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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어야 정의가 빛나고 정의로워야 돈의 가치가 산다

[영화, 시대를 넘다] <공포의 보수>

넷플릭스를 통해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걸작 <공포의 보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하다. 넷플릭스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클루조의 1953년 원작을 볼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는 아마도 <공포의 보수> 제작 7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서 리메이크작이 기획된 모양이며 그 결과 올해 완성돼 공개됐다. 그런데 이 걸작 영화 리메이크가 왜 이렇게 입소문이 안 났으며 글로벌 순위에도 오르지 못했을까. 왜 그랬겠는가. '지지리도'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짜임새, 전체 드라마 구성의 만듦새는 차치하고라도 기본적으로 콘셉트를 잘못 잡았다. 원래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작품이 1950년대에 큰 화제를 모았던 것은 서스펜스 때문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하는 얘기이다.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화약이다. 조금만 흔들려도 안되며 기울기가 잘못돼도 터진다. 주인공들은 보수를 두 배 세 배 받고 목숨을 건다. 그 '공포의 보수'가 주는 긴장감의 강도, 공포의 가속도가 영화의 메인 컨셉이다. 그러나 이번 프랑스 리메이크 영화 <공포의 보수>는 기본 설정을 액션으로 간다. 그래서 망했다. 원래는 극중 인물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무서움과 그 긴장감 탓에 보는 사람들이 가슴을 졸여야 한다. 리메이크 판의 인물들에게서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웅담 영화처럼 총을 쏘고, 구르고, 주먹 다짐을 한다. 싸움 실력들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액션영화의 액션은 한두 번 이어지면 금세 식상해진다. 이 新<공포의 보수>가 그렇다.

게다가 주인공 프레드(프랑크 가스탕비드)는 할리우드 영화 <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캐릭터 도미닉(빈 디젤)을 닮았다. 머리도 대머리이다. 따라서 리메이크 영화 <공포의 보수>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 판 <분노의 질주>처럼 기획된 것이다. 옷과 몸이 안 맞는다. 신발 문수가 맞지 않는다. 고전 재해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고전의 가치를 정통으로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고전은 고전 그대로도 만들기 어렵다.

▲1953년 <공포의 보수> 원작 포스터.

앙리 조르주 클르조가 이름을 얻었던 것은 그가 프랑스의 알프레드 히치콕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히치콕은 서스펜스의 대가였다. 클루조가 그랬다. 클루조의 <공포의 보수>가 그랬다. 그런 작품을 프랑스의 후예들이 액션영화로 만들었다. 신세대 젊은 관객들은 액션을 좋아하니 액션감을 마구 덧칠해서라도 자신들의 고전을 알리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그 결과 고전 작품의 제목은 알렸을 지 몰라도 고전 작품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전달하지 못했다. 클루조가 만들었던 고전 흑백 서스펜스 영화들은 70년대를 넘어 오면서 장 피에르 멜빌의 형사 누아르 영화로 이어 간다. 알랭 들롱의 형사 영화들을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 영화의 전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랬던 프랑스 영화가 뤽 베송 이후 변질됐다. 할리우드 하이브리드 변종이 나타났다.

클루조의 1950년대 영화가 배경을 남미로 설정했다면 이번 리메이크 판은 중동이다. 중동의 어느 특정 지역인 듯한데 구체적으로 어디라고 특정해서 나오지는 않는다. 왕정 국가였다가 누군가가 왕을 폐위했고 이후 쿠데타가 일어나 정정(政情)이 매우 불안한 나라라는 정도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예멘이나 오만 정도일까? 어쨌든 산유국이다. 여기서 주인공 프레드는 경호원으로 일한다. 프랑스에서는 트럭 기사였다. 프레드의 동생 알렉스(알방 르누아르)는 폭탄 전문가이다. 중동지역에서 그 폭탄을 사용하는 철거 회사를 운영하며 살아 간다. 이들은 아랍 재벌이 남긴 금고를 열려다 변을 당한다. 알렉스는 체포되고 프레드는 유전 마을로 숨어 들어 와 지내게 된다. 프레드는 그곳에서 구호단체인 WWH(WHO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의 활동가 클라라(아나 지라르도)와 정을 통하며 살아 간다.

어느 날 한 정유회사가 자신들 유전지대의 대규모 폭발을 막기 위해 이들에게 800킬로미터 밖 지역에 있는 니트로글리세린 100킬로그램의 운반을 맡긴다. 이 글리세린으로 유정 두 군데 중 한 군데의 '가스 포켓'을 파괴해 유정의 일부라도 살리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세 명의 주인공과 특수 작전 팀은 분쟁지역 한 가운데를 뚫고 가공할 폭발력을 지닌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하는 임무에 돌입한다.

▲<공포의 보수> 리메이크작. ⓒNetflix

조르주 클루조가 만든 1953년 원작의 매력은 등장인물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다. 한 치의 오차가 사람들을 죽게 한다. 사람들은 욕망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목숨을 건다. 아주 찰나의 순간에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을 나락에 빠뜨리곤 한다. 생명을 잃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상의 삶을 송두리째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53년 원작은 인간의 그같은 어리석음과 졸렬함, 그로 인한 죽음을 드라이하게 표현해 냈고 그 때문에 극찬을 받았다.

이번 리메이크 영화를 끝까지 지켜 본 것은 원작의 결말을 어떻게 살려내고 또 이어갔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걸 잘해 내면 앞에서 잃은 점수를 대체로 만회할 것이라고 봤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쥘리엥 르클레르크는 앙리조르주 클루조나 장 피에르 멜빌의 후예가 되기 보다는 뤽 베송처럼 할리우드식 프랑스 영화를 만들기로 자신의 영화적 노선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2024판 <공포의 보수>는 프랑스식 작가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날 만한 영화지만 할리우드식 킬링 타임용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에겐 그런 대로 참아 줄 만한 작품일 수 있겠다.

분노와 절망을 넘어서지 못하면 자칫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수 있다. 돈과 정의는 적대적인 관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돈이 있어야 정의를 더 잘 세울 수 있고 정의로워야 돈의 진정한 가치가 살아 난다. 영화의 구질은 별로지만 주제의식 만큼은 나쁘지 않다. 2024판 <공포의 보수>가 지닌 거의 유일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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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오동진은 신문,통신,방송사 문화부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영화전문지 FILM2.0과 씨네버스의 창간멤버와 편집장을 지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 마켓 운영위원장이었다. 현재 영화 글만 쓰고 산다.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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