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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에게 폭언·학대하는 축구아카데미, 한국 스포츠는 왜 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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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에게 폭언·학대하는 축구아카데미, 한국 스포츠는 왜 이런가?

[정희준의 어퍼컷] 아이들 탓하는 무능한 지도자들, 퇴출이 답이다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던 시절 아들의 첫 테니스 레슨 때다. 열 살 아들의 생애 첫 스윙.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코치가 던져주는 공을 건드리지도 못한 헛스윙이었다. 코치의 반응? "Nice try(잘했어)"였다. 두 번째 던져주는 공은 라켓 테두리에 맞아 하늘로 솟구쳤다. 코치는 "좋아, 그렇게 하는 거야"라며 칭찬한다. 아이가 공에 집중하는 게 보였다.

미네소타대 골프장 드라이빙레인지에 한 아버지가 열 살 남짓 아들을 데리고 왔다. 첫 레슨. 코치가 "너 야구 배트 휘둘러 봤지?" 묻자 아이는 "네" 답한다. 코치는 "야구랑 똑 같아, 다른 게 있다면 야구는 날아오는 공을 맞추지만 골프는 땅 위에 있는 공을 치는 거야, 쉽지?"하며 클럽을 휘두르게 한다. 클럽은 땅을 쳤고 공은 그대로였다. 코치의 반응? "잘했어. 한 번 더." 마침내 공을 맞추자 코치는 "Way to go... Good job... That a boy(그거야... 잘했어)" 등을 연발하며 칭찬하느라 난리다.

외국에서 아이들에게 운동하는 시간이란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시간이다. 신나는 시간이고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일본 유소년 레슬링대회든, 미국의 9~10세 농구대회든, 유럽의 청소년 축구대회든 언제나 구름관중이고 프로경기 못지않은 응원전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운동장은 언제나 칭찬의 경연장이다.

선수에게 폭언하고 자신의 제자를 비하하는 지도자?

지난 5일 <연합뉴스>가 공개한 손축구아카데이의 13세 미만 팀의 경기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미 보도된 코치진의 욕설과 체벌 등 폭력도 놀라웠지만 이 영상에 드러난 코치들의 행태는 코치로서의 자격 미달을 따지는 차원을 넘어 아동학대가 일상화된 또 다른 증거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첫째, '개XX', 'X같은 새끼', '죽여버린다', '꺼지라고', '돌대가리', '또라이' 등의 언어 학대를 서슴지 않고 저지른 사실이 이미 드러난 바 있던 코치들은 이 영상에서 "미친놈", "X발", "꼴값 떨지 마" 등 폭언과 욕설을 내뱉고 있다.

스포츠에서 지도 능력은 곧 소통 능력이다. 실력이 있는 지도자는 일상적인 언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그런데 실력이 안 되는 지도자는 결국 폭언하고 때리게 된다. 자기가 보유한 지식이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가르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폭력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실력 없는 지도자들이 운동장에 나가기만 하면 분노조절장애에 빠지는 이유다.

둘째, 어린 선수들을 존중하지도, 인격체로 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을 스스로 비하하는 코치들의 모습은 정말 참담한 수준이다. 어린 나이만큼이나 긴장해 있을 선수들에게 "미친놈", "벙어리"라 부르고 "꼴값 떨지 마"라며 기를 죽이고 자존감에 상처 주는 폭언을 수시로 한다. 특히 "야 너는 벙어리야? 머릿수 채우려고 들어갔냐?"는 한 코치의 폭언에 다른 코치가 "걔는 머릿수만 채운거야. 얘기하지마"라고 대응하는 장면엔 어안이 벙벙해진다. 아이들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오히려 인격 모욕이다. 자기 제자를 자기 스스로 비하하다니.

아이들 탓하는 무능한 지도자들

손축구아카데미 코치들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세 번째 이유는, 자신들의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그 책임을 제자들에게 떠넘기는 그들의 처참한 모습이다. 손축구아카데미 측은 "몇 년간 훈련한 내용이 실전서 전혀 이뤄지지 않아 답답함이 컸던 상황"이고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매일 강조했던 사항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참 못난 어른들이다. 선수들이 못했기 때문에 감독님, 코치님이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다.

이들의 변명도 한심하다. "몇 년 동안 훈련"했는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건 코치들 책임 아닌가? 감독, 코치가 "매일 강조"했는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역시 코치 책임 아닌가? 한마디로 '총체적 무능'이다. 몇 년간, 매일 강조했는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건 코치진이 반성해야 할 문제다. 또 아카데미는 "긴박한 상황이어서 표현이 정제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13세 미만 경기가 '긴박한 상황'이어서 욕설을 한다면 18세 경기, 프로경기에서는 몽둥이라도 들고 나갈 것인가.

당시 선수들은 첫 대회 출전은 물론 처음으로 11인제 경기에 출전한 것이라 한다. 아카데미 측 설명대로 "과도하게 긴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첫 출전하는 어린 선수에게 코치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격려와 지지와 응원이다. 학습자가 어릴수록, 기술 습득 수준이 낮을수록 긍정적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코칭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럼에도 잔뜩 긴장한 아이들에게 욕설을 해대는 이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야비하고 비겁한 지도자들

<연합뉴스> 영상에서는 손웅정 감독이 선수를 걷어차는 모습도 확인됐다. (촬영자의 동의를 얻지 못해 보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폭언하고, 아이들 상처 주고, 선수를 걷어차고 때리는 아카데미.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손웅정 지지자들. 진정 이것이 한국 스포츠의 현실인가. 그렇다면 참혹하다. 무능한 건 자신인데 되레 아이들에게 책임으로 떠넘기는 지도자들. 야비하고 비겁하다.

요즘 아이들을 욕도 하지 않고, 그 정도 체벌도 없이 어떻게 가르치냐는 이들이 많다. 메시, 음바페가 맞아서 세계적 선수가 됐나? 장한나, 임윤찬, 조성진이 두들겨 맞으며 세계적 연주가가 됐나? 한국의 스포츠는 도대체 왜 이런가?

교장선생님께 욕하지 않을 정도의 상식, 심판을 때리지 않을 정도의 예의를 갖췄다면 충분하다. 안전이 우려되는 체조 정도를 제외하면 아이들 몸에 손댈 일 없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 감독이 6일 오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아디다스 F50 발매 기념 팬미팅 행사장을 찾아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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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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