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짧으니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일면식 없는 남성에게 폭행당한 이른바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 피해자가 재판기록 열람·등사를 불허한 재판부의 결정을 규탄하고 나섰다. 피해자들이 현행법 내에서 재판 기록을 확인하려면 민사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가해자에게 신상이 알려져 보복 범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20대 여성 A씨는 3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지난 24일 창원지법 제1형사부에 공판기록서와 가해자 반성문, 최후의견진술서 등의 열람·복사를 신청했다"며 "31일 공판기록서 등 일부 기록물은 열람을 허가받았지만, 반성문과 최후의견진술서처럼 가해자가 직접 작성한 서류 대부분은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A씨는 재판부가 열람이 불허한 서류 중 가해자의 반성문을 열람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앞서 폭행 사건의 가해자인 20대 남성 B씨는 재판부에 지금까지 총 7장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A씨는 "피해자인 내게는 단 한 차례의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재판부에 다수의 반성문을 제출한 가해자의 의도가 궁금해 반성문을 열람하고 싶었으나, 재판부는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이를 불허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로 추정된다는 법무부 국립법무병원의 소견서에 대한 A씨의 열람신청도 불허했다. 이 역시 불허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A씨의 법무 대리를 맡은 이경하 변호사는 "(피해자 측은) 가해자의 범행 동기가 심신미약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심신미약의 근거가 된 정신감정서를 살펴보려 하는데, 재판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으니 법적 대응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필명)씨도 같은 방식으로 재판기록을 볼 수 없어 본인의 재판 진행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민사소송을 통해 재판기록을 확보했으나, 그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이름과 거주지 등 신상이 알려져 언제든지 2차 가해를 겪을 수 있다는 위협을 겪어야 했다.
김 씨는 이날 <프레시안>에 "재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단서를 열람할 수 없다면 이해하지만, 가해자의 반성문을 피해자가 읽는 게 재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나"라며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거나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기록 열람을 일괄적으로 불허하는 재판부의 판단은 도저히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신상정보 노출을 감수하고서라도 재판 기록을 얻기 위해 민사소송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행법상의 한계 때문이다.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는 성폭력, 아동학대, 장애인학대, 19세 미만 성범죄 등 일부 범죄를 제외하고는 피해자의 재판기록 열람·등사 여부는 온전히 사건을 맡은 담당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다.
재판부는 더욱이 불허 시에 사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며 피해자는 이의 신청을 할 수도 없기에, 피해자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재판 상황을 지켜만 봐야 한다.
이에 김 씨는 지난해 10월 한동훈 당시 법무부장관에 피해자의 재판기록 열람·등사권 강화를 포함한 범죄피해자 지원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법무부는 산하에 '범죄피해자 지원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김 씨의 의견을 반영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여야 간 정쟁 끝에 해당 개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김 씨는 "또 다시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서로 싸우느라 통과시키지 못한 범죄피해자 보호법안을 이번 22대 국회에서라도 조속히 처리해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 변호사도 "피해자의 재판기록 열람·등사권을 폭넓게 보장해주고, 재판부가 재량에 따라 열람을 허가하는 방식이 아닌 불허 시 사유를 고지하는 방식으로 법·제도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은 지난해 11월 4일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근무하던 20대 여성 A 씨가 "머리가 짧으니 페미니스트",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는 이유로 20대 남성 B 씨에게 폭행당한 사건이다. B 씨는 폭행을 말리던 50대 남성 C 씨까지 폭행하며 "같은 남자면서 왜 막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폭행 후유증으로 왼쪽 청력을 영구적으로 잃어 평생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 골절상 등 전치 3주의 피해를 입은 C씨는 병원과 법원을 오가다 일자리를 잃어 일용직으로 근무하게 됐다.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형사3단독(판사 김도형)은 지난달 9일 B씨에 특수상해, 상해,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편의점주에게는 물적피해보상금 250만원, 골절상 등의 피해를 입은 C씨에게는 치료비와 위자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검찰이 구형한 징역 5년보다 2년 낮은 형량이다. 재판부는 국립법무병원과 대검찰청이 B씨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감정 결과를 토대로 그가 심신미약 상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여성혐오사건'으로 규정, 재판부가 선고한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B씨도 재판부가 선고한 형량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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