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살았는데 이렇게 다 잠긴 건 처음이여, 새벽에 아들이 마당까지 물이 찼다고 깨워서 일어났더니 장독들이 떠 다니고 난리더라고, 방 안까지 물이 들어와서 놀라서 죽는 줄 알았제."
16일 새벽 1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진 해남군 북평면 일대. 이날 오후 피해현장에서 만난 이모씨(80대·여)는 작은 이동식 의자에 앉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그친 마당의 장독대들은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바가지에는 흙탕물만 담겨 있었다.
이씨는 "전기가 안 들어와 냉장고가 먹통이 됐고 창고에 쌀가마니도 다 젖어버렸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될지 모르겠다"고 근심 가득한 얼굴로 집안을 살펴보았다.
바로 옆집에서는 마침 도착한 자원봉사자들이 집 주인 B씨(70대·여)와 함께 마당을 치우고 있었다.
그는 "이번처럼 물이 많이 들어온 건 처음"이라며 "밥도 안 넘어가서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원래 여기가 간척지였는데 지대가 낮다"며 "원래 있던 배수로를 없애고 하수관을 설치한 후로 바닷물이 들어와서 물에 잠긴다"고 침수 원인을 하수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비로 남평리에서만 저지대 가구 13곳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면소재지에 위치한 남평시장도 물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철물점 집기들을 씻고 있던 C씨(70대·여)는 "아침에 가게 들어오니 슬리퍼가 없어졌길래 고양이가 물어갔나 싶어 CCTV를 확인했다"며 "새벽 3시18분부터 닫힌 가게 문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 바구니가 둥둥 떠다닐 지경이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아침에 물은 빠져 있었고 물어 젖은 집기와 가게를 청소하고 깊은 곳에 고여 있는 물을 빼느라 고생했다"며 "원래 바다였던 곳이라 그런지 밀물 때 물이 찬다. 물이 찰 때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넘친다. 30여 년 전에도 바가지로 물을 푼 적이 있다"고 했다.
전날 밤부터 16일 낮까지 해남에는 호우주의보 및 호우경보, 강풍주의보가 발효된 가운데 평균 84.60㎜의 비가 내린 가운데 북평지역은 해남에서 가장 많은 149.5㎜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국도 2개소를 비롯한 도로 4곳이 파손됐고 소하천 제방 1곳이 유실됐다. 주택침수는 43건이 발생하고 벼 50.4㏊가 물에 잠겼다. 시설하우스 등 농작물 침수피해도 51.3㏊에 이르고 축사 8곳과 수산 가공공장 2곳이 침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해남군은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16일 아침부터 가용 장비와 읍면 직원, 자원봉사 단체 등을 총동원해 응급복구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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