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내내 대변인을 맡아 노무현 대통령의 최 측근 인사 중 한사람으로 활동해온 김종민 의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그가 탈당 후 새로운미래의 공동대표를 맡았는가 하면 2선을 한 지역구를 떠나 세종시갑선거구에 출마해 당선하는 영광을 안았다. 새로운 당에서의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김종민 국회의원을 만나 그동안의 과정과 세종시를 위해 하려는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 편집자
프레시안 : 기존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지역구를 뒤로 하고 세종에 오실 때는 그만한 어떤 포부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종민 : 일단 제가 처음에 여기 오게 된 거는 충청도에서 출마를 해야겠다. 충청도의 가장 상징적인 지역구가 세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 충청도를 대표하는 도시, 충청도를 대표하는 선거구를 세종이라고 생각한 거고 두 번째는 마침 여기가 노무현의 도시고 제가 노무현의 대변인을 지낸 입장에서 정말 노무현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 달리는 게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제가 8년간 국회의원을 하면서 제일 많은 투자를 한 게 개헌하고 선거법입니다. 개헌 특위도 들어가고 정개특위도 들어가고 선거법 개정 그러면 여야를 막론하고 김종민이 제일 앞장서서 했다라고 얘기를 의원들이 다 할 정도로 제가 여기에 몰두를 했습니다. 사실 이는 노무현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운 거죠. 이러한 제왕적 대통령 권력 그리고 국회의 승자독식 권력. 이 것을 깨지 않고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또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뭔가 민생 미래를 해결하는 정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싸움만 하고 한 쪽은 독주하고 다른 한 쪽은 발목잡기 하는 이러한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저는 정치개혁 정치개혁에 던져왔는데 그 정치 개혁 중에 하나가 사실은 수도권 지방 상생입니다. 수도권 권력의 집중, 중앙 권력의 집중을 어떻게 분권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노무현 정신은 제왕적 대통령제 그리고 제왕적 승자독식 국회 권력, 과도한 중앙집권 등의 분권 이 3가지를 위해서 정치를 한 셈이거든요. 이러한 대명제를 놓고 주장하는데 있어서 특히 분권 발전에 대해 논하면 세종시가 대한민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입니다. 그래서 제가 뭔가 할 말이 있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그런 지역구가 세종이었습니다. 충청을 대표하는 그런 상징성 그리고 분권 발전이라고 하는 노무현 이어달리기 이 두 가지 면에서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을 했고요.
반대로 그에 앞서 제가 왜 기존 지역구에서 출마하지 않았는지가 설명이 돼야겠죠.
기존 지역구를 벗어나서 다른 곳을 택하기로 해서 세종을 택한 거지 원래는 당연히 자기 지역에서 나오는 것이 맞겠죠. 그런데 제가 탈당을 했고 탈당을 했을 때 선거에 출마하려면 기존 지역구에서 나오는 것은 좀 안 되겠다는 생강에 불출마를 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당내에 여러 가지 당내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는데 당의 혁신에 대해서 얘기를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선거 때는 불출마하는 게 맞다고 봤어요. 선거 때까지 계속 끊임없이 하면 결국 윤석열 정권을 도와주는 길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불출마 결심을 했는데 근데 세상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탈당을 하게 되고 또 신당을 만들게 됐습니다.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다보니 신땅까지 오게 된거죠.
그러나 신당 이름으로 기존에 출마했던 지역구에 출마하면 보수세가 강한 지역 특성상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번에 선거 결과를 보면 아시지만 거의 뭐 1~2% 차이로 민주당이 승리한 지역입니다. 후보가 괜찮으면 이겨봐야 1~2% 또는 2~3% 이기는 지역이었습니다.
프레시안 : 어떻게 보면 친정(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예의 차원도 좀 있었지 않았겠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김종민 : 그렇죠. 특히 저를 지지하고 도와줬던 당원들 그 지지자들이 제가 기존 지역구에 출마하면 그중에 절반 이상은 저를 지지할 거 아닙니까? 그랬을 때 그분들이 이제 엄청난 부담이 있겠죠. 하지만 의리 지킨다고 저를 또 지지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워지는 것이 저는 새롭게 도전한다고 해서 좋은데 제 주변에 저를 아끼는 분들까지 같이 가기에는 부담이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세종)는 그렇지 안잖아요. 저하고 개인적 관계 때문에 지지하는 분들은 없을 거예요. 제 노선이나 정치적인 방향이 옳아서 지지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거는 상관이 없는 거고요. 그런 점에서 제가 기존 지역구인 논산계룡금산에 출마하는 거는 어렵다고 봤고 그래서 제가 새로운미래에서 저는 불출마하겠다고 얘기를 했는데 당에서 엄청나게 반대를 많이 했어요. 특히 당직자들 당 대표가 불출마를 하면 당이 너무 위축된다, 승패에 관계없이 꼭 나가서 선전을 해야 된다, 이낙연 대표도 광주에 나간다고 하니 당신도 출마를 해야 된다는 등의 권유해주셨습니다. 많은 권유와 지지를 받고 보니 그 말도 맞다고 판단돼 세종으로 옮겨 출마하게 된 것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래서 세종에서의 출마를 결심하게 되신 건가요?
김종민 : 가장 상징적인 곳, 당을 위해서 가장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를 놓고 생각하다가 용산에 가서 윤석열 심판을 외치는 것도 방법이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게 저하고 이렇게 매칭이 될까 이런 점에서 좀 약간 의문이 생겼고요.
제가 충남도 부지사도 했고 또 충청도에서 국회의원 두 번 했으니까 충청을 떠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게 좋겠다. 그래야 나름대로 명분도 있고 충청을 대표하는 도시가 어디냐는 것을 생각했을 때 대전도 아니고 천안도 아니고 세종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거는 여기서 미래를 얘기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분권 발전이다. 분권해야 대한민국 선진국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선거에서 당선이 되든지, 안 되든지 분권해야 선진국 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수도 완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종이 그 방아쇠 역할을 할 겁니다. 세종 행정수도 완성해서 분권 선진국으로 갑시다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던 거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는 당락에 대해서 마음이 조금은 부담이 덜한 상태에서 왔습니다.
프레시안 : 재선의원이기는 하지만 세종에서는 첫 출마였기 때문에 막상 출마했을 때 부담도 크지 않았나요?
김종민 : 여기 와서 보니까 3파전이 된 거죠. 오히려 그때는 마음이 편했어요. 제가 처음에 여론조사를 해봤을 때 당으로 하니까 10% 대가 나오더라고요. 반면 인물만 놓고 인물 경력을 2개씩 놓고 인물 중에서 어떤 인물이 가장 국회에 적합하느냐 하고 여론조사를 해보니까 제가 22%가 나오고 1위가 민주당 후보인데 저와 한 자릿수 차이밖에 안 나더군요. 그래서 이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래서 한번 인물론과 분권 선진국 메시지로 한번 가보자 하고 이제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프레시안 : 민주당 후보가 공천을 받고도 제명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유권자들은 물론 후보자도 혼란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당시 민주당 후보의 탈락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셨나요?
김종민 : 시간이 흘러서 점점 이제 양당 결집 구도가 강해지니까 쉬운 싸움은 아닐 거라는 판단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선이 안 되더라도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 다음에 정말로 바라는 대로 제가 당선이 되면 좋고, 당선이 안 돼도 여기는 결국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걸로 봤고 국민의힘이 당선될 가능성은 없다고 봤어요. 만약에 제가 나와서 국민의힘이 당선될 것 같다 그러면 저는 민주당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고 당내에서도 얘기를 하고 이쪽 그때는 경선이 안 끝났을 때인데 이쪽에 있는 후보 쪽에 있는 민주당 후보 쪽에 있는 분들하고도 제가 그런 얘기를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전달을 했고 그 중간에 그런 후보 단일화 논의를 중간에서 다리를 놓겠다 이런 분들도 제가 아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제 민주당 후보가 탈락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저도 상당히 당황스러웠어요. 저한테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서 상당히 예상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습니다. 2~3일 지나니까 잠이 잘 안 오더군요. 왜냐하면 3명이 출마했을 때는 제가 당선되면 좋고 제가 안 되더라도 민주당이 될 것 같고 만약에 안 될 것 같으면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면 명분도 있고 정말 괜찮은 선거를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양자 대결이 되면서 제가 진다면 국민의힘이 당선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또 민주당 분들이 저를 100% 찍어준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국민의힘은 이미 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정당이 현직 시장이 국민의힘 시장이고 민주당 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러면 쏠림이 국민의힘으로 쏠림이 일어나면 이건 어려워지는 건데 그래서 내가 지면 민주당 최고위원까지 한 사람이 여기 와가지고 결국 세종이라고 하는 민주당 우세 지역에 와서 국민의힘에 헌납했다는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전에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 민주당원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대했는데 그다음에는 체면을 차리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의 소신을 굽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민주당에 있는 분들과 함께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를 이어가겠다는 것을 강하게 설득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프레시안 :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어떤 인연으로 함께 일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김종민 : 노무현 대통령은 제가 내일신문과 시사저널 기자를 하는 동안 가장 주된 취재원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서 제가 많이 공감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안희정, 이광재가 제 대학 친구들이었는데 그 두 친구가 노무현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취재하다가 시간 남으면 편하게 갈 수 있는 데가 노무현 의원 사무실이었어요.
기자 생활하면서 친분이 두터워졌고 또 두 친구하고는 개인적으로도 가까워 제일 가까운 사이로 지내면서 취재와 인터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 총선 때 노무현 후보가 기존 지역구인 종로에서 부산으로 지역구를 바꿨잖아요. 상당히 무모한 도전 이었죠. 그때 제가 기자 시사저널 기자를 했는데 제가 그때만 해도 노무현 후보나 주변 참모들하고 되게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저한테 이제 상의를 하거나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 주변 참모들이 다 반대했습니다. 유일하게 안희정 지사만 부산 내려가는 거에 찬성을 하더라고요.
노무현 후보가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찬성했어요. 의미 있는 도전이다. 지금까지 노무현이 해온 정치하고 부합이 된다. 그리고 저는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는데 출마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되게 훌륭한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예상과 달리 노무현 후보가 낙선했어요. 그런데 낙선하는 걸 보면서 저는 노무현이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에 전국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딱 떨어진 그날 이제 개표 끝나고 바로 그날 제가 전화를 해서 낙선한 노무현의 이야기에 대해 여성지든, 시사지든 인터뷰를 다 잡으라고 했어요. 시사저널에서 인터뷰를 한번 잡을 테니까 내가 지금 오늘 내려가겠다. 빨리 시간 좀 잡아줘라 그랬더니 노 의원이 정치 그만둔다고 인터뷰는 무슨 인터뷰냐고 안 한다는 거요. 그래서 무조건 잡으로고 하고 바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노무현 후보가 “김 기자 여기까지 뭐 하러 왔노. 나 정치 안 할란다. 그냥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면서 인터뷰를 안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냥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인터뷰라는 게 대화하는 거니까. 제가 “노 의원님은 이번에 대통령 선거 운동한 거예요. 정치는 대의명분인데 이런 대의명분이 어디에 있느냐. 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미안해할 것 같다. 꼭 정치를 다시 하셔야 된다” 그랬더니 이 양반이 막 지쳐갖고 눈이 약간 풀려 있었는데 제 얘기를 듣고 눈이 반짝반짝 하는 거예요.
담배를 무시고는 “그렇게 볼 수도 있나” 그러면서 이제 당신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어요. 인터뷰를 아주 많이 했어요. 제가 인터뷰 기사를 쓰고 서울에 올라오는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당신이 편지를 하나 쓰겠다는 거예요, 일반 국민들한테. 그러니 편지도 좀 검토해봐달라고. 그 편지 내용이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건 현재에 원망하지 않고 정말 다시 뜻을 세워서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 자기를 던지겠다는 이런 취지인데 그때부터 노무현 대통령하고 상당히 친해졌고 제가 노무현에 대해서 그냥 좋은 정치인이었다가 이 사람 대통령 될 사람이다. 결단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를 쓰고 난 다음에 한 한 달 됐나 어디서 전화가 왔어요. 제 기사를 보고 전화를 했는데 자기들이 노무현 의원 지지하는 모임을 만들려고 한 대요. 제 기사를 봤다면서 그 모임을 취재를 해달라고 전화가 온 거예요. 그 모임이 노사모입니다. 노사모 처음 시작하는 모임이었어요.
그래서 새롭게 이제 정말로 정치 지도자가 한 단계 앞으로 이제 그 역사적인 과정을 제가 옆에서 같이 지켜보면서 저도 공감하고 그때부터는 약간 노무현의 강력한 지지자가 됐죠.
그전에 그냥 좋아하는 정치인이었다가 이제 너무나 강력한 지지자가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제 제가 거의 필요할 때마다 제가 노무현 정치인과 제일 인터뷰를 많이 한 기자였습니다.
하여간 정치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인터뷰를 해서 노의 원에게 전달하는 게 그게 너무 좋았어요.
프레시안 : 그 당시에 윗선에서 뭐라고 하지 않았나요?
김종민 : 편집국장한테 많이 욕도 먹었어요. 맨날 왜 노무현은 너무 경도돼 있다. 노무현이 무슨 대선주자도 아닌데 인터뷰를 이렇게 많이 하냐. 제가 대선주자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안 믿었어요. 그때만 해도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하면 노무현은 2~3% 나올 때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노무현이라고 하는 히스토리에 담겨 있는 지하수 같은 걸 본 거예요.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이게 딱 연결이 되면 뿜어져 나올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켜봤는데 결국은 광주 경선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생긴 거죠.
사실 그 이후의 과정은 저도 그렇게 예상했던 건 아니에요.
그런 기대는 있었지만 실제 노무현이 대통령 될 줄 되리라고는 별로 그렇게 상상하지는 못했는데 그걸 만들어내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훌륭한 정신을 보게 됐습니다.
프레시안 : 결국 김 의원께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하셨군요.
김종민 : 제가 잠시 기자 생활을 쉬고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고 노 대통령이 안 지사 통해서 같이 청와대에 와서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해서 그때 청와대에 가서 그때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청와대에서 대변인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프레시안 :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김종민 : 5년 동안 제가 노무현 대통령 대변인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기존 언론에서 당신 얘기를 잘 전달을 안 해주니까 얘기를 좀 정확히 직접 전달하는 통로를 만들 청와대 브리핑을 만들었고 제가 계속 편집장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노무현의 온라인 대변인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오프라인 대변인, 온라인 대변인. 5년 내내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5년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회의, 비공식 비공개 회의까지 다 참석해서 배석을 했어요. 제가 거기서 엄청나게 많은 걸 배우고 경험을 했죠.
그리고 결정적인 거는 2007년도에 이제 참여정부가 실패했다,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다라면서 온갖 이제 여론이 노무현을 공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억울하다. 우리가 이렇게 잘못했냐? 이 평가는 잘못된 평가다. 우리가 직접 한번 우리 스스로 평가해 보자”라고 말씀하셨어요. 참모들도 다 업무가 있으니까 저를 불러다가 매일 아침 관저에 아침 7시 반에 올라 오라고 해서 아침마다 1년 동안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했던 걸 한번 평가를 한번 해보겠다. 내가 일했으니까 내가 일단 스스로 평가하는 게 일단 돼야 그다음에 다른 사람 평가도 같이해야 서로 토론이 될 수 있지 않겠냐. 그래서 우리 스스로 평가해보자”라고 하셔서 그 작업을 저한테 맡기고 정리를 제가 매일 아침에 1년 그러니까 2월부터 시작해서 12월까지 그다음에 한 2월까지 거의 1년 가까이 1년 가까이를 아침마다 반지에 올라가서 대통령의 구술을 받고 조사하고 그 작업을 했습니다.
그걸 모은 게 참여정부 5년, 참여정부 백서, 참여정부 평가 5년 그리고 그걸 책으로 만들고 DVD로 만들었었어요.
그게 이제 그게 1년 동안 작업을 해서 만든 결과물이고 저는 그 DB들만으로 책을 만들 때 정말로 ‘기존에 언론에 나왔던 거 다른 얘기들인데 이걸 사람들이 알아줄까’ 그때만 해도 엄청나게 이른바 안희정 지사가 심지어 정약용의 편지에 나오는 ‘친노패족’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공격을 받고 고립돼 있을 때거든요.
우리가 이렇게 해서 책도 내고 DVD로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걸 봐줬으면 좋겠는데 노무현 이렇게 공격을 받고 있으니 사람들이 볼까 2009년도에 노 대통령님이 돌아가셨잖아요.
돌아가신 다음에 이제 한 달 정도가 전국이 약간 이제 국장 분위기였죠.
국민의장이죠. 국민의장. 근데 가보면 그때 거리에서 노무현 대통령 동영상을 많이 틀었습니다. 그때 그 동영상이 제가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걸 보고 ‘사람이 노력을 하면, 땀을 흘리면 언젠가는 그게 열매를 맺는구나. 제가 1년 동안 그 작업을 하면서 이걸 누가 읽을까, 누가 볼까 하는 그런 고민을 했었는데 비록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엄청 이제 슬프긴 했지만 그 계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또 노무현에 대해서 다시 알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됐고 거기에 이 책과 DVD가 이렇게 쓰임새가 있었구나 하는 것들, 인생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그런 계기가 됐습니다.
프레시안 : 청와대에서 근무한 후 어떤 생각을 갖게 됐나요?
김종민 : 제와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 거기까지 연결되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에 “대통령 끝나면 뭘 할까? 처음 문제의식은 대통령 해보니까 대통령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더라. 대통령이 돼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야당이 발목 잡으면 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고 또 공무원들도 임기 초에는 호응을 하지만 그 다음에는 또 잘 안 움직이고 대통령이 돼서 세상을 바꾸는 거, 양극화 문제 균형 발전 문제 한계가 있다”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는 결국은 정치적으로는 또 어떻게 보면 좀 공격 당하고, 힘도 없어지고 그리고 1년 동안 저한테 참여정부 평가작업 구술하면서 중간에 그런 질문을 한 번 하시더라고요.
“종민 씨. 내가 대한민국을 통합을 하기 위해서 영‧호남 통합 그다음에 서민과 부자의 양극화 해결. 이게 다 대한민국 국민통합을 하기 위해 정치를 한 사람인데 내가 대통령이 돼서 대한민국이 통합이 됐냐? 더 갈라졌냐? 너 솔직하게 한번 얘기해 봐라”하고 물으셨어요.
저는 이제 좀 당황을 했죠. 통합됐다고 얘기하면 지금 현실은 그게 아니고, 반대로 갈라졌다고 얘기하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제가 약간 고민을 하다가 그런 얘기를 드렸어요. “지금은 좀 갈라져 있지만 통합으로 가는 진통입니다. 우리는 통합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그런 노력이 결국 통합으로 이어질 겁니다”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 거예요. 그런데 대통령이 웃으시면서 “위로하려고 하지 마라” 하시더군요. 실제로 대통령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언젠가는 이런 진통이 통합으로 가야 된다”라는 거죠. 문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는 권력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는 걸 느끼는 거죠. “역사를 보면 국민들의 생각, 백성의 생각이 세상을 끌고 가는 거다. 그럼 백성의 생각에 영향을 미쳐야 되는데 대통령은 처음에는 영향을 미치는데 나중에 가면 대통령 말은 오히려 더 안 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가가 돼야 된다. 국민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가. 출판사를 하자. 거기서 책을 만들자. 대통령 끝나면 출판사하겠다. 같이 하자”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출판사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가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무슨 언제쯤 출판사냐 이런 비판이 있었어요. 그 말 맞잖아요. 출판사 해가지고는 뭔가 현대 흐름이 안 맞는다.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자.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민 토론 사이트를 만들어서 시민들의 지혜를 모으고 서로 다른 생각들이 서로 교류하게 만들자. 그래서 지금으로 말하면 이제 플랫폼이죠.
토론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죠. 제가 그 작업을 시작했어요. 2007년 12월부터 시작해가지고 기획하면서 그 사이트 플랫폼 기획을 해서 그래서 2008년 5월 쯤에 초안이 나오고 10월 쯤에 오픈한 게 민주주의 2.0이라는 플랫폼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참여해서 만든 시민 플랫폼 시민 토론 사이트에서 민주주의 2.0 노무현 대통령이 엄청난 애정을 쏟고 지금도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이 다 정리된 자료가 있습니다.
왜 이걸 만들고, 어떻게 만들지 그리고 이 양반이 이 IT에 대해서 되게 상당히 인사이트가 있는 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훌륭한 사이트를 기획을 했고 가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가동하던 중 박연차 사건이 터졌어요. 박연차 사건이 터지니까 이게 노무현 사이트잖아. 일종의 노하우라고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사이트는 노무현 개인 사이트고 이거는 노무현이 만들었지만 노무현이 일반 국민들과 함께 토론을 시민들의 어떤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 만든 사이트인데 이것도 노무현 사이트가 돼버린 거예요.
엄청나게 와서 공격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노무현 뇌물 먹었다 토해내라 이러고 막 엄청나게 그때 이제 일베 일베 쪽에서 엄청난 공격을 온라인으로 폭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거를 한 5~6개월 공격을 받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3월인가 4월쯤에, 그때 이제 한참 수사 받고 언론에서 한참 이제 공격할 때인데, 전화를 밤늦게 전화를 걸어서 “정민 씨 사이트 다 사이트 내려라. 나 때문에 그 사이트가 쓰레기장이 되겠다. 일단 닫고 나중에 우리 명예가 회복되면 그때 다시 열자 다시 열 때까지 이거 보관하고 있어라”라고 하셨어요.
저도 더 이상 유지했다가는 완전히 이게 쓰레기장이 될 것 같아서 닫았죠.
그리고 이제 얼마 있다가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에 이제 뭐 제가 충남도지사하고 또 국회의원하고 사실 제가 이번에 출마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민주주의 2.0을 다시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유투브나 소셜 미디어를 보면서 이렇게 일방적인 이런 진영 간의 대결로 이 시민들의 어떤 정치 콘텐츠가 소비되는 게 그때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주의 2.0 만들었을 때 그거하고 너무 다른 모습인 거예요. 이게 그래서 정말 서로 다른 생각들이 교류하면서 새로운 정반합의 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변증법적인 그런 토론 플랫폼이 필요하다. 그게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이었고 저도 그거를 너무 좋아했는데 그걸 다시 되살려야겠다. 제가 노무현과의 약속을 국회의원 8년 하면서 그걸 계속 해보려고 했는데 국회의원 하면서 도저히 할 수가 없어요. 시간이 없어서 남한테 맡겨도 내가 몇 번 부탁을 했어요. 근데 안 되더라고요. 이게 그래서 이건 내가 해야 되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이걸 좀 해보려고 했습니다. 사실 내부적으로는 이것 때문에 그래도 나는 불출마해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할 수가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노 대통령과 인연이 그렇게 이어졌고 이어달리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또 이렇게 하다 출마도 하게 되고 세종에서 당선되는 바람에 다른 방식의 이어달리기를 지금 하게 된 거죠.
프레시안 : 공약 중에 이제 교육에 관한 얘기가 있습니다. 근데 이제 공동 캠퍼스의 들어오기로 했던 대학들이 물론 3월에 들어오기로 했지만 미뤄지고 이런 과정들이 있는데 이 아시다시피 캠퍼스가 공동 캠퍼스와 개별캠퍼스 2가지가 있습니다. 개별 캠퍼스에 대학들이 들어오려고 하다 보니 교육부의 의견과 그다음에 세종특별자치시에 관한 특별법이 충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주장하셨던 걸 쭉 보니까 이제 세종에서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지역에서 특채하는 것을 얘기하셨더라고요. 그럼 세종에 좀 유의미한 대학들이 들어와야 되지 않겠냐는 이런 얘기인데 이거 법에 상충되는 부분을 해결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김종민 : 일단은 저도 이제 그 얘기를 들었고요. 그래서 그거는 일단 갈등 내지는 이견을 중재하는 그런 정치력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어느 게 맞다 이래갖고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은 사실 정치가 그게 그런 역할을 해야 되는데 하여간 이 양쪽에 서로 갈등 요인들을 어떻게 중재할 거냐. 이 갈등을 중재해서 빨리 조기에 합의를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다 이 말씀만 계속 드렸습니다. 그래서 행복청하고 교육부하고 좀 더 내용과 입장 앞으로 계획을 조금 더 들어봐서 조정 저는 공통분모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봐요. 일단 그런 방향으로 해서 빨리 조기에 푸는 데 주안점을 두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한번 제가 제안을 드려본 거는 연합국립대 제안을 한번 추진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세종만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고 전체적인 대학 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 국립대를 다 통합해서 국립한국대학교, 국립세종대학교 등 이렇게 단일한 대학으로 만들고 전국 각지에 다 캠퍼스를 두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UCLA, UC버클리, UC샌디에고, 파리1대학, 파리2대학 등이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전체적으로 기존에 있던 국립대를 통합하고 여기에서 대한민국 대학 교육의 기관, 인재들을 육성해 나가고 사립대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또 시장이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걸 같이 병행하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국가적으로 필요한 시장에서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국가적으로 필요한 인재들, 대부분의 연구 인재들은 국립대에서 배출해야 하고 기술 인재들은 사립대랑 같이 배출할 수 있는 것이죠. 그다음에 교양 부분은 국가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돼요.
지금 대학이 갖고 있는 기능이 세 가지거든요. 일단 연구 그다음에 기술 그다음에 교육 교양 이 세 가지 기능을 대학에서 다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립교양대학이란 재단을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유튜브나 온라인을 활용하고 교육 방송까지 포함해서 전 국민적인 교양 시스템을 갖추고 직장에 다니거나 은퇴하고 나서도 교양 교육에 접근할 수 있게 그런 시스템으로 전 국민 평생교육시설로 가야 됩니다. 그다음에 기술 과정은 기술대학은 국립대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립대와 기업이 참여하는,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을 활성화시켜야 됩니다.
그다음에 이제 연구는 국립대가 중심이 돼서 예산을 투자해야 합니다. 연구를 안 하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거는 국가가 집중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립대를 연구, 기술, 교양이 통합돼야 하되, 연구에 대해서는 국가적인 책무를 분명하게 부여한 그런 대학으로 해서 상향 평준화시키는 거죠. 서울대가 동참하면 제일 좋습니다. 서울대가 동참 안 하면 서울대는 그냥 국립서울대 법인으로 놔두고 나머지를 국립한국대학으로 서울대 수준의 국립대학으로 투자를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전국에서 다 서울대 들어갈 수 있어요. 광주에서도 자기 지역에서 서울대 갈 수 있는 거죠.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여기는 전체적으로 무상 교육을 해서 이제 학교 걱정 없이 정말로 재능 있는 인재들은 수능 성적으로 뽑지 말고 정말로 잠재력을 가지고 뽑을 이런 입학 사정 시스템으로 이 대학 교육 전체를 재편하는 핵심 고리가 전 국립대통합이라고 봅니다.
특히 국립대통합본부를 저는 세종에다 두자는 겁니다. 이 것은 세종에 뭘 유치해 오는 게 아니라 이 제도를 만들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 제도에 대한 공론화를 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기존 대학 시스템 갖고는 어떤 대학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국립대는 한번 큰 재편을 이 연구 인재 중심으로 재판 한번 하자 그래서 거기에 미래 투자를 하는 거죠. 그러면 저는 그 본부를 세종 캠퍼스로 하는 이런 방안을 한번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프레시안 : 이제 세종의 재정 상태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그동안 아파트 신축에 따른 취득세에만 의존해 오다가 정부에서 규제를 하기 시작하니까 아파트 신축이 보류되거나 중단되면서 세입이 줄어들고 이제는 마이너스로 가는 이런 상황이 왔거든요.
그런데 청주나 천안의 경우를 보면 대기업 유치를 통해서 큰 금액의 지방세를 거둬들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세종의 기업 유치에 관해서 제가 시장님하고도 몇 차례, 전임 이춘희 시장님하고도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근본적인 문제가 공업용수 부족 문제로 귀결됩니다.
충남 천안시의 경우에도 예전에 공업용수가 없어서 힘들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90년대 말에 그 당시 이근영 시장님이 수원에 있던 삼성전자하고 삼성SDI 공장을 천안으로 유치한 것입니다. 물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이러한 어떤 공장 유치 기업 유치에 관한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부분은 어떻게 추진해 보실 계획이신가요?
김종민 : 제가 100만 세종을 목표로 내건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행정 도시만 가지고는 100만 세종이 갈 수가 없죠. 물론 이제 외교부가 내려오고 대사관들이 오고 국제도시를 만들면 이게 한 10만 20만 국제 관광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구 증가 요인이 생길 겁니다.
근데 본질적으로는 기업 인프라가 발전해야 돼요. 저는 세종은 그냥 공업용수가 필요한 그런 제조업 중심으로 가기에는 부적합한 곳이다. 그리고 미래 산업으로 가야 된다. 디지털 산업, 그린 산업 그다음에 컬처 휴먼 산업, 이 세 가지입니다. 그래서 디지털 DGC 이 세 가지 산업을 가지고 그린(Green)은 에코(Eco)라고도 표현할 수 있고, 테크(tec)라고도 얘기할 수 있죠. 이렇게 세 가지 산업을 발전시켜야 되는데 아까 얘기한 재정 문제의 핵심이 종부세하고 이게 취등록세입니다. 이것만 가지고 도시가 살림을 할 수는 없어요. 불가능한 거죠. 그건 취득세 특수 때문에 약간 착시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기본적으로 재정 문제를 하려면 첫 번째로는 교부세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세종시는 광역지자체도 아니고 기초지자체도 아닌데 또 생길 수 있는 공백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초단체 교부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빨리 바꿔야 됩니다. 두 가지 일을 다 하고 있는데 두 가지 일을 하면 두 가지 교부금을 다 받아야죠. 그래서 그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지방세 수입, 취‧등록세에 의존하고 있는데 기업유치를 해야 합니다. 디지털 클러스터, 그린(에코) 클러스터, 휴먼 클러스터 세 가지를 하자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 다 하는데 세종이 뭘 또 하냐, 경쟁력이 없지 않냐 이렇게 얘기를 좀 하는데 약간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된다고 봅니다. 다른 곳처럼 접근하면 디지털이 천안하고 수도권이 더 낫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클러스터로 가자는 거예요. 그냥 산업단지로만 가면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클러스터는 달라요. 클러스터에는 행정 연구, 교육 산업 이 네 가지가 연계돼 있어서 시너지가 생기는 클러스터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중 행정과 연구 두 가지는 세종이 있어요. 행정‧연구에다가 교육하고 산업만 붙이면 클러스터가 되잖아요. 이런 것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기업을 집중적으로 유치를 해서 디지털 클러스터, 그린‧에코 클러스터 그다음에 컬처‧휴먼 클러스터 이렇게 만들면 되는데 관련 기관들이 세종에 있습니다. 여기 없는 건 유치를 해야죠.
여기에 있는 행정과 연구 기능을 활용해서 여기에 교육과 기업을 연결시키면 클러스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거를 이 미래 산업 위주로 해서 그러면 이쪽 금남면 또 반곡동 이쪽은 이제 연구 교육 이쪽에 좀 집적돼 있잖아요. 그럼 그쪽을 국책연구단지하고 연계해서 컬처 그다음에 휴먼 산업 이런 쪽으로 한번 산업 발전을 시켜보고 그다음에 저쪽 장군면 쪽은 디지털 클러스터로 한번 해보고 또 부강 쪽은 에코나 그린 클러스터 쪽으로 그래서 이쪽 주변 지역 면 단위 주변 지역에 이제 산업단지를 만들어 나가자는 겁니다. 이를 지금 말씀드린 그런 연구 행정 기능하고 다 20~30분 거리에 있으니까 저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것들이 필요한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제 세종 과학기술원을 하나 만들어서 미래 산업에 대한 에코 산업, 그다음에 컬처 산업, 디지털 산업 이 세 가지 분야의 과학기술원 체제를 갖추게 되면 대한민국의 이 미래 산업의 센터가 세종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업을 유치를 해야 되는데 저는 이 과정에서 약간의 앵커 역할이 필요하다고 봐요. 디지털 쪽의 앵커, 컬처 쪽의 앵커 그다음에 그린 에코 쪽에 앵커 대기업 3개 딱 그 분야에 대한민국의 최고가 되고 싶은 기업이 있어요. 그런 기업에 행정도 있지 연구도 있으니까 여기 와서 기업만 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은 이렇게 해서 인재들을 공급해 주겠다 그러면 대기업들 하나를 끌고 오면 나머지 중소기업도 같이 연계시킬 수가 있으니까 그런 거를 한번 추진해보자는 가죠. 이거는 행복청과 세종시가 같이 호흡을 해야 됩니다.
저는 미래 산업과 관광산업 이 두 가지가 세종시의 주된 경제적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관광산업은 외교부와 대사관, 문화원 그리고 세계문화의거리 등이 전체적인 국제도시, 국제 문화의도시로 전망을 세우는 것이 한 축이 되고 그다음으로 미래 산업 도시가 한 축이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정치‧행정은 첫 번째 요건이 돼 있잖아요. 60만은 이걸로 가요. 근데 외교‧국제도시로, 국제문화관광으로 해서 10만~20만 명이 늘어날 것이고 그다음에 미래 산업으로 또 10만~20만 명이 늘어나 100만 도시로 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프레시안 : 이제 다른 질문 좀 드릴께요. 선거 결과 김 의원님의 민주당 복당 가능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수의 어떤 힘이 필요하고 원래 민주당 출신이니까 다시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 추측이 되거든요. 지금 결정은 꼭 안 되셨다 하더라도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밝힐 수 있을까요.
김종민 : 제가 이제 늘 해오던 얘기인데요. 제가 민주당의 어떤 노선이나 또 민주당의 가치 역사 이게 싫어서 나온 건 아니에요. 뭔가 민주당의 그런 역사나 정신을 더 잘 구현해야 된다. 지금 당 운영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이런 이견은 있었지만 결국 민주당의 가치나 정신을 잘 구현하는 길이 뭐냐 이걸 이제 찾아서 나온 거거든요.
나와 보니까 또 그것도 저의 소신은 좋은데 정권 심판도 해야 되고 정권 교체도 해야 되는데 갈라지면 어떻게 하냐 이게 민심이란 말입니다. 민심을 또 외면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정권 심판과 정권 교체라는 대의에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민주개혁 세력이 다 똘똘 뭉쳐야 된다 하나가 돼야 된다. 거기서 저도 역할을 하겠다. 이것에는 추호의 틈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합당이나 입당 이런 문제를 놓고 봤을 때 당이라고 하는 건 하나 만들어서 국민들한테 약속을 했잖아요. 당원들도 있고 저는 일단 이 새로운 미래의 신당 도전이 한번 냉정하게 평가를 해봐야 된다고 봅니다. 왜 도전을 했고 우리가 하려던 건 뭐였는데 어떤 건 의미가 있었는데 어떤 건 부족했다 왜 국민의 선택을 못 받았다 이걸 냉철하게 한번 평가를 해봐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중한 것, 반성하고 바꿔야 될 것, 변화해야 될 것, 이런 거를 좀 정리를 한 다음에 이걸 가지고 국민들한테 민주당은 어떻하겠다 아니면 조국혁신당은 어떻게 하겠다, 아니면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 이런 선택을 말씀을 드려야 의미가 있지 선거 끝났다고 뭐 하겠다 이거는 저는 진정성이 없는 거라고 봅니다.
프레시안 :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한테 인사 말씀 한마디 해 주시죠.
김종민 : 정말로 고맙죠. 이렇게 한 달 전에 온 정치인에게 마음을 열어주신 거는 세종시민들이 정말로 훌륭한 민주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까운 연고나 인연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정말 미래를 보고 선택을 해 주신 거고, 김종민을 보고 확신은 아직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고 선택을 해 주셨으니까 제가 거기에 보답하는 거는 그 세종시민들의 그 선택이 현실로 실현될 수 있도록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그게 옳았다고 증명되는 그거를 제가 해야 된다, 그래서 반드시 김종민의 가능성에 대해 투자한 게 고수익으로 상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담 : 김규철 대전세종충청본부 편집국장
정리 : 문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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