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모두 퇴거했다.
공공의 공간이자 서울 서부권 내의 녹지공원인 혁신파크, 그리고 현재 혁신파크 내에서 주민들과 유일한 소통의 거점 역할을 하는 마지막 입주단체 '카페 쓸'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간이며, 사람이며 다 부수고 바꾸고 할 것인가? 시민들은 울화통이 터진다.
동네 사람들과 생태적 생활방식 지향하는 '카페 쓸'
카페 쓸은 2021년 11월 서울혁신파크 안에서 제로웨이스트(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활동), 비건(육식을 하지 않는 활동), 퍼머컬쳐(지속가능한 농업) 등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생태적 생활방식을 지향하며 운영을 시작했다.
쓸이 입주한 건물은 비전화공방의 제작자 24명이 시도한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비전화 건축'의 결과물이다. 나무와 흙, 볏짚으로 만들어진 서울에서 만나기 힘든 생태적 건물이다. 이 건물은 태생적으로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공간이었다. 아름다운 공간이 2년 가까이 닫혀 거미줄만 가득한 것이 안타까워 코로나19가 시작했을 무렵이었지만 무리해서 공간의 문을 열었다.
손님들에게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대여해드리며 자연스레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회용 티슈 대신 손수건을, 일회용 빨대 대신 다회용 빨대를 사용했다. 모든 음료와 디저트는 비건으로 우유, 버터, 계란을 쓰지 않았다. 대신 두유, 현미유, 우리밀, 유기농 식재료 등을 사용하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허브나 열매를 활용해 식음료를 만들었다. 카페에서 나온 음식물쓰레기는 퇴비로 만들어 다시 화단으로 돌려보냈다. 쓸 앞의 텃밭은 동네 이웃들과 '씨앗모임'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씨앗을 심고, 물도 주고, 퇴비도 주면서 씨앗이 자라나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순환 과정도 함께 해오고 있었다.
쓸은 강아지와 고양이,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과 퀴어 등 모두를 환영한다. 사업의 타겟팅(Targeting)이 되는 특정 대상이 없다. 그야말로 플라스틱을 제외한 모든 존재를 환영한다.
처음에 손님들은 낯설어했다. 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설명해내기 힘들었다. 손님들은 서서히 뜻과 취지를 이해하고 어색하던 텀블러도, 두유도 모두 적응하기 시작했다. 친구나 가족들과 같이 와서 "우리 동네에 이런 가치를 품은 카페가 있다"고 공유했고, 이를 보며 나는 뿌듯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행복한 순간이 매우 많은데, 강아지와 어린이와 친구들이 한자리에서 둘러 앉아 오손도손 시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쫓겨날 위기의 '카페 쓸'
코로나 시기를 어렵게 보내고, 2022년 11월 공간 재계약을 했다. 다음 달 서울시는 상업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퇴거 명령을 내렸다. 철거부터 시작한다는 소리에 평화롭던 혁신파크를 난도질하는 그림이 그려지자 두렵기 시작했다. 개발에 밀려 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공공의 공간으로서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은평시민모임)'과 함께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300여개 단체는 퇴거당했고, 현재 쓸을 비롯해 3개 단체만이 퇴거조치에 불응해 남아 있다.
현재 쓸은 상업 개발로 의미가 있는 공간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공간을 계속 지키고 있다.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으며 버티고 있으니, 서울시 공무원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것이 일상이다. 서울시는 가게 앞 텃밭에 작물을 키우지 못하게 하며, 지자체와 협력사업도 방해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 11월부터 공간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변상금을 물리고, 개발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 게시에 벌금을 부과하는 등 돈으로 협박하고 있다. 우리는 매달 변상금을 물게 되면서 예전에 냈던 공간 사용료보다도 높은 비용을 매달 서울시에 지불하고 있다. 영업시간을 늘리고 휴일도 없이 예전보다 더 긴 시간 일하며 그 부담을 버텨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혁신파크에 입주하고 이용하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이 공간을 지켜내는 일은 외롭기도 하고 버겁다.
서울시는 퇴거하지 않는 단체들에게 무단점거자에 대한 권리 인도를 구하는 명도소송을 걸었다. 패소하게 되면 영업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변상금과 소송비 등을 감당해야 한다. 결국 모두 철거돼 사라지면 더 이상 이 공간에서 다양하고 소중한 존재들을 마주할 수 없게 된다. 쓸 영업으로 하고 있는 생계 또한 문제가 생긴다.
시는 임대인을 무작정 쫓아내는 데 급급하다. 자영업자나 임대인 보호 등은 여기에선 통하지 않는다.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계약갱신요구권 등 임대인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 서울혁신파크 내 공간 계약은 서울혁신센터가 평가해 재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동행계약'으로 되어 있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틀에서 빗겨나 있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있고 싶은 '카페 쓸'
입주단체들을 쫓아낸 서울혁신파크 공간에는 은평구 시설관리공간이 들어왔다. 추후 응암지구대, 은평세무서가 들어올 예정이다. 이 공공기관들도 2년 정도만 임시로 있는 것이고 또 자리를 옮겨야 한다. 입주단체는 갑작스럽게 퇴거를 해야 했는데 그 자리에 공공기관이 들어오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차별적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장애인 치과,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던 대안학교, 사회운동을 하던 시민사회단체 등 이웃이었던 많은 입주단체들이 생각났다.
쓸은 동네에서 비건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어서, 가게 운영만으로도 그 가치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었다.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가치는 주민들과의 다른 관계도 만들었다. 손님과 이야기 나누던 소소한 일상도 즐겁다.
언제 쓸이 철거가 될지 몰라 불안하다. 하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동네 이웃과 활동가들, 아티스트들이 마음을 모아 카페 쓸 공간으로 사람들을 계속 초대하며 서울시에 맞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카페 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춤을 추지> 카페 쓸 포에버 파티를 했다.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고 비건 음식을 먹으면서, 파티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쓸과 혁신파크의 싸움을 알렸다.
지난 24일 명도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서울시의 편을 들어주었다. 결과를 알고 난 후 마음이 착잡하다. 하지만 쓸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는 28~29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춤을 추지> 라는 세 번째 파티가 열린다. 파티에 오셔서 모두를 위한 공간을 같이 상상하고, 쓸 투쟁에 응원하는 말을 많이 나눠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서울시 상업 개발에 맞선 쓸의 투쟁에 함께 마음을 모아주기를 소망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춤을 추지> 쓸 포에버 파티 ver.3 티켓신청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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