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은행(연준·Fed)이 본격적으로 정책금리를 올려 나가던 2022년 9월에 연준의 파월 의장은 보수적인 카토 연구소와 인터뷰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미국경제는 고용시장에서 노동수요가 매우 강하고 높은 임금의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창출되는 불균형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연준은 정책개입을 통해 상당 기간 추세 이하의 성장을 유지함으로써 노동시장을 균형수준으로 되돌리고 임금상승률도 2% 물가목표에 근접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파월은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의 목적이 성장률을 낮게 유지하여 실업률을 높이고 임금 상승률을 떨어트리는 데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연준 홈페이지에서는 연준의 목표가 고용의 최대화와 물가의 안정을 달성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파월의 인터뷰는 연준 정책이 겉으로 내세우는 목표와는 달리 고용의 최대화가 아니라 오히려 고용의 축소를 목표로 전개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연준은 고용 수준이 높아 기업들이 노동조합과 협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할 때는 항상 금리의 인상을 노동자들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미국의 경제학자 에드윈 디킨스(Edwin Dickens)는 연준에서 금리 결정을 담당하는 공개시장위원회의 1950년대 회의록을 분석하여 연준의 금리정책이 노동자들의 순응성을 키우고 임금을 낮게 유지하는 데에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1979)>를 쓴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의 아들인 경제학자인 제임스 갈브레이스는 연준의 정책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반응의 결과인지 낮은 실업률에 대한 반응의 결과인지를 조사했는데, 인플레이션보다 완전고용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이 연준의 정책을 결정하는 우선적인 기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이클 패럴먼(Michael A. Perelman)은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2014)>라는 저서에서 미국 연준의 1979년 고금리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공표된 목표 외에도 노동조합 세력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cker)는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을 몹시 경계했고 이를 정책 금리 결정에 참고했다. 그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 수준과 협상 상황, 그리고 노사 합의 내용까지 일일이 체크했다. 곧, 볼커는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에 연준의 정책을 교묘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연준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어느 정도의 실업률을 유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주도하는 사회에서 실업의 공포가 사라진 경영 환경은 자본가로서는 끔찍할 수밖에 없다. 파월의 발언은 최근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결정의 과정도 물가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임금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의 물가 상승이 에너지와 식량 부족,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의 파손에서 생긴 것이고 따라서 정책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판단에 힘을 실어준다.
이처럼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이 노동자들의 실업률을 높이는 데 활용되고, 또 그것이 가계의 금리부담, 투자와 소비의 위축, 나아가 사회 전체의 고통 증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은 정책금리 인하를 요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진보 성향의 여러 연구자들은 정책금리의 인하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스티글리츠는 '과도한 수요'를 줄이겠다는 최근의 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경제 수축으로 이어져서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에서 언급한 제임스 갈브레이스는 금리 인상이 노동자들에게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안기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저금리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이 진정으로 노리는 바는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것이라면서 역시 금리 인하를 주장한다.
더욱이 일부 보수적인 연구자들의 금리 인상 주장은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금리 인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보수적인 오스트리아학파의 전통에 서 있는 에드워드 챈슬러(Edward Chancellor)는 최근 펴낸 <금리의 역습(2023)>이라는 저서에서 저금리가 가져올 수 있는 나쁜 결과를 이야기한다. 그는 시장 논리가 작동하는 경제에는 '자연 이자율'이라는 것이 있는데, 시장 이자율이 그보다 낮으면 여러 '잘못된 투자'가 이뤄지고 특히 투자의 많은 부분이 생산적인 부문에서 금융자산으로 옮겨가서 거품을 일으킨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 동안은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시장 이자율이 자연 이자율보다 더 낮은 상태가 이어졌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 결과 생긴 잘못된 투자는 통화 긴축과 금리 인상을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런데 자산시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좀 어리둥절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들려오는 금리 인하 목소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현재 정책금리 인하를 가장 바라는 쪽은 금융시장 참가자들이나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용 상태까지 챙기면서 거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연준이 정책금리를 결정할 때 참조하는 중요 지표가 실업률이기 때문이다. 자산 계층은 실업률이 올라가면 연준이 정책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판단하며, 실제로 그 판단이 적중하면 자산 가격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산 계층은 정책금리의 인하를 요구하며 이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경제 신문들은 그 필요성을 드러내놓고 제기한다.
노동자와 자산 계층 모두 금리 인하로 이익을 얻는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금리 인하 요구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저금리가 오히려 자산 계층에게 유리하게 된 사정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대표 저서인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은 이 저서가 지향하는 사회철학에 대해 다룬다. 거기에서 케인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 사회의 결함으로 실업과 불평등 문제를 들면서 미래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들도 점진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본의 양은 상대적으로 풍부해지는 데 비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감소에 비례해서 자본의 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보았다. 이는 장기적으로 이자율이 떨어지리라는 것을 함의한다. 케인스는, 이자율이 떨어지면 이자를 받아서 생활하는 계급은 그 수입이 줄어들어 결국 ‘안락사’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자본이 더는 희소하지 않은 상황이 되면 금융의 힘은 약해지고 금융 불로소득은 사라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자본의 급증과 이자율 수준의 지속적인 하락이 특징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금융 불로소득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오늘날 이자(임대료) 소득자들은 안락사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더 굳건하게 다지고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증가한 자본의 양에 비해 그 수요가 줄어들어 이자율이 떨어지고 그 결과 금융 불로소득자들이 안락사할 것이라는 케인스의 예상은 빗나간 것처럼 보인다. 자산 계층에게 저금리 상황이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된 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브렛 크리스토퍼스가 쓴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2024)>는 그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저금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금융 불로소득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자율 하락을 메울 만큼 또는 메우고도 남을 만큼 대출이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케인스는 경제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수요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자본의 절대량이 늘어날수록 투자를 해야 할 곳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따라서 자본의 한계 효율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인스에게는 곤혹스럽게도 자본의 수요는 생각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기업, 가계, 정부의 자본에 대한 수요는 케인스가 예상했던 것을 크게 넘어섰다. 은행은 신용창조를 통해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대출 증가, 부채 증가로 나타났다.
다른 하나는 금융 규제완화의 덕을 본 자본화의 발전이다. 자본화란 정기적인 소득 흐름을 낳는 어떤 것을 자본처럼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국채는 정기적으로 이자 소득을 낳는다는 점에서 이의 보유자에게는 자본처럼 기능한다. 이 국채는 자본으로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며 그저 이자를 지급 받을 권리를 나타낸 청구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자 지급 청구권은 마치 실체를 가진 자본처럼 간주되어 가격으로 표시된 다음 시장에서 거래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채권,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배당을 자본화한 주식, 나아가 임대료를 자본화한 부동산을 가공자본으로 묘사했다.
자본화 가운데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대출의 증권화이다. 대출의 증권화란 어떤 경제 주체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을 증권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대출에서 생기는 정기적인 이자를 증권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대출의 증권화는 자본화이기도 하다. 대출의 증권화를 통해 금융기관들은 만기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언제든 중간에 대출을 다른 누군가에게 팔아넘길 수 있게 되었다. 대출의 증권화가 발전하면서 금융기관들은 주택담보대출, 학자금대출, 자동차 할부대출, 신용카드 대출 등 온갖 대출을 증권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에 정기적인 여러 공공 임대료 수입까지 자본화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영국의 진보적인 지리학자인 레이션&쓰리프트(Andrew Leyshon&Nigel Thrift)는 이를 '거의 모든 것의 자본화'라고 표현한 바 있다.
대출의 증권화는 금융자산이 크게 증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이 대출을 담보로 새로운 증권을 발행하면 금융자산은 두 배로 증가한다. 이 증권이 신탁회사들의 펀드에 편입되어 수익증권 형태로 발행되면 금융자산은 또다시 증가한다. 1980년대 이후 금융기관 대출이 증가한 데다 이를 바탕으로 삼은 2차, 3차 증권이 발행되면서 세계적으로 금융자산이 급팽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금융자산의 비율이 1980년에서 2000년까지 20여 년 사이에 거의 네 배가 증가했다. 금융자산이 증가하면서 이제 금융부문에서는 이자 수입에 비해 자본 이득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금융자산의 가격은 미래에 생산되는 부가가치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금융자산의 가격은 미래에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 그 가운데 금융 부문으로 흘러가는 몫, 그리고 실제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금융의 영향력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정도는 이윤율과 이자율의 '전망'으로 표현된다. 미래에 이자율이 오르고 금융자산의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금융자산의 상대적인 가격은 떨어진다. 어제 시장 금리가 5%일 때 발행된 10년 만기 채권이 있다고 해보자. 내일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채권이 시장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면 어제 발행된 채권의 상대적인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금리가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 기존의 증권 가격은 하락하고 거꾸로 시장 금리가 떨어질 것으로 에상되면 금융자산의 가격은 상승한다.
화폐 자산만을 보유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이를 누군가에게 대출해주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금리가 오르기를 바랄 것이다. 금융자산(부동산을 포함하여)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이를 언제든 시장에서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은 금리가 떨어지기를 바랄 텐데, 그 국면에서 오히려 자본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금융자산의 축적이 증가하면 금리 인하에서 생기는 단기적인 이익은 클 것이고 그럴수록 금리 인하에 목매는 세력도 증가한다.
1980년대 이후 금융 세력이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주요 중앙은행들이 여기에 호응하면서 저금리 편향적인 금융정책을 편 배경에는 이 시기에 금융자산이 크게 팽창했다는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금융자산이 거대하게 축적된 현실에서 금리 인하는 금융세력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생산한 부가가치의 많은 부분이 금융부문으로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가야 한다.
중앙은행 정책금리 결정 과정의 계급성
이 대목에서 우리는 연준을 포함한 중앙은행들의 금리 정책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다시 말해서 자본의 이익에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자본의 이익으로 기운 주류 이론가들은 정책금리 결정이 전문가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금융 전문가가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을 위해 중립적으로 금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케인지언 전통을 따르는 여러 연구자들은 정책금리 결정을 다원주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자본과 노동,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한 국민자본과 다른 국민자본 등 여러 계급계층의 이해 대립 속에서 정책금리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체로 금융자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금리가 결정된다고 본다.
그런데 케인지언 전통의 연구자들도 금융화 국면에서는 금융세력이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금리 결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대체로 인정한다. 그런 면에서 금융화 국면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케인지언들 사이에서 정책금리 결정 방식에 대한 견해의 수렴이 발생한 셈이다. 물론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정책금리가 시장 이자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적인 지점이 있다.
금융화 국면에서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결정 과정은 대체로 금융 세력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을 따른다. 그리고 금융자산, 토지와 건축물 자산이 대규모로 집적된 시기에 금융 세력은 자주 정책금리 인하를 요구한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정책금리가 금융 세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중앙은행이 금융 이익을 억누르면서까지 전체 산업의 장기 이익을 위해 정책금리를 결정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특히 노동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책 금리를 활용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특정 자본분파의 이해가 전체 자본의 이익을 위해 무시되는 국면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주류 이론가들은 미래에 더 높은 지속 가능한 성장률을 달성하려면 오늘의 성장을 늦추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정책금리 인상을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정책금리를 어느 정도까지 올릴 수 있을까? 미국 연준은 2022년 3월부터 점진적으로 정책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0.1% 수준에 머물던 정책금리(실효금리 기준)가 2023년 8월에서는 5.3%까지 오른 다음 지금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2022년 3월의 2% 수준에서 2023년 10월에는 4.9% 수준까지 올라갔다가 현재는 4%대 중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현재의 국면에서 미국 연준의 금리 정책 향방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노동을 길들이려는 전체 자본의 요구와 금리 인상 때문에 생기는 자본 손실의 하락을 금융세력이 어느 정도까지 인내할 수 있을지의 정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정책금리의 최고치가 결정될 것이다.
한편 시장 이자율은 산업자본가와 화폐자본가가 같은 원천에서 나오는 가치를 나눠 갖는 관계에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한 쪽이 많이 차지하면 다른 쪽은 적게 차지해야 한다. 결국 시장 이자율은 일차적으로는 이윤을 생산하는 산업자본에, 그리고 2차적으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에 의존하는데, 두 관계 모두 갈등을 내포한다. 이자율 결정 과정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이자율 수준은 어떤 법칙을 따르기보다 세력들 사이의 갈등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라는 수단을 통해 시장 이자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주류 이론가들은 자연 이자율이라는 개념을 들여오는데, 중립 이자율이라고도 하는 이 이자율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없이 잠재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는 금리 수준으로 정의된다. 이 개념은 중앙은행 전문가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는 형이상학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자연 이자율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치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계산을 해서 찾아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수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연이자율을 형이상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나 케인스는 자연 이자율 개념을 부정한다. 특히 마르크스는 자연 이자율 개념을 심하게 비판하는데, 그 이유는 이 개념이 이자의 원천이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에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요점은 정책 금리든 시장 금리든 그것이 여려 세력들의 이해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노동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조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의 요구는?
아담 스미스는 저금리를 사회의 진보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았다. 발전한 사회일수록 금리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저금리가 이자(임대료) 생활자의 안락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자(임대료) 생활자를 사회의 불필요한 존재로 보았다는 점에서 케인스 역시 이들의 안락사를 가져올 저금리를 사회 진보의 중요한 측면으로 간주했다.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이 고금리와 싸우기 위해 신용제도를 발전해낸 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근대의 은행제도가 산업자본이 고리대 자본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르크스도 대체로 저금리가 사회의 더 진보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처럼 여러 대가들은 저금리를 사회경제 진보의 지표로 해석했다.
실제로도 금리의 하락은 당장은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금리가 하락하면 노동자들은 안고 있는 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을 줄일 수 있다. 물론 부채보다 예금이 많은 노동자들은 손해를 볼 수도 있겠지만 그처럼 여유 있는 노동자 가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봐야 한다. 금리가 하락하면 거시경제적으로 소비와 투자가 늘고 그러면 실업률이 낮아져서 노동조합의 힘이 증가하고 임금협상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곧, 노동조합의 금리 인하 요구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낮은 시장 이자율을 유도하려는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 항상 노동자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금리로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임대료가 올라간다. 집이나 상가를 임대해서 사용해야 하는 계층에게는 저금리가 오히려 불리한 상황일 수 있다. 저금리로 주식가격이 올라가면 주주들의 배당 요구가 증대함에 따라 기업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연장, 노동강도 강화, 임금인하를 더 거세게 압박할 수 있다. 만약 어떤 나라가 자산 가격이 폭락할 것을 우려하여 주요 나라들에 비해 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못하면 그 나라 화폐의 상대적인 가치가 떨어져서 환율이 오를 수 있다. 환율이 오르면 그 나라는 수입품에 대해 더 많은 화폐를 지급해야 할 텐데, 그 수입품이 내수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결국 그 부담을 소비자(그 가운데 다수가 노동자)가 져야 한다.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의 상승은 실질 임금을 대폭 떨어트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금리 인하 요구는 노동조합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황별로 금리 인하가 노동자에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 만약 중앙은행이 실업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고금리 정책을 활용하려고 한다면 그때는 노동조합은 그러한 시도를 좌절시켜야 할 것이다. 양적완화처럼 순전히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에 목적이 있는 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라면 노동조합은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 금리 수준에 따른 유불리가 상황별로 다르다는 점은 노동조합이 일방적으로 저금리만을 주장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조합이 중앙은행의 의사결정 단계부터 참여하여 상황별로 요구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노동조합은 무조건 저금리를 외치기보다 중앙은행의 의사결정 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 자기의 목소리를 대변할 위원을 보내는 데 먼저 힘을 쏟아야 한다.
<도움받은 자료>
마이클 패럴먼, 김영배 옮김(2014),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어바웃어북.
브렛 크리스토퍼스, 이병천 외 옮김(2024),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 여문책.
에드워드 챈슬러, 임상훈 옮김(2023), <금리의 역습>, 위즈덤하우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이주명 옮김(2010),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필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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