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세사기 피해 '생존자'다.
5년 전 어느 날, 내가 살던 집을 포함한 공동주택 전 세대가 가압류됐다. 약 20세대, 총 피해액 50억 원 상당의 집단 전세사기였다. 많은 전세사기가 그렇듯 글로 다 옮기기 힘들 정도로 상황이 매우 복잡했다. 스무 채를 움켜쥐고 있던 이 구역 '빌라왕'은 "내 잘못이 아니다, 줄 돈이 없다"며 버텼다.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소송전에 돌입했다. 주거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투의 시작이었다. '졸음과의 사투'처럼 으레 쓰는 표현이 아닌, 정말로 목숨을 건 사투였다.
당장 내일이라도 길바닥에 나앉을 수 있다는 불안감, 기자라는 인간이 사기나 당하고 산다는 자괴감에 지옥 같은 매일을 보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옥 생활을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같은 처지의 주민들이었다. 서로를 위로하며 우리는 빠르게 그리고 단단하게 하나로 묶였다. 그 덕분일까. 우리의 불행은 2년 만에 종결됐다. 정신적 타격은 입었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경제적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다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나의 친오빠가 전세사기 늪에 빠졌다. 내가 당한 것이 있으니 오빠가 집을 구할 당시 조언을 해줬다. 이번엔 정말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유형만 다를 뿐, 결국 또 다른 전세사기 덫에 걸리고 말았다. 어디 나와 우리 가족만의 일일까. 언론지상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업데이트된다.
이쯤 되면 무력감을 느낀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했기 때문이라며 개인의 부주의함을 꾸짖는다. 물론 개인의 문제도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나 매일매일 피해자가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애초에 제도나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법에 매우 밝은 극소수 몇몇을 제외하면 전세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어떤 이들은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는 절박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피해자임을 인정받은 이들에 한해 보증금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절망에 갇혀 내일이 보이지 않는 피해자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법이다.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렇다고 해서 전세사기 특별법이 현재 나타난 전세사기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는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애초에 피해 '방지'가 아닌 '지원'에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통과된다 한들, 혹은 이번 집에서 운 좋게 전세사기를 피했다 한들, 다음 집에서는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22대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전세사기가 일어날 수 없는 토양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논의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책이 있다. 지속가능한 주거권을 오래도록 연구해 온 최경호 주거중립성 연구소장의 책 <어쩌면, 사회주택>(최경호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이다.
모든 이가 콘크리트를 소유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으니
이 책을 펴자마자 나는 잘못된 생각 한 가지를 바로잡았다. 언뜻 생각했을 때, 이른바 복지국가라 불리는 나라들은 자가 거주율이 매우 높을 줄 알았다. 내집 마련을 실현했을 때여야만 주거 안정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추측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른바 복지국가들의 자가거주율은 대략 55~60%로 우리와 비슷하다. '내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비중이 커서 복지국가가 되는 게 아니란 이야기다. 그러니까 주거 복지 국가와 아닌 국가의 차이는 "인구의 40%가 넘는 세입자들이 얼마나 마음 편히 사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모든 이가 독립과 동시에 콘크리트를 소유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다만 "안정된 주거 공간과 그곳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유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맞는 이야기다.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주거 형태도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처럼 다양해져야 한다. 그러니 모든 이가 집을 소유할 필요도 없다. 우리 오빠의 경우에도 해외를 수시로 드나드는 통에 집을 구매하는 게 마땅치 않아 전셋집을 선호해왔다. 심지어 전세사기를 당해 곤경에 빠진 상황인데도 자가를 마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이 전세라는 제도 자체에 치명적인 결함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전세 제도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부담이 적어서, 집주인 입장에서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어서 양측 모두 선호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집값 상승'이 전제가 됐을 때에만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제도다.
"무엇보다 전세 제도의 가장 큰 비극은 세입자들도 '집값 상승 동맹'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증금을 무사히 받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는 전세 사기와 같은 일탈행위 때문이 아니라 전세의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에 따른 것이다. 시세가 하락해서 다음 세입자에게 받을 보증금이 더 적어지는 역전세나, 심지어 집값이 전세보증금 밑으로 떨어진 깡통 전세 때문에 생기는 피해가 그 증거다.
전세의 본질은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세입자의 보증금마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악의적으로 세입자를 속이는 전세 사기가 아니더라도, 애초부터 전세는 마치 폰지사기와 같이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p28)"
저자는 전세 제도가 불러온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몇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현재 전세제도를 유지하되 일부를 손보는 '소개혁'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전세를 월세로 일부 전환하되, 기존의 전세보증금을 낮출 수 있도록 임대인 대출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집값이 오를 때는 세입자가 빚을 내서 전세금을 올려줬다면, 집값이 떨어질 때는 임대인이 빚을 내서 전세금을 내려줘야 하는 것이 순리"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예 임차인이 받은 전세보증금 대출금을 임대인 앞으로 돌리는 방법도 제안한다.
둘째는 주거 체제 자체를 바꾸는 '대개혁' 방안이다. 이 책의 주제와 맞닿는 내용으로, 임대 시에도 안정적 거주와 부담 가능한 임대료 및 양호한 주거 환경을 실현하도록 하는 주택을 늘려나가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형태가 '사회주택'이다.
이름이 꼭 '사회주택'이 아니어도 괜찮아
저자는 이러한 방안에 대해 "주거 사다리가 필요 없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주거 사다리가 필요 없는 시스템이라니, 환상동화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저자는 대중교통수단을 비근한 예로 든다. 짐이 많으면 택시를 타지만, 택시는 때에 따라 지하철이나 버스보다 더 오래 걸린다. 그래서 정시성을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는 게 낫다. 그런데 땅속 깊이 자리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은 꽤 멀다. 버스정류장이 가까우면 버스를 이용하는 게 편할 수도 있다. 택시나 지하철, 버스, 무엇 하나 도드라지게 우월하지 않다.
대중교통수단이 그러하듯 주택도 점유 형태를 동등한 선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월세와 전세, 자가 사이에 큰 격차가 없다면, 주거 안정성만 보장된다면주거 사다리가 존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자는 주거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사회주택을 제안한다. 서구에서 사회주택은 공공주택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지만, 한국에서 사회주택은 공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주택과는 별도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주체나 비영리조직이 주택의 공급과 운영에 참여하는 형태의 주택을 주로 일컫는다.
우리 사회에(혹은 전세계적으로도) 사회주택에 대한 정의가 또렷하게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사회주택을 정의한다. "호혜성을 바탕으로 공공의 지원을 활용하여 주거 선택권을 확장하는 주택"이란다.
이런 성질을 가진 주택들을 두고 '사회주택', '국민주택 등 칭하는 이름이 여럿 있는데, 저자는 꼭 이름이 '사회주택'이 아니어도 된다고 한다. '사회'라는 단어가 주는 반헌법적인 느낌 때문에 관련 지원법인 '민간 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은 여태껏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름은 사회주택이 아니어도 좋으니 공공과 사회, 시장 3자가 협력하는 주택이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공과 사회, 시장의 '콜라보'는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저자는 3자가 엔(n)분의1로 무조건 똑같이 기획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공공의 토지 위에 사업자가 집을 지을 수도 있고, 공공의 보증을 바탕으로 사업자가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짓거나 땅을 살 수도 있고, 혹은 공공이 대부분의 재원을 투입해서 짓되 사업자는 기획과 운영만 맡을 수도 있다.
각 주체의 역할을 어떤 식으로 섞든 사회주택은 일정한 공통점을 지닌다. 운영 주체와 이용 주체와의 간극이 작고, 혹은 운영 주체와 공급 주체가 아예 일치할 수도 있다. 특히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 주체가 주택의 운영을 책임지는 것은 중요한 공통점이다.
아파트 동호회에서 막걸리 빚고 광장에서 결혼식 어때요?
책에는 여러 종류의 사회주택 사례가 소개된다. 나만 몰랐나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물론 절대량이 많단 이야기는 아니다. 전국의 가구 수가 2000만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그 중 열몇 개 소개된 걸로 사회주택이 많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만 관심이 있었더라면 충분히 사회주택을 찾아서 경험해 볼 수도 있었지 않나 싶을 정도로 꽤 사례가 풍부하다.
고시원을 리모델링하여 공유 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 홍대 앞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떠밀려 난 인디 활동가들이 예술창작센터를 겸해 공동체 주택을 조성한 사례, 의료·복지·돌봄을 주제로 만든 커뮤니티 사례, 청년 창업을 위한 스타트업 공간을 운영하는 사례 등 필요에 따라, 취향에 따라 골라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여러 유형 가운데 유독 혹한 사회주택이 있었다. 사회적기업 '더함'이 시행하고 입주민들이 조합원 형태로 참여하는 사회주택 '위스테이'다. 대부분 사회주택이 빌라와 같은 저층 주택에 조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위스테이의 주택 형태는 아파트다. 남양주와 고양 두 군데에 아파트를 공급한 위스테이가 목표로 둔 것은 '느슨한 공동체'였다.
"이곳은 여느 아파트 단지와 확연히 다르다. 커뮤니티 시설 면적만 약 2800평으로 일반 아파트 단지의 2.5배에 이른다. 공동체 공간은 설계 단계부터 예비 입주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카페, 체육관, 책방과 같은 휴게시설이나 편의시설 외에도 목공소와 창작소, 텃밭과 방송국처럼 주민들이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공간도 함께 구성되었다.
최근엔 막걸리 동호회가 발효실에서 직접 막걸리를 빚다가 아예 양조장을 차렸다. (중략) 2020년 가을에는 아파트 단지 내 잔디 광장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위스테이에 사는 어린이들이 활동하는 합창단에서 축가를 불렀다. 주민들이 베란다에서 축하를 해주는 모습은 사회주택은 물론이요. 한국 주택 정책사에도 길이 남을 만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p163)"
보통의 아파트에서라면 꿈도 꾸기 힘든 따스한 장면들이다. 애초 주민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돼 사소한 일로 얼굴 붉힐 일도 적을 테고, 정말 어렵고 긴급한 상황에 옆집 문 두드리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택이라 해도 일단 아파트이니, 아파트 좋아하는 우리 집 '차가운 도시 남자'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다음 이사를 계획할 때 진지하게 후보지에 넣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사회주택이다.
책을 읽다 보면 연이은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절망감은 사그라들고 설렘, 기대 이런 감정이 든다. 피해자 간 연대도 쉽지 않은 현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만큼 밝은 미래다. 이 나라의 주택 정책을 기획하는 모든 이들이 꼭 이 책을 봤으면 싶다. 저자의 제안대로 공공과 사회와 시장이 함께 사회주택을 공급해 주거 사다리를 없애고, 이웃 간 거리를 좁혀 자연스럽게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큰 그림을 그리길 바란다. 개인이 좀 '덜렁덜렁'해도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진짜 선진국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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