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경쟁자들이 잇달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과반 지지도 확보됐다는 조사가 나오며 해리스 부통령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 후보 사퇴 하루 만에 빠르게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22일(이하 현지시간) 연설에서 자신의 검사 경력을 강조하며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유형을 잘 안다"고 일격을 날렸다.
<AP> 통신은 이날 민주당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자체 설문조사 결과 2668명의 대의원이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는 대의원 과반(1976명)을 훌쩍 넘긴 수치로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지명되기에 충분한 대의원 지지라고 통신은 설명했다.
해리스 부통령 역시 이날 늦은 오후 성명을 통해 후보 지명을 위한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를 확정할 민주당의 공식 온라인 대의원 투표는 다음달 7일 전에 치러질 예정이다.
유력 대체 후보로 거론되던 대다수 후보들이 재빨리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후임 후보가 거의 확정되는 분위기다. 21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조지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미 교통장관에 이어 22일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도 소셜미디어(SNS) 성명을 통해 "미국 대통령으로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민주당 중진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다. 미 ABC 방송을 보면 22일 펠로시 전 의장은 성명을 통해 "카멀라 해리스는 정치계 여성으로서 매우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우리를 11월에 승리로 이끌 것을 확신한다"며 "카멀라 해리스를 대통령으로 공식적, 개인적, 정치적으로 열정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해리스 부통령이 "일하는 가족을 위한 투사"로 "특히 여성의 선택권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 왔다고 소개했다.
22일 델라웨어주 윌밍턴 선대본부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직을 내려놓은 이후 첫 연설에 나선 해리스 부통령은 검사였던 자신과 다수의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조하며 포문을 열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검사로서) 나는 모든 종류의 가해자들을 상대했다. 여성을 학대하는 범죄자, 소비자를 속이는 사기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규칙을 깨는 협잡꾼들"이라며 "그러니 내가 '나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유형을 잘 안다'고 말할 때 귀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바이든에 가했던 고령 공격의 부메랑을 고스란히 맞게 된 트럼프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민주당에 유리한 의제로 특히 해리스 부통령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임신중지권을 강조하며 "정부가 여성에게 자신의 몸을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또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이 대기업에 세금 감면을 제공하고 사회보장을 위태롭게 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이는 번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불평등과 경제적 부정의로 이어진다. 우리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지난주부터 자택에서 근무 중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전화를 통한 선대본부 연설에서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다. 카멀라와 함께 선거운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내게 줬던 모든 마음과 영혼을 카멀라에게 줬으면 좋겠다"며 다시 한 번 지지의사를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진 해리스 부통령 연설 도중 아직 연결된 전화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며 깜짝 등장해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3일 백악관으로 복귀한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했던 고령 공격의 부메랑을 고스란히 맞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 후보 사퇴로 78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선 후보가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 바이든 대통령 후보 사퇴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이와 건강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건강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전 대통령 주치의가 공개한 서한엔 구체적 검사 결과 없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훌륭"하고 인지 능력이 "뛰어나다"고만 돼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3일 귀에 총을 맞은 뒤에도 구체적 검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 인지 검사를 제안하며 자신은 검사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고 자랑한 바 있지만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막상 인지 검사 결과를 공개한 적은 없으며 2018년 이후 해당 검사를 치렀는지조차 불투명하다고 짚었다. 이 인지 검사를 만든 신경학자 지아드 나스레딘은 앞서 신문에 6년 전 검사는 너무 오래돼 의미가 없고 트럼프 나이대에선 매년 인지 검사를 받고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리카계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출신 어머니를 둔 해리스 부통령이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빼앗기고 있는 흑인 지지를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22일 <워싱턴포스트>는 전날 바이든 대통령 후보 사퇴 발표 뒤 순식간에 조직된 흑인 여성 주도 화상 통화에서 3시간 만에 150만 달러(한화 약 21억 원)가 모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4만 4000명이 연결된 화상 통화를 연결한 흑인 여성 주도 단체 '흑인 여성과 함께 승리(Win With Black Women)' 창립 회원 중 하나인 스타 존스는 100일 간 100만 달러 모금이 목표였는데 "100분에 100만 달러가 모였다"고 밝혔다. 신문은 21일 저녁 이후에도 모금이 이어져 22일 오후 1시30분 기준 이 단체가 1만 3000명 기부자로부터 16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전했다.
다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리디아 폴그린은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 가능성을 보여 준다면 "흑인 여성과 나이든 흑인 남성"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흑인 대중문화에서 흑인 여성을 겨냥한 혐오가 심각하다는 점 등을 들어 해리스 부통령이 젊은 흑인 남성의 지지를 얻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봤다.
후보직을 둔 혼란으로 나타난 선거 자금 경색도 풀릴 기미가 보인다. 22일 <로이터> 통신은 민주당의 주요 자금줄인 헐리우드에서 배우, 프로듀서 등 주요 모금 조성자들이 복귀하며 민주당 기부 중지 운동 "뎀바고(Dembargo)"가 해제됐다고 보도했다. 드라마 <로스트> 제작자 데이먼 린델로프는 소셜미디어에 "더 말할 것도 없이, 뎀바고가 해제됐다. 가자!"라고 적었다.
22일 <뉴욕타임스>는 해리스 선거 캠프가 해리스 부통령 출마 선언 24시간 만에 8100만 달러(한화 약 1123억 원)를 모금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여론조사도 일단 출발은 나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 후보 사퇴 당일인 21일부터 22일까지 수행된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45%)은 트럼프 전 대통령(47%)에 2%포인트(p) 격차로 뒤지고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 후보 사퇴 전 조사에서의 격차인 6%p보단 개선됐다.
부통령 후보에도 관심…베셔·샤피로 등 '백인 남성' 유력
해리스 부통령으로 대통령 후보가 빠르게 정리되고 있는 가운데 부통령 후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확장성을 고려할 때 백인 남성 정치인이 지목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인 가운데 관련해 대담을 나눈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4명은 유력 부통령 후보로 앤디 베셔 켄터키 주지사, 샤피로 주지사,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등을 꼽았다.
특히 대담에서 미셸 골드버그는 베셔 주지사가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 맞춤 저격수라고 강조했다. 골드버그는 22일 미 MSNBC 방송에 출연한 베셔 주지사가 밴스 의원이 애팔래치아 산맥이 지나가는 "여기(켄터키) 출신이 아니다"라며 산악지대 주민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담긴 표현인 '힐빌리' 정체성을 강조하지만, 실은 오하이오주 도시에서 자란 밴스 의원에 이미 선제공격을 했다고 봤다.
베셔 주지사는 MSNBC에서 밴스 의원은 오히려 켄터키 주민들을 "게으르다"고 모욕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밴스 의원이 "강간에 의한 임신을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틀린 것"이라며 "그는 여성을 학대적 관계에 머무르도록 제안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밴스 의원은 2021년 한 인터뷰에서 임신중지권 관련 강간과 근친상간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도 아이를 강제로 낳아야 하냐는 질문을 받고 문제는 "여성이 아이를 강제로 낳아야 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는 환경이 다소 불편하거나 사회에 문제가 되더라도 아이를 살도록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샤피로 주지사가 남성·경합주 정치인으로서 강점을 갖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칼럼니스트 로스 더우셋 역시 샤피로 주지사가 가장 인상적인 민주당 온건파 정치인으로 우파 성향 유권자들에 소구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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