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국민통합, 경제민주화 등 비전 제시가 아니라 거친 언어를 통한 상대방 비판에 주력한 점이 총선 패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보수진영 내부 비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편협한 자유 이념에 매몰돼 복지 확대, 사회 양극화 해소를 소홀히 해 민심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16일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국회에서 '보수의 가치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2012년 총선에서 어떤 (새누리당) 후보가 '민주당이 진보통합당이랑 같이 하니까 종북척결하자'고 마이크 잡고 떠든 모양이다.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다"며 당시 새누리당이 "국민통합, 정치 쇄신, 경제민주화" 등 좋은 언어를 사용해 선거에서 이겼다고 강조했다.
이어 '운동권 심판', '범죄자 심판' 등 지난 총선 국민의힘의 선거 프레임을 겨냥한 듯 "그런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지는 데 결정적 영향은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이라며 "경험적으로 볼 때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선거 때 그런 이야기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하는 이야기지 현장에서는 선거운동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국민의힘이 수도권 젊은 층의 지지를 잃어버렸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가 이후 선거의 "기본값"이라며 "그때 서울과 경기도 지도를 보면, 지금과 거의 같다. 잠깐 반등한 적은 있다. 민주당이 실수하면 잠깐 왔다가 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렇게 된 원인은 경기도를 국민의힘이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며 "경기도가 90년대와 다르다. 신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2012년에 새누리당 옷을 입고 의정부나 성남을 돌아다니면, 아파트 단지에 가면 찬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러니 어디를 가나. 노인들이 많은 재래시장을 간다. 그때부터 그런 징후가 있었다. 10년 동안 그랬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국민의힘의 미래에 대해서는 "가장 바람직한 정치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치"라며 "그런 방향을 지향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총선 패배 원인의 "사상적 측면만 짚겠다"며 "국민의힘이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한다. 그런데 자유를 강조하는데 비해 민주와 공화라는 현대정치 사상의 근본 가치를 경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협소하고 과거 권위주의적 한국 우파의 여러 가지, 자유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침해해온 과거의 불행한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태를 보여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윤석열 대통령이 대단히 잘못한 것 중 하나는 자유지상주의에 가까운 편협한 자유 이념에 매몰돼 정부라면 마땅히 해야 할 복지 확대, 사회양극화 감소를 위한 대대적 재정확대 정책을 하지 않은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때 국가채무가 증가했다. 그러나 그것만을 내세워 정부가 해야 할 일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의무 방기에 가깝다. 그 참담한 대가가 총선 패배"라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갈수록 식물정권화할 것이다. 초거대 야당은 폭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권력과 입법권력 대치라는 이중권력 상황이 총선 이후 더 악화돼 사회 전체로 적과 동지의 투쟁이 전면적으로 만연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한국 정치에 필요한 변화는 "적대적 당파 정치"를 넘어 "법의 지배, 비지배 자유, 혼합정, 시민적 민족주의, 공공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화혁명"에 나서는 것이고 "공화자유주의는 보수 혁신의 이념형적 가치"라고 주장했다.
한편 토론회를 주최한 윤 의원은 "보수의 의미가 왜곡돼 있다"며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법 질서를 지키고 개혁하는 것이 보수인데, 우리에게 비친 보수는 개혁에 저항하고 책임질 줄 모르고 남북관계 돌파구도 못 여는 수구적인 이미지로 퇴행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힘의 현재 분위기를 보면 공동묘지의 평화 같은 너무나도 조용한 분위기"라며 "당 중앙을 폭파시킬 정도의 강력한 의지를 갖고 전면적이고 창조적인 파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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