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와 노회찬재단은 2023년 1학기부터 200여 명의 학생이 듣는 교양강좌 '후마니타스 특강 :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를 협력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노회찬재단이 <한겨레신문>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연재 칼럼 '6411의 목소리' 필자를 매주 한 명씩 모셔 한 학기 동안 특강으로 운영합니다.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6411 당사자들이 청년들에게 전해주는 자신의 삶과 노동 이야기를 <프레시안> 지면으로 중계합니다.
여섯 번째는 오주연 힐데와소피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돈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이를 함께할 동료를 모으며 출판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습니다.
저는 5년 전에 출판사를 창업했고 주로 기획과 편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일에 대한 제 생각, 거창하게 얘기하면 제가 일에 대해 갖는 가치관과 철학이 출판사를 창업하는 데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한 중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는데 학생이 물어보는 거예요.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출판사를 하는 게 꿈이었나요?'라고요. 사실 저는 출판 일을 꿈꿨던 적이 없어요. 그 중학생의 질문을 듣고 나서 새삼 어릴 때는 '소방관'이나 '의사'처럼 특정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저도 학생 때는 분명히 장래 희망을 고민했을 텐데, 그때 생각했던 것과 지금 하는 일은 너무나 다르더라고요. 사실 제 주변을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교 때 생각했던 직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직업'이 아닌 '일'에 대한 고민
저는 20대부터는 직업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해 왔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하면 소방관이 하는 구체적인 일이나 상황보다는 직업 자체를 생각하곤 하잖아요. 또는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고 해도 거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지는 보통 상상해보지 않아요. 그리고 꿈이 되는 직업들을 생각해 보면, 굉장히 소득이 높거나, 혹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의미가 있는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어떤 직업은 절대 꿈이 되지 않고, 어떤 직업은 웬만하면 피해야 된다고 여겨져요. 그런데 사실 누군가의 꿈이 되지 못하는 직업이 세상을 굴러가게 해요. 그럼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된 걸까요? 모두가 장래희망이었던 일을 하지는 않아요.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선망하고 도달해야 하는 어떤 목표가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주변을 보면 마흔이 돼도 이직을 하고, 직업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요. 직업을 가졌다고 뭔가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내가 몸을 움직여 어떤 행위를 하는 이상 일을 안 할 수는 없어요. 저는 노는 것도 취미도 때로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취미가 굉장히 전문적일 수도 있어요. '덕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일 수도 있죠.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행운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직업에 도달하고자하는 목표보다도, 자신이 보다 지속적으로 하고 싶고 선택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것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일을 좋아하더라도 그 일이 꼭 특정 직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어요. 제 학생 시절 꿈은 성우였어요. 어릴 때부터 목소리를 사용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했어요. 별로 크게 떨지도 않았고요.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많이 봐서 성우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꿈꿨어요. 대학 진학 후 성우와 관련된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대학 방송국에 들어갔고요. 1년 정도 아나운서를 하고 나왔는데, 실력의 한계도 느꼈지만, 방송이라는 시스템과 조직이 저의 성향과 너무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목소리를 사용하고 연기를 하는 일을 하려면 방송국 혹은 방송계라는 시스템에 들어가 관계 맺고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을 견뎌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직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 때문에 성우라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거예요. 그리고 반드시 그 직업이어야만 목소리를 사용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저는 제가 목소리를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 성우라는 직업을 반드시 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일의 대가는 돈뿐일까
저는 직업과 그에 따르는 대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어요. 대학생 때부터 과외를 오래 했는데요. 과외비를 책정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시장에서 용인되는 과외비의 수준이 대충 있잖아요. 처음에는 저도 그 수준에 맞춰 과외비를 받았죠. 그런데 학생이 어느 정도 공부하는지, 숙제를 얼마나 해오는지 등에 따라 제가 들이는 노력이 너무 달라지는 거예요. 어떤 친구는 너무 수월해요. 그러면 과외비를 많이 받는 게 미안해요. 그런데 어떤 친구는 숙제도 안 해오고, 공부도 너무 안 하죠. 그러면 더 받고 싶어지죠.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테스트를 하고 학생의 수준과 태도를 파악한 뒤에 과외비를 조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과외를 또 몇 년 하다 보니 이번에는 집의 생활상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어떤 냉장고를 쓰는지, 방이 몇 개인지, 장판이 어떤지, 벽지 색깔이 어떤지만 봐도 그 집의 생활 수준이 눈에 들어와요. 그러면 고민하게 되죠. '과외비를 좀 더 깎아야 하나?' 반면 역세권의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집이라면 '한 5만 원 더 받아도 되겠는데' 이런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애초에 과외비는 왜 다른 일보다 시급이 이렇게 높을까요. 서비스업도 해봤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과외보다 힘들었어요. 그럼 제 기준에서 봤을 때는 서비스업이 더 시급이 높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 외에 대학원 조교도 해보고, 문서와 영상 편집도 해보고, 시민단체 활동가도 해보고, 여러 일을 해봤지만 그때마다 이 두 고민은 이어졌어요. 내가 하는 일은 반드시 특정 직업이 되어야만 하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대가는 어떻게 책정되어야 정당한가?
그러다 소스타인 베블런이라는 화폐와 금융의 흐름에 대해 연구한 미국의 경제학자를 알게 됐습니다. 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해요. '임금은 시장의 합리성이 아니라 화폐의 사용과 흐름을 주도할 힘과 기술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곤 한다.' 이 말에 따르면 특정한 일이 많은 대가를 받는 것은 그 일이 더 힘들거나 더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돈이 거기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저는 시장의 흐름을 주도할 힘과 기술이 없고, 많은 돈이 몰리는 일에 큰 매력을 느끼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 흐름에서 벗어나 내 일의 대가를 제대로 평가받을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수익은 있어야겠지만, 내가 하는 일이 충분한 금전적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일로 인해 내가 얻고자 하는 다른 대가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본 거죠.
제가 얻고자 하는 대가 중 하나는 일의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이었어요. 저는 월급으로 제가 한 일을 보상받는다고 느끼기보다 일의 결과물이 만족스러워야 행복감을 느끼더라고요. 그리고 재미도 있어야죠.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그런 일을 추구하는 편이었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했어요. 그래서 동료를 직접 선택하고 싶었고요. 일에 대한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찾아 같이 한번 수익을 창출해 보자고 도모하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의의를 두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었어요.
또 하나는 다음 일에 대한 기대감이었어요. 사실 저에게는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기도 해요.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이 일은 다시는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지속적으로 다음 일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금전적으로는 대가가 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사실 이런 얘기는 지금 세상의 문법하고는 맞지 않는 얘기인 것 같아요. 현재 사회에서는 어차피 일은 힘드니까 돈을 통한 보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돈이 많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돈이 많아져서 얻는 자유는 그 돈에 따라오는 권력과 힘을 부릴 능력이 커져서 생기는 자유라고 생각해요. 돈을 통해 권력과 힘을 가져 다른 사람을 부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 삶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돈은 적더라도 내가 내 삶을 자유롭게 꾸리고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영역을 늘려보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사를 창업하고 첫 책을 만드는 작업에서 느낀 재미
저는 내 일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뒤에서야 어떤 분야로 창업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여러 기준을 두고 생각했죠. 칭찬을 많이 받은 일,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 학창시절에 좋아한 과목도 영향을 많이 미쳤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살면서 칭찬을 많이 받은 일을 생각해 보는 것 같아요. 보통 창업을 하려고 하면 남들보다 잘하는 일을 생각해보지만 결국 그것도 주관적인 거잖아요. 저는 잘한다고 칭찬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던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수 있고요.
혼자 창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함께 일할 파트너를 고민했고, 가용 가능한 자본, 월급을 안 받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얼마나 되고,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등. 이런 것들 면밀히 고민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당시 함께 일할 파트너의 의견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파트너가 대학 시절에 잡지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출판 일을 제안했고. 저도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생각을 자유롭게 담는 도구로 책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출판업을 5년째 하고 있는데, 5년이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행히도 출판에서 하는 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발간한 첫 책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첫 책은 <나는 통일을 OO합니다>라는 책입니다. 저는 북한학과 평화학 공부를 했는데요. 공부를 하면서 제가 통일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굉장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저 같은 사람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나 단어가 별로 없어요.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사람은 보통 통일까지 찬성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고요. 통일을 반대한다고 하면 북한을 싫어하고 남북 관계 개선도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죠.
제가 출판 일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일한 비영리 법인에서 했던 일 중 하나가 통일교육이었습니다. 보통 통일교육을 하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고 러시아까지 갈 수 있다, 북한의 자원을 이용해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우리나라 경제적으로 더 번영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가르치는 게 싫은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분단된 지) 너무 시간도 오래 지났고 통일을 반대하는 젊은이도 많아지고 있는데, '왜 그 사람들의 입장을 더 듣고 그들에게 언어를 주지 않을까?', '왜 우리는 기존에 통일에 대해서 정해진 언어들만 계속 사용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통일에 찬성하는 분들도 다 다른 통일을 얘기해요. 북한을 쫓아내는 통일부터 북한을 포용하는 통일까지 다양하죠. 연방제나 흡수 통일 등 그 형태도 일정하지 않고요. 통일교육이 이런 이야기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나는 통일을 OO합니다>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기반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을 여섯 가지로 정리했어요. 책을 읽으며 어떤 입장에 동의하는지 선택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임북 형태를 띠는 일종의 가이드북이에요. 짧은 정보를 주고 독자가 질문에 대한 의견을 정하면 페이지를 이동해 새로운 질문을 만나게 하고, 그 질문에 다시 대답하게 하죠.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에 가장 가까운 남북관계의 형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2부에서 또 질문을 던져요. 이처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내용과 방식을 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이라는 매체는 제가 직접 강의를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한 몫했고요.
출판 일의 핵심, 기획과 편집
첫 책이 일종의 게임북 형태를 띠다 보니 기획과 편집이 많이 들어갔어요. 그러면서 제가 기획과 편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출판에서의 기획과 편집의 특징은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기획과 편집을 즐기는 마음이 출판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해요.
기획은 한정된 형식에 무슨 이야기와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담을지 고민하는 일이에요. 저는 학창 시절부터 학교 축제부터 간단히는 스승의 날 파티까지, 이런 걸 기획하는 걸 좋아했어요. 성인이 된 후에도 어떤 커뮤니티에서든 늘 그런 일을 조금씩 도맡아 했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일할 때도 프로그램을 짜고, 계획하고, 섭외하고, 진행하고, 확인하고,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을 좋아했어요. 사실 기획 일을 담을 수 있는 직업은 여러가지에요. 연예 기획사는 연예인이나 공연을 통해 기획을 하고, 축제 기획사는 축제를 통해 기획을 펼치겠죠. 출판은 그것을 책에 담고요.
기획이 일의 틀과 내용을 정하는 일이라면 편집은 수정하고 보충하는 일에 가까워요. 어떤 콘텐츠를 타인에게 잘 읽힐 수 있도록 하는 일이죠. 회사에서 쓴 보고서를 모아서 하나의 완벽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일을 예로 들 수도 있겠네요. 저는 대학원에 있을 때는 논문 편집을 했고, 회사에 있을 때는 영상 편집 일을 했어요. 출판사에서는 책 편집을 하게 된 거죠. 기획에서는 구조화하는 능력이, 편집에서는 내용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언어를 찾는 능력이 중요해요. 내용을 삭제하고 보충해 간결하게 의견을 표현하고, 이를 문장으로 잘 표현하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첫 책을 만든 후 다음 책을 내기로 결정했고, 그러다 보니 여섯 권의 책을 냈어요. 저는 이전에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서 보편적으로 출판사에서 사용되는 어떤 문법은 잘은 몰라요. 장단점이 있겠지만,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기획이란 어떤 일인지 편집이란 어떤 일인지를 스스로 고민하고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적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책을 내면서 수익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제 출판사에서 일하다 보면, 돈이 없어도 일에 대한 권력을 제가 오롯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책을 내고 싶은지와 관련해서 제 관심사를 계속 쫓을 수 있죠. 저는 거기에 우위를 두고 있어요. 또 책임도 오롯이 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관리할 능력도 높아진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너무 돈이 되지 않나'라는 질문은 계속 들어와요. 특히 주변에 저를 걱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많은 어른들로부터요. 저는 그럴 때면 '책을 안 사 주셔서 장사가 안 된다'고 이야기하죠. 그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니 더 이상 그 질문 안 하시더라고요. 사실 10대 때부터 돈을 잘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 왔잖아요. 우리 모두 그 얘기만 들어왔지, 나를 표현하고 내가 선택하는 일을 하라는 이야기는 잘 듣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일'에 대해 생각해 본 경험도 적고요. 하지만 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점점 더 알아가려는 의지와 그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각오만 있다면 수익이 적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힐데와소피'는 저한테는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이죠. 출판도 하고, 강의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주제로 연구도 하고요. 혼자 했으면 못 했겠지만 마음이 맞는 파트너를 만나서 이런 일을 시도할 수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아서 내가 하는 일의 영역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조금 뜬금없지만 첨언하자면 무슨 일을 하든 가사노동도 내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의 영역으로 여겨야 해요. 어떤 일을 하든 반드시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동료를 늘리는 삶의 즐거움
'힐데와소피'는 매해 목표를 새롭게 세웁니다. 보통의 회사라면 매출 목표를 중심에 둘 텐데, 저희는 그해에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일을 더 중요한 목표로 세워요. 책을 몇 권 만들자 이런 정량적인 목표를 떠나 어떤 관심사를 갖고 1년 동안 같이 소통할까를 고민하는 거죠. 동료들과 함께 출판사를 제 마음에 맞는 곳으로 좀 더 이끌어가는 데 주목하며 일하고 있어요.
올해의 목표는 '너 내 동료가 돼라'예요. 어릴 때 만화 <원피스>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원피스에서 루피가 동료를 한 명씩 모아서 배를 타고 바다를 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좋은 동료들이랑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힐데와소피'는 두 명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다른 크루들도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과 함께 더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또 의미 있는 결과물도 내는 것이 올해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둘 수집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뭔가 특정한 직업을 찾기보다는 저처럼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게 좋아', '이런 일을 할 때 재밌네' 혹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금전적 대가가 아니어도 뿌듯함이 느껴지는 경험과 대가들을 조금 많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는 것 같아요. 자칫하면 제 말이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처럼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내가 나를 잘 관리해서 효율적으로 일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요. 하지만 우리는 기업이 아닌 사람이잖아요. 나를 완벽히 관리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같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데 중점을 두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동료를 모으고, 또 이를 통해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삶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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