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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시민운동가에서 국회의원으로 탈바꿈한 송재봉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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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22대 총선 당선인 인터뷰] 시민운동가에서 국회의원으로 탈바꿈한 송재봉 당선인

NGO 활동가 26년, 청와대 4년 근무 후 정치 입문…청주시장 출마 후 2번째 출마에 당선

▲송재봉 국회의원 당선인이 김규철 프레시안 대전세종충청본부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재봉국회의원당선인사무실

2000년대 초반 충북 청주시에서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충북경실련,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등 NGO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그 중심에는 송재봉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혼신을 다해 NGO활동을 주도했던 그는 40개 중반에 청와대에 행정관으로 들어갔다. 이후 정치권에 입문, 지난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중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당시 한범덕 청주시장을 누르고 당 후보로 등극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송 후보는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2년 뒤 치러진 22대 총선에 출마해 결국 금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프레시안>은 송재봉 당선인을 만나 그동안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들어봤다. / 편집자주

프레시안 : 그동안에 이제 살아온 길을 보면 상당히 다양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시죠.

송재봉 : 어떻게 보면 다양하기도 한데 또 단순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 청주에 와서 자리를 잡은 것이 이제 1986년에 청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들어오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살던 곳이 우암동입니다. 대학생 시절 그때가 전두환 정권 말,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학생운동을 했고, 그러다가 두 차례에 걸쳐서 이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두 번째는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 군에서 만들어진 사건으로 인해서 구속됐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에 여러 가지 좀 우리 사회에 대해서 또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 건가 이런 고민을 했었고 그 결과적으로는 뭔가 우리 공익적인 그런 역할을 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보니까 그 당시가 한참 시민운동이 새롭게 시작되던 시점이라서 지난 1993년부터 지금의 충북 참여연대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했는데 하다 보니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변화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쭉 하다 보니 19년을 참여연대에서 일을 했고 참여연대에서 활동 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시민단체들이 활동하는데 있어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고 또 지속 가능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단체는 상대적인 사회적 약자들 또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하는데 반대로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곳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시민단체를 원할 수 있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 끝에 이제 충북시민재단을 창립을 하게 됐습니다. 충북시민재단에서는 주로 재정적 지원도 있지만 역량 강화라든가 또 정부와의 거버넌스에 관한 일들을 6년간 해왔습니다.

이후 청와대에 가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 3년간 시민사회수석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처음 1년여 동안은 갈등 관리를 주로 담당하는 사회조정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했고 나머지 2년은 제도개혁비서관실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곳은 주로 정부 혁신과 지역사회 혁신 그리고 민원 제도 개혁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었는데 저는 정부를 국민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일하는 정부를 만들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경험도 하고, 일을 시행해 보기도 하면서 제도적 권한을 가지고 제대로 방향을 잡고 일을 하면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그동안 제가 꿈꿔왔던 그런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더 크게 기여할 수 있겠다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제가 청주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프레시안 : 지난 2022전국동시지방선거에 처음 도전하면서 현직 청주시장을 당내 경선에서 누르고 본선까지 직행했고, 본선에서 41.6%의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는 것은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22대 총선에 출마할 것인지 아니면 2026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다시 청주시장 후보로 출마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송재봉 : 짧은 시간에 준비해서 도전한 것에 비해서는 그래도 본선까지 갔으니까 잘한 거죠. 현직 시장과 경선을 해서 이겨서 본선까지 갔으니까 나름대로는 좋은 정치적 자양분은 됐지만 그럼에도 패배는 역시 아픔도 있고 또 나름의 좌절도 또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그 시점에 여러 가지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많은 분들은 시장에 나왔으니 4년 후에 시장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요구하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고민은 시민운동에서 꿈꿨던, 적어도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고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제가 기여하고 싶다는 그런 꿈에서 그 꿈의 도구로 사실은 시장이고 정치고 를 선택했다는 관점에서 보면 시장을 또 하는 것과 아니면 더 크게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의미 있을까였습니다. 이것을 놓고 국회의원도 그만큼 그보다 더 크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회의원은 국정을 개혁할 수도 있고 또 지역에서는 지역에 더 좋은 그런 풀뿌리 정치인들을 발굴하고, 성장시켜서 저 한 명이 아니라 저와 비슷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에서 정치를 같이 한다고 하면 오히려 더 크게 우리 지역사회가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좀 고민을 해서 이번에 국회의원에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송재봉 국회의원 당선인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경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프레시안(김규철)

프레시안 : 조금 불편할지 모르겠는데 NGO 활동을 하다가 청와대로 갔다 즉 NGO가 GO로 바뀌는 순간이거든요. 그 부분에서 이제 혹자는 GO로 가기 위해서 NGO 활동을 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고요. 반대로 지피지기이면 백전백승이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당선자께서는 어떤 관점으로 보셨습니까?

송재봉 : 글쎄요. (제가 근무했던 자리가) 정부의 정무직 공무원이고 그걸 목표로 했다면 시민단체에서 25년간 일을 했을까요? 반대로 저는 그 이전에도 선출직 한 제안이 여러 분도 있었지만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도 연륜이 되고 보니 시민단체가 우리 사회의 소금 같은 역할을 하고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뛰는 노력은 굉장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 것은 분명한데 그것만으로는 우리 제도가 제대로 바뀌고 또 바뀐 제도가 제대로 시행이 돼서 실질적인 시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정부가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고민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이런 문제의식과 고민을 제가 직접 제도적 권한을 가지고 일을 좀 해보고 싶다, 그렇게 직접 일을 통해서 정말 우리가 꿈꿨던 그런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들이라든가 또는 생태적이고 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라고 하는 그 가치를 그래도 실현하는 수단으로는 오히려 이런 정부와 또 정치의 영역이 훨씬 더 좀 중요할 수 있겠다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프레시안 : 제가 예전에 제주도의 NGO에 대한 기획 취재를 해보니까 제주도가 제주특별자치도로 바뀔 때 제주참여자치시민연대, 제주꽃자왈, 제주경실련 등 4개 시민단체가 조례를 입안했다고 들었어요. 시민단체에서 조례안을 모두 만들어서 의회에다 줬고 의회에서 그냥 통과만 시켰다는 겁니다. 어떻게 시민단체가 그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를 알아봤더니 시민단체마다 각각 1천 명 이상의 회원을 갖고 있고 보조금을 10원도 안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즉 매월 1천만 원 이상의 회비가 들어오는 거죠. 그러니까 원활하게 마음대로 이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근거가 된 겁니다. 그걸 알고 나니까 바람직한 어떤 NGO 활동을 하려면 보조금을 받지 않고 자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원님은 직접 경험자로서 또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재봉 : 제가 처음에 청주시민단체에서 일을 할 때는 회원 수도 적었고, 일하는 사람도 부족했고 그러니까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사업비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유지하는 것도 어렵고 힘든 상태였으니까 급여도 못 주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그래서 사업을 하기 위해 그 당시에 몇 년 동안 정부 보조금을 좀 받아서 집 찾기 운동, 아파트공동체운동 등에 사용해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보조금을 받고 집행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면서 원래 시민단체가 지향하려고 했던 본질적인 문제를 오히려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100% 완벽하게 보조금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행정적인 한계도 있고 그때그때 좀 보조금 사용에서 정산 이게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활동가들이 그 보조금 정산하는 데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우리가 2001년쯤부터 시민단체에서 참여연대로 명칭도 바꾸고 그때부터 보조금을 안 받겠다고 선언을 했던 거잖아요. 불가능할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그때 보조금 비중이 전체 예산에서 거의 한 50%가 됐으니까…. 그 당시에 우리 상근 활동가가 5명이었는데 갑자기 보조금을 받지 않고 5명 모두를 유지하고 간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 살아남았고, 회원이 늘어나고, 회원들의 책임성이 높아졌습니다. 활동이 훨씬 역동적으로 바뀌고 그렇게 해서 충북참여연대가 지역에서 그래도 스스로 자립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로 이렇게 전환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정권에 따라서 어떤 정권은 그래서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서 우호적이고 수용적인 정권도 있고 어떤 정권은 완전히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정권도 있기 때문에 정부의 어떤 재정을 의존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지속 가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 자립적인 형태로 운영하는 시민단체로 가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고 또 그렇게 지향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했고요. 지금도 사실은 충북참여연대에서 보조금을 받지 않고 운영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 형태로 가는 게 저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단체의 성격에 따라 좀 다르긴 해요.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고, 견제하는 거지 그 조직의 정체성이 있는 단체는 (보조금을) 받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시민을 향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단체들은 더 많은 재원을 민간에서도 가져오면 정부에서도 가져와서 이걸 합쳐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되니까 이런 단체들은 정보와 파트너십도 중요하고 이런 단체들은 또 그 단체의 특성에 맞게 또 보조금을 활용하는 것도 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프레시안 : 네. 이번에는 청와대 근무 당시 이야기 잠깐 할까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요. 경험이라고 할까요? 어떠셨습니까?

송재봉 : 시민단체에서 볼 때는 이게 옳고 그름의 관점 많이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것이 우리 사회 미래의 가치라든가 사회 정의라든가 또는 환경이라든가 이런 여러 측면에서 옳으냐 그르냐를 따졌을 때 옳다고 보면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주장하는 거죠. 요구하고, 그 관철을 위해서 싸우기도 하고…. 이것이 시민단체의 관점이고 또 그 역할이 본래 목적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정부는 실현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과 정책이 시행됨으로써 이익을 보는 집단과 그로 인해서 불이익을 보는 집단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이 양자에서의 균형점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라는 보다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야지만 정책이 안착하고 성공하는 거죠. 그러니까 크게 보면 관점의 전환이라고 봐야 되겠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넘어서 그 문제가 실현되고, 정책으로 안착되고, 집행되는 것까지를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정책을 설계해야 된다는 그리고 그런 것이 특정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적 단위에서 그것이 어떻게 실현 될 것인가, 지역에 있는 어떤 편차까지도 다양하게 고려하면서 그런 정책을 내야 된다라는 그런 면에서의 어떤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 거죠.

그러면 이제 정책을 할 때 늘 그 정책이 좋은 면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을 늘 같이 보는 그런 어떤 관점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런 것이 아마 제일 좀 차이가 아니었을까라는 거였죠.

그리고 또 하나는 저는 역시 정책이 잘 정착하고 실현되려면 어 왔어 특히 정부는 거버넌스라고 하는 관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부의 관료들도 자기 관성대로만 일을 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주어진 예산과 정책을 가지고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만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이 관료들의 일정한 마인드이고 그래서 민간에서는 뭔가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계속 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과 불신이 있는데 양자가 길게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들고 한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같이 토론하면 조정이 되더라고요.

장기적인 신뢰를 가지고 GO와 NGO가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잘 만들어서 운영하면 많은 정책이 불가능할 것 같은 것들이 타협 되고 조정 돼서 실현 단계까지 넘어가는 걸 보면서 결국 우리 사회의 갈등 관리라고 하는 것도 이런 협치의 관점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프레시안 : 지금 말씀을 들어보면 NGO 활동 그다음에 청와대에서의 경험 이런 것들이 정치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결론을 갖게 되거든요. 이제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내 디시는 건데 앞으로의 활동 계획,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는 정치를 하겠다 이거에 대해서 한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송재봉 : 이제 제가 정치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공익의 관점 정치도 역시 공공의 도구잖아요. 그 공공성의 가치를 우리 사회가 좀 확장해 가야 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과도하게 사익 추구적 관점 경쟁 이런 것이 굉장히 치열한 나라 세계에서 아마 가장 그런 경쟁이 치열하고 사익 추구의 관점이 강하고 그래서 공공성이라고 하는 가치가 상당히 무너져 있는 사회다. 그런데 제가 늘 공공성을 정의할 때는 국민 다수의 이익이면서 사회 약자의 이익이어야 된다. 이 지점이 저는 공공성의 가치의 핵심이다 이렇게 봤는데 정치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관점에서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되고 또 그런 관점에서 기존의 법과 제도를 좀 살펴보고 또 새로운 법을 위반할 때도 그 관점에 기초해서 접근해야 되겠다. 그래서 그것을 놓쳐버리면 이제 사적 이해관계와 다양한 그런 로비에 의해서 정책이 왜곡되기도 하고 또 국민들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소수의 이익이 가지고 다수에게 불이익이 가는 그런 어떤 정책들이 집행되기 때문에 그 관점을 저는 놓치지 않으려고 생각을 합니다.

프레시안 : 아직까지 한 번도 안 여쭤본 질문 좀 할게요. 가족 얘기를 한 번도 제가 모은 적이 없어 NGO 활동가로 25년 활동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가정 경제에는 막대한 피해를 주셨을 것 같아요. 사모님은 그만큼 힘들어하셨을 것 같은데 그렇죠 어떻게 보면 이제 국회의원 당선이 하나의 결실을 맺은 거로 볼 수도 있고요. 그동안 아내한테 또 아빠로서 미안한 마음도 많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가족들 소개 좀 해 주시고요. 무슨 일 하시는지 또 이 자리를 빌어서 가족들한테 한 마디해주시죠 .

송재봉 : 저희 아내는 굉장히 활동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대학 시절에는 총여학생회 회장을 했었고 그리고 여성운동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그래서 제가 결혼한 초기에는 그런 단체 활동도 좀 일시적으로 했었어요. 하지만 제가 시민운동 활동가로 쭉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제가 주가 될 수밖에 없게 됐죠. 제가 활동하면서 우리 식구는 자연스럽게 가정 경제의 상당 부분을 책임을 져야 되는데 저희가 청주대 같은 과 커플이에요. 제가 4학년 때 이제 아내가 1학년으로 입학해서 만나게 됐어요. 그때부터 인연이 됐는데 제가 계속 두 번 구속이 됐고,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약혼녀로 옥바라지를 했어요. 어쩌면 본인보다는 저를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면서 살아온 삶이었죠. 초기에는 그러다 보니까 전문적 직장을 갖기는 좀 어려워서 보험설계사로 일을 하다가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에서 학교 급식과 관련돼서 급식 관련된 일을 했고 나중에 가장 긴 기간동안 일한 건 구몬학습지 교사로 일을 했어요. 그게 굉장히 고된 일이거든요. 학습 지도사를 거의 20년 가까이 해온 거죠. 그렇게 해서 가정 저야 뭐 수입이 적기도 하고, 들쑥날쑥하고 그래서 제가 정말 쓰는 것도 그랬는데 식구가 그렇게 좀 잘 챙겨줬어요.

아이들은 둘인데 큰 애가 딸이고 작은 애가 아들인데 그래도 둘 다 잘 또 키워서 다행히 우리 딸은 또 그런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있어서 대학 시절부터 YWCA 활동을 계속 해왔고 지금도 중앙회 이사로 있어요. 회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일을 해왔고 얼마 전까지는 도종환 의원실에서 비서로 일을 했었습니다. 아들은 현재 이제 군대 갔다 와서 고려대학교 영문과에 다니고 있어요.

▲송재봉 국회의원 당선인이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웃고 있다 ⓒ프레시안(김규철)

프레시안 : 당선됐을 때 사모님한테 뭐라고 인사하셨어요?

송재봉 : 글쎄 별로 이상 이제는 뭐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굉장히 긴 시간을 살아왔으니까 굳이 말을 안 해도 눈빛만 봐도….(웃음)

프레시안 : 무뚝뚝한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군요.

송재봉 : 제가 당선되던 날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모습을 보고 저보다 우리 식구가 더 기뻐하는 것 같더라고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워낙에 성격도 활달하고 활동적이고 선거운동하면서도 워낙 좀 여러 사람과의 친화력이 좋거든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저기 후보를 바꾸는 게 낫겠다라고 할 정도였죠. 그렇게 정말 열심히 헌신적으로 운동을 해줬고, 아이들도 그랬고 그것도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시장선거에 출마했다 낙선되고 나서 그걸 극복하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얻는 것, 가족들의 지지와 믿음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담 / 김규철 대전세종충청본부 편집국장

정리 / 문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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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대전세종충청취재본부 김규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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