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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이들을 위하여

[인권으로 읽는 세상] 최저임금 적용 확대 늦출 수 없다

지난 12일, 2025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주 40시간 근무하는 월급 기준으로는 209만6270원이다. 언론에서는 '최저임금 1만 원 시대'가 열렸다며 떠들썩하지만 먹거리 물가와 가스·교통 등 공공요금이 계속해서 오르는 상황에서 생활 안정을 보장할 수 없는 액수다. 그런데 이처럼 최저임금이 '액수'의 문제로 세상에 전해지며 우리가 보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이를 역행하는 '차등 적용'

최저임금은 일하며 먹고 사는 누구나 존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저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최저선', 즉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적정임금'을 얼마로 정할 거냐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바로 '누구나'다. 최저임금은 항상 '보편성'을 담보하기 위한 길로 나아왔다. 1988년 시행 당시 '10인 이상 제조업'에 한정되어 적용된 최저임금이 1990년에는 '전 산업'으로, 2000년에는 '1인 이상'으로 적용이 확대됐다. 경비노동자들은 감시·단속 업무가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 아래 감액 적용을 받다가, 2015년 최저임금 100% 적용의 길을 열었다.

'차등 적용'은 '모든 노동자의 권리'라는 최저임금의 기본 원칙을 흔든다. 매년 최저임금 심의 때마다 경영계는 음식점·편의점·택시운송업과 같은 업종, 5인 미만과 같은 사업장 규모 등 지불능력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언뜻 보면 노동자에게 직접 임금을 주는 사업장의 여력을 살피자는 듯 보이지만, 핵심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영역을 만드는 데 있다. 올해 최저임금위 사용자위원 중 한 명이 차등 적용을 피력하며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면 주부와 여성들의 고용이 늘지 않겠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는 차등 적용이 여성과 같이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겨냥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경영계뿐 아니라 정부, 국회에서도 최저임금 심의와 무관하게 '차별'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월 100만 원'을 주자던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올해 4월에는 외국인 유학생 및 결혼이민자 가족에게 '최저임금 미만 취업'을 허용하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2008년에 이미 부결되었던 '고령자 최저임금 감액적용'은 올해 2월 윤기섭 서울시의원 등의 주도 하에 또 다시 발의되었다. 여성, 이주노동자, 노인이 일을 '못하는', 혹은 돈이 '덜 필요한' 사람처럼 여겨지게 한 사회적 편견을 폐기하기는 커녕 이를 활용하여 더욱 열악한 노동 조건에 이들을 고착화시키려는 시도다. 그러나 어느 누구라도 최저임금으로부터 배제되는 순간, 누구든 유사한 이유로 배제될 수 있다. 최저임금이라는 권리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차등을 두려는 시도가 멈춰져야 하는 이유다.

최저임금의 셈법이 모든 노동을 담지 못할 때

최저임금의 적용 대상을 좁히려는 시도와 흐름이 이어지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마주한 큰 문제는 오히려 최저임금의 적용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법 체계 하에서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한 자본의 꼼수로 새로운 계약 형태가 발명돼왔다. 라이더, 화물기사, 웹툰 작가와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플랫폼 종사자 등이 등장한 배경이다. 이들의 노동 형태는 천차만별이지만 '일감'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라이더는 배달 건당 배달료를, 웹툰 작가는 연재 분량 기준 원고료를 받는 식이다.

그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법 5조 1항(최저임금액)에 따라 "시간급"으로 결정되고 표기돼왔다. 그러니 일감을 기준으로 임금이 정해지는 이들에겐 자신의 임금이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할 사회적 기준 이상인지 감각하거나 확인할 도리가 없다. 이는 단지 액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웹툰 작가가 작품을 내기 위해 어떤 수고를 기울이며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가 임금과 무관해진다. 노동시간에는 상한선이 없고, 임금에는 하한선이 없는 셈이다. 라이더는 회사가 건당 기본 배달료를 낮추는 상황에서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게 된다. 언제 또 다시 일감이 구해질지 불확실한 '고용 불안정'은 일감 경쟁과 N잡(다중취업)으로 이어져 노동자를 혹사시킨다.

'적용확대'를 향한 큰 걸음의 시작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근로자위원들은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등 최저임금제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최저임금법은 이미 그 제안을 품고 있었다.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해져 있는 경우로, 최저임금액을 시간 단위로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는 현행 최저임금법 5조 3항이 그것이다. 도급노동의 유형이 천차만별이라 최저임금액을 사전에 개별적으로 정해두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구체적인 업종과 근로형태가 특정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화물노동자에게 최소 운임을 공표해 적정임금을 보장했던 '안전운임제'가 그 선례다.

류기정 한국경총 전무는 "도급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별도로 정할 필요성"에 대한 정부의 인정이 전제되어야 최저임금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위에서 도급근로자 확대 적용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올해 심의가 종료된 후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구체적인 유형·특성·규모 등과 관련한 실태와 자료를 노동계에서 준비하면 추후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공익위원의 말도 그 가능성을 열어놨다. 비록 올해에는 적용 확대가 무산됐지만 내년 심의에서 도급노동자 최저임금 확대 적용 문제는 전면에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최저임금의 권리로부터 배제되지 않도록

최저임금제가 포괄하지 못하는 이들의 규모는 제대로 된 정부 통계가 없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다. 2022년 기준 프리랜서는 약 406만5000명, 플랫폼 종사자는 약 80만 명으로 추산된다. 구체적인 얼굴을 떠올려볼까. 라이더나 택배기사 등의 배달노동자, 대리기사, 방문점검원, 학습지 교사, 간병인, 웹툰 작가, 방송 스태프 등… 이처럼 다양한 얼굴의 노동자들이 삶의 최저선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한 명의 노동자에게 가닿는 의미에서는 '얼마'인지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사회를 굴리는 수많은 노동의 가치, 그리고 그 노동을 하는 이의 삶과 존엄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존중하냐는 '사회적 인정'의 문제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영계와 정부는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이들을 최저임금의 울타리 바깥으로 하나둘 내치려고 하는 와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가 최저임금제 시행 36년 만에 공식적인 논의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권리가 보장되는 길을 좁힐 거냐 넓힐 거냐, 최저임금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2025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70원(1.7%) 오른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된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에서 한 카페 직원이 호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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